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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예 Jan 20. 2021

무작정 떠난 쿠바 여행 15. 당신과 한국에서 만나기를

이들을 다시 보기 위해 한국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든 날

카우치서핑을 통해 연락한 아바나 현지인 중에는 대니 말고도 아딜슨이 있었다. 투잡을 뛰느라 하도 바쁘대서 겨우 날짜를 잡았는데, 당일 약속 장소가 엇갈려서 한참 헤맨 후에야 만날 수 있었다. 인터넷이 안 되니 약속이 의도치 않게 파투 나는 경우도 쿠바에선 수두룩할 테다. 엄마 아빠도 어릴 적엔 휴대폰이 생기기 전이니 그저 하염없이 약속 장소에서 기다려야 했다는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아딜슨과 함께 만난 스페인 친구, 미국 친구


“사실 네가 안 나올 줄 알았어. 만약 그러면 언제든 집으로 돌아오라고 엄마가 아침부터 놀렸거든.”


호쾌한 성격의 아딜슨은 만나자마자 농담을 던졌다.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한다는 그는 내가 만난 쿠바인 중에 영어를 가장 능숙하게 구사했다. 대니와 레닌도 영어를 무리 없이 하는 편이었는데, 아딜슨은 정말 미국인처럼 영어를 했다. 어떻게 공부했냐고 물어보니 켄드릭 라마 노래를 매일같이 듣다가 이렇게 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영어 대화에 아무 불편함이 없는 사람을 드디어 만나니 속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까삐똘리오 앞에서


아딜슨은 다른 현지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독특한 경험을 많이 선물해주었다. 쿠바의 명물 10페소 피자(단돈 300원에 피자를 먹을 수 있는 세상이라니!)를 파는 곳에 점심을 먹으러 간 것부터 해서 길거리에서 악사들이 연주하던 Echale Salsita라는 쿠바 노래(이건 쿠바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가 되었다)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또, 길거리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얗게 입고 다니는 여자들을 보고는 가톨릭과 아프리카 종교의 혼합인 산테리아 교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헤밍웨이가 사랑한 칵테일 바에는 이렇게 그의 동상이 있다


그다음엔 아딜슨의 집에 가서 온 가족을 만났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그의 아버지였다. 후줄근한 작업복 바지에 웃통을 벗고 있던 아딜슨의 아버지는 놀랍게도 서툰 영어로 나를 맞았다. 한국에 가보고 싶었다며, 언젠가 꼭 놀러 가겠다는 말과 함께.


“아빠의 꿈은 죽기 전에 쿠바 바깥으로 한 번이라도 나가보는 거야. 그래서 우리는 돈을 모으고 있어. 외국인이랑 결혼한 게 아닌 이상 해외에 가는 건 절차가 굉장히 복잡해. 그곳 사람이 초대장을 보내주어야 하고 돈도 많이 들고. 그래서 내가 아빠한테 말했지. 우릴 초대해줄 사람을 당장 구할 순 없지만, 그 대신 돈을 모으는 건 지금부터라도 할 수 있다고. 언젠가 그 기회가 생길 때 절대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비싼 경비를 부담할 수 있을 정도로 저축해둬야 한다고. 그리고 그때를 대비해서 아빠는 조금씩 영어 공부를 하고 계셔.”


아딜슨의 설명에 속이 아려왔다.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목표를 위해 미리 대비해두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아딜슨 부자의 꿈에는 그만큼 확신이 있었다.


“여긴 그래서 외국인들과 결혼을 많이들 하는 추세야. 나도 결국 이혼했지만 스페인 여자와 결혼한 적이 있었어. 결혼식을 올리려면 돈을 내야 하는데, 정부는 외국인들이 당연히 돈을 내줄 걸 아니까 현지인끼리 결혼할 때 600쿱(약 2만원)밖에 안 내는데 외국인과 결혼하려면 600쿡(약 70만원)을 내라고 해.”


그러고 보니 레닌도 예전에 노르웨이 여자와 연애한 적이 있다고 했던 게 슬그머니 떠올랐다. 그제야 쿠바인들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쉴 틈 없이 말을 거는 게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아딜슨네 가족과 함께


“있지, 내 꿈은 결혼식 때 카우치서핑을 통해 만난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는 거야. 비행기도 숙박도 내가 부담해서.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내게 베풀어준 호의를 잊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 답례로 우리나라 구경도 시켜주고. 사람들끼리 다 같이 만날 수도 있고.”


내 말에 아딜슨은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초대받는 날만을 고대하겠다고 답했다. 아딜슨의 아버지는 그새 완전 다른 사람처럼 양복을 쫙 차려입고 나오셔서는, 어깨를 으쓱하며 오토바이를 태워주기 위해 예의를 차린 거라고 말했다. 집 밖으로 나가자 반 인력거처럼 개조된 고대 유물 같은 오토바이가 있었다. 올드카보다도 더 올드해 보이는 이 오토바이를 타고, 아저씨는 우리를 아바나까지 데려다주는 길에 베다도를 빙빙 돌며 무료 투어를 해주셨다. 심지어 북한대사관은 꼭 보고 가야 하지 않겠냐며 방향까지 틀어 굳이 보여주시기까지. 오토바이에서 내려 작별인사를 하곤 싱긋 웃으며 멀어지는 아저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반드시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며.


아딜슨 아버지와 개조된 오토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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