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의대생 레닌의 인생 목표는?
“네 인생 목표는 뭐야?”
“인생 목표? 음…”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말레꽁에서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가볍게 나누던 대화가 갑작스레 이렇게 깊은 주제로 이어질 줄이야.
“글쎄… 이건 최근에 여행을 거듭하면서 느끼게 된 건데, 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편견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문화, 종교, 인종, 정치, 모든 면에서 말이야. 세계가 글로벌화됐다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디서 어떻게 뭘 하고 사는지 잘 모르고, 미디어에 비친 것들로만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더라고. 여행을 가거나 교류가 잦아지면 그런 게 조금 덜해지겠지만, 대부분은 그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니까… 내가 간접적으로라도 세계 곳곳의 이야기를 전한다면 그게 조금씩 모여 다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고. 언젠간 다양성이 더 존중되는 세상이 되었음 해.”
겨우 끌어올린 나의 대답에 레닌은 그저 한쪽 눈썹을 치켜뜰 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았을까.
“그럼 네 인생 목표는 뭔데?”
“그야 당연히 혁명이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단호히 답하는 그의 모습에 난 흠칫 놀랐다. 저거야말로 더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닌가. 레닌은 점점 어두워져 가는 지평선 저 너머를 바라보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내가 제일 존경하는 인물은 체 게바라야. 나는 쿠바의 뒤틀린 현실을 바로잡고 싶어.”
“하지만… 그러다 감옥에 가면 어떡해. 안 무서워? 가족이 많이 슬퍼할 텐데.”
“체 게바라도 감옥에 갔는걸.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으쓱하며 별 것 아닌 듯 말하는 레닌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문득 체 게바라도 한때는 의대생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냈다. 혁명가라니. 독립운동가나 의병단처럼 역사책에나 나올 법한 단어들. 레닌은 그런 단어를 현실로 마주하고 있었다. 내가 마치 무슨 위인전기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천재 해커, 괴짜 의대생, 그 뒤에 미래 혁명가라는 수식어를 하나 더 붙였다.
“왜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거야?”
“쿠바에 25년 살다 보면 매일이 재미없어. 네 말대로 부모님께서 이런 나를 걱정하시는 건 맞는데, 그래도 난 내 자식에게까지 이런 현실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
체 게바라를 닮고 싶다는 이 젊은 청년의 결의에 찬 표정은 인상 깊게 내 머릿속에 남았다. 정작 그날 밤의 화려했던 카니발보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