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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예 Jan 13. 2021

무작정 떠난 쿠바 여행 9. 레닌과 친구들

내가 만난 가장 흥미로운 쿠바인 이야기

쿠바에서 가장 가까워진 현지인을 꼽으라면 아마 레닌이 아닐까. 카우치서핑을 통해 연락이 닿은 우리는, 밤 11시경 바라데로에서 가장 큰 클럽인 Casa de la Musica 앞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내가 바라데로에 도착하던 날 밤, 친구들과 Casa de la Musica에 갈 계획이라는 그의 말을 듣고 나도 끼워달라고 조른 결과였다.

가장 인기 있는 클럽인 만큼 줄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길었다. 덕분에 우린 무더운 인파 사이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한참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레닌은 의료기술에 있어서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쿠바의 의대생이었다. 원래는 공대생이었는데 해킹을 즐겨하다가 대학 두 군데에서나 줄줄이 퇴학당해 결국엔 의대에 입학하게 되었다는, 괴짜 천재였다. 여느 쿠바인답지 않게 영어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하는 모습에 놀라서 어떻게 배운 거냐고 물어보니, 원래 공부벌레라서 고등학교 때 항시 영어사전을 들고 다니며 공부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괴짜 천재 해커는 퇴학까지 당한 후에도 엄격한 쿠바의 법이 전혀 두렵지 않은 듯했다. 클럽에 입장할 때 외국인과 쿠바인, 그리고 쿠바 학생 가격이 다 다르기 때문에 신분증과 학생증을 검사하는데, 학생증마저도 직접 만든 위조품이었다.

입장료는 외국인 10달러, 현지인 4달러, 그리고 쿠바 학생은 0.4달러였다. 너무나도 차이가 큰 가격에 내가 불공평하다고 툴툴거리자, 그는 정색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 불공평하지 않아. 내 한 달 수입은 5달러니까 공평한 거지.”


겉보기엔 살짝 허름해서 당황스러웠던 Casa de la Musica 입구


그 날은 월요일 밤인데도 미어터질 듯이 사람이 많았다. 레닌의 친구들은 럼과 콜라를 어디선가 사 오더니 신나게 붓고 마시기 시작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레닌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피델 카스트로의 생일이야.”

“아, 그래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야?”

“아니, 그냥 매일 술을 마시기 위한 쿠바인들의 핑계 중 하나일 뿐이야.”


Casa de la Musica 내부


레닌의 친구들은, 그의 말을 인용하자면, ‘전형적인 쿠바인’이었다. 낯 안 가리고 술과 춤을 좋아하는. 그들은 나더러 완벽한 쿠바 리브레 칵테일을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며 직접 술을 섞어 보라고 권했다.

레닌의 의대생 친구들 중에는 증조할머니가 한국인이라는 제니퍼가 있었다. 그녀는 외국에 나가기 힘든 쿠바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후손 프로그램으로 4년 전에 한국에 가봤다고 했다. 어떻게 증조할머니가 쿠바로 오게 되었냐고 물어봤더니, 일제강점기 때 많은 한국인들이 쿠바로 피난을 왔다가 정착했기 때문에, 아직도 자주 모여서 한인 이벤트를 하고 애국가도 부른다는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건 비단 쿠바만이 아니라 파나마, 코스타리카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고.



다들 술에 취해갈 때쯤, 춤추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레닌이 내게 클럽 앞에 있는 바닷가로 가자고 제안했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늦은 시각에 바다에 가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 흔쾌히 승낙했다. 길 하나만 건넜을 뿐인데도 시끄럽던 클럽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었고 적막만이 흘렀다. 우린 그 한밤중에 모래사장에 누워 별이 박힌 하늘을 바라보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었다.

레닌은 내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쿠바에 있으면 똑똑한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고 속상해하며 의대생들이 퀴리 부인을 아무도 모른다는 어이없는 얘기부터, 정부에 대한 불만까지. 그는 쿠바의 비정상적인 사회 구조를 극도로 싫어했다. 정말 머리 좋은 지식인층은 정부에서 우대해주지 않기 때문에, 의사는 돈을 잘 못 벌고 택시기사가 많이 버는 현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럼 돈을 많이 벌기 위해 택시기사가 될 생각은 없어?”

“싫어. 나는 학문적으로 발전하고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의사를 선택했어.”

삭막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애초에 쿠바인들이 외국에 나가는 건 굉장히 힘들지만, 쿠바의 의사가 외국에 나가는 건 아예 불가능하다고 한다. 외국으로 나갔다가 도망가버리는 의사들이 너무 많아지는 바람에 의사 유출을 막기 위해 법적으로 금지해 버렸다고. 그는 그런 와중에도 끊임없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었다. 나중엔 세계 지원 프로그램으로 아프리카에 가서 의사 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 늙으면 아이슬란드에서 살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왜 하필 아이슬란드야?”

“사람이 적잖아. 그래서 걱정거리도 적고.”

“근데 너 눈 오는 거 본 적 있어?”

그는 표정을 구기며 나를 째려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바라데로의 노을


“바다에 들어갈래?”

그의 뜬금없는 제안에 나는 1초 정도 고민에 빠졌다. 그러고 보니 밤바다에 들어가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재미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첨벙첨벙 물을 튀기며 새카만 흑막 속으로 빠져들었다. 미지근한 바닷물이 기분 좋게 다리를 감쌌다. 어둡다는 이유로 기피하던 밤바다는 내가 몰랐던 새로운 매력을 갖고 있었다.

새벽 두 시가 가까워지자 우리는 신발도 신지 못한 채 서둘러 달렸다. 레닌이 학교에서 제공하는(!) 버스 막차를 타고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겨우겨우 버스에 다다르자 그의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물에 쫄딱 젖은 내 꼴을 보며 풉 웃음을 터뜨렸다. 헐레벌떡 버스에 올라탄 그는, 나도 타고 가다가 중간에 숙소에서 내릴 수 없냐고 기사에게 졸라 보았으나 단칼에 거절당했고, 우리는 그렇게 급하게 손을 흔들며 인사해야 했다.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 그는 고개를 빼꼼 내밀고 외쳤다.

“내일 내가 바다 구경시켜주기로 했잖아! 잊지 말고 열한 시에 같은 장소에서 만나!”


레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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