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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예 Jan 16. 2021

무작정 떠난 쿠바 여행 12. 새벽의 검정 봉고차

낯선 곳에서 모르는 사람의 차에 얻어 탄다는 것은

다음 도시인 트리니다드로 가는 첫차를 타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바라데로 까사에서 체크아웃했다. 주인아저씨는 내 일정에 맞춰 더 일찍 일어나서 맛있는 아침까지 준비해 주셨다. 마지막까지 그 마냥 바보 같은 웃음을 헤헤- 지어 보이며 수줍게 작별 인사를 건네는 아저씨에게 한국 쌀과자를 기념품 대용으로 몇 개 드렸다. 버스터미널까지 가기 위해 아저씨에게 버스 타는 법을 자세히 물어보고 숙소를 나섰을 땐 밖은 여전히 칠흑같이 어두운 상태였다. 밝을 때 보았던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 간간히 개 짖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버스를 타러 교차로까지 나가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정류장 표시도 없는 이곳에서 마을버스가 오는 게 보이면 손을 흔들어 타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어두컴컴한 마당에 버스는 고사하고 사람도 차도 잘 지나가질 않으니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다. 이러다가 버스터미널에 제시간에 도착은 할까 걱정이 가득했다. 염치 불고하고 주인아주머니께 데려다 달라고 할 걸 그랬나. 그러다 갑자기 웬 커다란 봉고차가 내 앞에 멈추어 서더니 창문을 내렸다.


“어디까지 가?”


운전석에 앉은 기사 아저씨가 크게 외쳤다. 적어도 내 빈약한 스페인어로 알아듣기는 그랬다.


“어… 버스터미널…”


나는 엉성한 스페인어로 더듬더듬 답했다.



“버스터미널? 그럼 타! 데려다줄게.”


흠칫 놀란 나는 차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아무리 봐도 버스 같지는 않고 안에 아무도 안 탄 걸 보니 택시인가 싶었는데, 택시 표시 역시 붙어있지 않았다. 연상되는 이미지는 바로 한국 괴담 속에 자주 등장하는 시커먼 봉고차. 나는 결국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거절 의사를 표했다.


“버스 탈 거야. 택시는 비싸서 탈 돈이 없어.”


“노 머니, 노 머니.”


아저씨는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며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연신 타라고 손짓했다. 짧은 시간 사이 머릿속에서 오만 생각이 교차했다. 아무리 안전한 쿠바라지만, 이거 위험한 거 아닌가? 쿠바에서는 돈을 받지 않고 재워 주거나 차를 태워 주는 건 불법이라고 들었는데. 하지만 버스가 언제 올 줄 알고 마냥 기다리지? 제시간에 도착을 못하면 어떡하지?



“고, 고마워.”


결국 나는 오들오들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조수석에 올랐다. 한 손에는 인터넷도 안 되는 휴대폰을 꽉 움켜잡은 채로. 언제든 차에서 뛰쳐나갈 준비까지 단단히 하고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치안 좋기로 유명한 쿠바니까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컸지만, 쫄보의 머릿속은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스페인어를 못하는 탓에 아저씨랑은 별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아무 일 없이 버스터미널에 금세 도착했다. 많이 걸어도 되지 않게 정확히 입구 바로 앞까지 굳이 들어가서 주차해 주시기까지 하니, 의심만 잔뜩 한 게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순수한 선의까지 쉽사리 믿으면 안 되는 이런 상황이 참 원망스럽기도 했고. 나는 가방을 뒤적거려 미국에서 가져온 화이트 초콜릿을 꺼냈다. 대니가 쿠바에선 팔지 않으니까 꼭 사다 달라고 부탁했을 때 혹시 몰라 두 개를 샀는데, 하나는 대니에게 주고 하나가 남은 참이었다.


“초콜라떼 아메리카노(미국 초콜릿이야).”


초콜릿을 가리키며 부족한 스페인어로 연신 말하고는 아저씨에게 건넸다. 아저씨는 약간 놀란 눈치로 초콜릿을 받아 들더니 고맙다고 짧게 인사했다. 봉고차에서 내려 아저씨에게 힘껏 손을 흔들며 터미널 입구로 향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에게 따뜻한 호의를 받은, 숨 막히면서도 참 고마운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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