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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예 Jan 14. 2021

무작정 떠난 쿠바 여행 10. 나 홀로 바닷가

혼밥, 혼여도 다 잘하는 나에게도 어쩐지 어려운 혼바다

레닌과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일찍 일어나 까사 주인 부부의 엄청나게 맛있는 아침을 먹고 기분 좋게 바다로 향했는데, 기껏 와이파이 스팟을 찾아 연결한 메일함에는 실망스러운 소식이 있었다. 전 날 밤 집에 돌아가자마자 병원에서 실습 연락이 오는 바람에 잠도 못 자고 바로 일하러 가야 했다는 레닌은,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오늘 만날 수 없겠다는 메일을 보내 놓았던 것이다. 기껏 기대했던 약속이 없어져서 혼자 바다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막막함에 한숨이 나왔다. 바닷가 같은 휴양지는 아무리 예뻐도 혼자 가는 게 도저히 익숙해지질 않았으니. 게다가 짧은 일정 탓에 다시는 레닌을 볼 수 없을 테니 전 날 제대로 작별인사를 하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바닷가로 계속 향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마침내 혼자서라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건 탁월한 결정이었다. 타는 듯한 더위에 끝없이 걷고 걸어 도착한 바다는 혼자 있는 것도 잊힐 정도로 아름다웠으니까.



청량한 푸른색. 마치 세계여행 중 잔지바르에서 보았던 바다처럼 아름다웠던 그곳엔 생각보다 사람들도 많이 없었다. 바닷물에 조금씩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다가, 시선이 가방에서 삐져나온 카메라에 닿았다.


‘그래, 이렇게 예쁜데 사진 정도는 꼭 남겨야지.’


슬그머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혼자 온 탓일까, 주변에서 수영하던 쿠바인 남자들이 나를 흘긋흘긋 쳐다보는 게 유독 심하게 느껴졌다. 애써 아랑곳하지 않고 삼각대를 설치하기로 마음먹었다. 민망한 것은 잠시지만, 평생 남는 건 사진이니까.


나 홀로 낑낑대며 삼각대를 모래사장 위에 설치하는 건, 그들에게 꽤나 재미있는 광경이었나 보다. 이따금씩 들리는 웃음소리를 있는 힘껏 무시하며 타이머를 맞춰두고 실컷 사진을 찍었다. 혼자 여행하며 사진을 찍는 건 여전히 어렵지만, 그 민망함을 이겨내는 기억까지도 나에게는 소중하다.



혼자라서 그런지 수영도 금세 지겨워졌다. 결국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는 허기를 달래러 나섰다. 비수기라 그런지 휑한 피자집에서 혼자 피자와 칵테일을 꾸역꾸역 시켜먹고, 현지화폐인 모네다로 계산을 했다. 쿠바는 외국인 대상 화폐인 쿡(CUC)과 현지인들만 쓰는 화폐 모네다 또는 쿱(CUP)을 공용으로 사용하는데, 아무래도 쿠바가 잘 사는 나라는 아니다 보니 모네다로는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으로 파는 것도 외국인에겐 쿡으로 잔뜩 바가지를 씌우기 일쑤다. 모네다는 현지인들만 쓸 수 있다는 루머가 있긴 하지만 외국인들도 환전만 한다면 사용할 수 있어서 웬만하면 모네다를 환전해 다니는 게 유용하다. 실제로 그렇게 여행 비용이 많이 줄었으니. 다만 모네다로 값을 지불해도 일부러 거스름돈을 덜 주려고 쿡으로 돌려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 음식점도 그랬다. 어느 정도 상업화된 거리에 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오프라인 번역기와 생존 스페인어를 동원해서 모네다로 거스름돈을 다시 달라는 의사표현을 한껏 하고서야 제대로 거스름돈을 돌려받고 나설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레닌에게 혹시나 업데이트가 있나 확인해보려고 와이파이 스팟을 물색했는데, 오프라인 지도에 나오는 호텔을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떠돌아다니는데 자그마한 호텔 주차장 경비원이 대뜸 말을 걸었다.


“어라, 너 휴대폰이 두 개나 돼? 하나는 나 주는 게 어때?”


“아, 하나는 한국에서 쓰는 거고, 하나는 미국에서 쓰는 거야. 유심 호환이 안 돼서.”


당황한 나의 대답에 그는 아쉽다는 듯 혀를 차고는 주제를 바꿨다.


“어디 찾는 데라도 있어?”


“혹시 이 주변에 와이파이 스팟이 있을까?”


“저 건너편 큰 호텔 보이지? 저기 정문 앞에 가면 잡힐 거야.”


“아 정말? 고마워!”



“잠깐만!”


활짝 웃으며 방향을 바꾸려는 나를 그가 다급하게 잡았다.


“혹시 남자친구 있니?”


역시, 그냥 지나가리란 법은 없구나. 지긋지긋한 그 멘트에 나는 표정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쿠바 남자친구는? 하나 필요하지 않아?”


“아, 아냐. 고맙지만 사양할게!”


대충 말을 끊고는 급히 몸을 돌려 반대편 호텔로 향했다. 로비 바깥 벤치에 걸터앉아 더위를 피하며 인터넷에 연결했다. 한 장소에 여러 명이 줄줄이 늘어앉아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광경은 아무리 반복되어도 잘 적응 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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