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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예 Jan 21. 2021

무작정 떠난 쿠바 여행 16. 인종차별

레닌과의 재회, 그리고 쿠바에서 체감한 흑인 차별

아딜슨과 작별한 후엔 바라데로에서 학생버스를 타고 온 레닌과 만났다. 그는 아바나에서 제일 유명한 젤라또 가게에 날 데려가더니 현지인들에겐 더 저렴한 가격으로 판다며 본인이 사겠다고 했다.


“내가 딱 봐도 외국인인데 할인을 해줄까?”


“우리 의대에 교환학생이 많이 오는데, 그중 하나인 척하면 될 거야. 누가 뭐라고 하면 무조건 ‘요 쏘이 드 엘람’이라고만 해.”


나의 걱정에 레닌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거짓말에 굉장히 약한 나는 줄 서있는 내내 속으로 요 쏘이 드 엘람을 되뇌었다.



쿠바다운 기나긴 기다림 끝에, 다행히 별 의심을 받지 않고 젤라또를 사서 야외석에 앉을 수 있었다. 레닌에게 쿠바에서 있었던 다른 일들을 언급하며 알렉스 이야기를 해 주자 그는 코웃음을 치더니 알렉스를 가리켜 ‘네 물라토 남자친구’라며 놀렸다. 물라토, 물라토… 분명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단어인데. 물라토가 뭐냐는 내 물음에 레닌은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 중 피부가 어두운 사람들을 꼽아내며 저들이 물라토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떠올랐다. 메스티소, 물라토, 삼보. 중학교 사회 시간에 배웠던 내용이었다. 중남미에서 인종이 섞이며 태어난 백인과 흑인의 혼혈을 가리키는 말이 바로 물라토였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단어를 실제로 쓰는 걸 보니 기분이 묘했다. 중학생 당시, 나는 이 단어를 내가 살면서 한 번이라도 쓸 날이 올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그러고 보니 그동안 만난 쿠바인들은 다 흑인 계열이었다. 완전히 백인이었던 레닌을 제외하고는. 쿠바 사람들마저도 레닌을 외국인으로 착각한 채 스페인어를 못 할 거라고 넘겨짚어 나에게 대신 대답하는 우스운 상황도 몇 번 있었다. 그들은 레닌이 스페인어로 입을 열면 배신감이 스친 표정으로 어이없게 바라보곤 했다. 레닌은 오히려 본인이 외국인 관광객으로 취급되는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어차피 그는 대다수의 쿠바인들과는 다르게 춤을 추는 것도 싫어했으니.



하지만 대니가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쿠바는 흑인이 아무리 많아도 인종차별이 그대로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젤라또를 다 먹은 후 저녁이 되어 시내에서 열리는 축제를 구경하러 갔을 때, 엄청나게 몰린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입장 시 가방을 검사하고 있었다. 레닌은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을 던졌다.


“우리는 검사 안 받을 거야. 분명 흑인만 골라서 할 걸.”



그리고 그의 말은 맞아떨어졌다. 흑인들만 잡아 세워 가방을 검사하던 경비들은 우리 차례가 되자 무심하게 그저 손짓해서 보내버리는 게 아닌가. 대니, 알렉스, 아딜슨의 웃는 얼굴들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며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쿠바에서마저 인종차별이 만연하다니. 이들은 만에 하나 쿠바를 탈출한다 해도 또다시 쓰린 현실에 좌절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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