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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예 Feb 05. 2021

남미에서 생긴 일 1. 미지의 세계로

[브라질, 상파울루]

미지의 세계는 두려울 수밖에 없다. 발을 디뎌보지 못한 곳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 긴장감, 그리고 선입견… 남미가 나에겐 딱 그랬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웬만한 곳은 다 가보았지만, 미국으로 돌아올 때 가려고 남겨둔 남미는 무언가 공포스러운 대륙이었다. 온갖 사건사고에 대해 하도 자주 듣기도 했고, 내가 스페인어를 못한다는 것도 한몫했을 테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꼭 가보고 싶어 이것저것 찾아보았던 아프리카보다도, 남미는 훨씬 더 무서웠다. 정작 가보니 아프리카 여행을 해본 입장에서 남미는 세상 편리하고 재미있는 동네였지만.

 


어쨌든 겨울 방학 한 달을 남미에 투자하기로 결심하고서, 어떤 루트를 타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었다. 인터넷에 보면 시계 방향, 반시계 방향 등 소위 말하는 ‘국민 루트’가 있었으나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제약도 마음에 걸렸고, 비행기를 많이 타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닌 데다가, 역시나 흔한 방식을 추구하는 건 내키지 않았다. 결국 나는 브라질에서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를 거쳐 페루까지, 가로로 쭉 육로 횡단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결정된 첫 도시 상파울루. 과장 하나 안 보태고 남미 여행은 처음 시작점부터 미국에 다시 돌아오는 순간까지 예상 밖 기상천외한 변동들의 연속이었다. 출발 당일 공항으로 향하는 와중에 비행기가 취소되어 한참 멘붕에 빠졌다가, 겨우겨우 비행 편을 바꿔서 상파울루에 도착했더니 수하물로 부친 배낭이 사라지기도 했다. 다행히 빠져나가는 영혼을 붙잡고 돌아다닌 끝에 Special Size Luggage 구역에서 찾을 수 있었지만.


순탄치 않다가도 고마운 사람들, 즐거운 추억들이 한껏 뒤섞여 밀당의 맛을 제대로 선사하는 곳이 바로 남미 대륙이다. 이를테면 상파울루 공항에서 카우치서핑 호스트 집을 찾아가려는데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을 갈아탈 때부터 그랬다. 번잡한 역에 들어서자 알쏭달쏭한 포르투갈어 안내판이 수두룩하게 펼쳐져 있던 그곳. 말 그대로 눈알만 굴리며 매표소 비슷한 곳을 찾았으나 지하철역과 기차역이 합쳐져 있는지 하도 창구가 많아서 영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뒤에서 무심한 표정의 중년 남자가 나를 툭툭 건드리며 말을 걸었다. 화들짝 놀라서 돌아보니 나와 같이 공항버스를 탔던 새파란 티셔츠 아저씨였다. ‘나를 쫓아왔나…?’ 영화 같은 황당한 상상이 든 것도 잠시, 대충 포르투갈어를 할 줄 아냐는 뜻인 것 같아서 고개를 가로저었더니, 서툰 영어로 영어는 할 줄 아냐고 더듬더듬 묻는다. 할 줄 안다는 나의 대답에 아저씨는 지하철 매표소는 여기가 아니라며 대뜸 나를 인도했다. 과연 저만치에 또 다른 매표소가 보였다. 


“아, 저기서 사면 되는 거지?”


“원래는 그런데, 넌 살 필요 없어. 내 교통카드로 내줄게.”


그는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츤데레처럼 호의를 베풀었다. 카드를 두 번 찍어 나까지 들여보내 준 후, 내가 어디까지 가는지 묻고는 환승역까지 일일이 확인해주기까지 했다.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현지인이 아니라서 헤매는 것 같았거든.”


지하철에 탑승한 후 그는 그렇게 설명했다. 거대한 배낭을 멘 채 누가 봐도 나 여행자요- 하는 느낌을 뿜뿜 쏟아내던 나를, 그는 공항버스에서부터 눈여겨봤다고 한다. 일본계 브라질인인 그는, 내가 캘리포니아에서 왔다는 말에 그곳은 학비가 비싸지 않냐며 브라질의 무상 교육을 자랑하기도 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고는 반가워하며 브라질엔 일본인이 참 많지만 한국인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고도 알려주었다. 그가 짧은 영어로 이 말 저 말을 던지고 내가 몇 번 웃음을 터뜨리자 열차는 어느덧 환승역에 도착했다. 그는 나와 함께 내린 후 내가 갈아타는 곳까지 가서 맞는 방향으로 타는지 확인한 후에서야 인사를 했다.


“Welcome to Brazil!”


손을 흔들며 던진 그 마지막 한 마디에 왜 괜스레 마음이 찡하던지.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이렇게까지 선의를 베푸는 그 모습에 브라질이 한껏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막막했던 남미 여행의 한 줄기 빛이 되어준 그는 사실 시작에 불과했으니. 그 후로 만난 수많은 친절한 사람들 역시 구세주처럼 매번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곤 했다. 그만큼 밀당의 고수였던 남미, 이제부터 여행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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