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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리아 DayLia Apr 19. 2024

두 번째 임신, 끔찍한 입덧, 임신 초기 해외여행

이제 한국이 해외가 되었다.

첫 유산 이후 임신 시도 1년이 지났을 때 포기하니까 찾아와 준 우리 아기. 얼마나 기뻐했는지.

한국 여행을 가기 2주 전에 알게 되어 조금 걱정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임신 초기에 해외로 여행을 무사히 다녀왔다는 후기를 읽고 안심했다. 그래, 아기가 또 잘못될 수는 있겠지만 그건 내가 뭘 해서라기보다는 원래 그렇게 될 아기여서 그렇게 되는 걸 거야. 한국에 다녀오자.

사실 이번 한국 여행에서 임신 소식을 부모님께 숨길 생각을 했었는데 임신 6주가 되자마자 입덧 증세가 시작되었다. 하... 이거 숨길 수 없겠는데?


입덧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먹덧, 토덧, 침덧, 양치덧... 나는 양치덧에 해당되었다. 양치덧이라는 게 양치할 때만 입덧하는 것이 아니라 치약과 같은 인공적인 향을 맡으면 헛구역질이 시작되며 심하면 토하게 된다.

나는 세상에 인공적인 향이 그렇게 많은지 잊고 있었다.

비누, 샴푸, 바디워시, 화장품, 손세정제, 세제, 치약, 방향제, 향수, 향초... 그리고 모든 과자나 음료수에 들어가는 합성착향료, natural flavor 등등.

와... 정말로 순수하게 자연에서 나오는 냄새가 아니면 바로 우욱. 헛구역질이 시작되었다. 정말 머리를 감으면서, 양치를 하면서 토를 하게 되는데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게 사는 것 같아 너무 억울했다.

샴푸와 비누, 세제, 화장품 모두 무향제품으로 바꿔서 집 안에서는 그래도 버틸 만했는데 밖에만 나가면 사람들의 향수, 데오드란트, 섬유유연제 냄새에 계속 헛구역질을 하게 되었다. 양치도 일단 물로만 양치를 한 뒤 마지막에 숨을 참고 치약을 써서 후다닥 끝내야 했다. 그럼에도 숨을 못 참고 조금이라도 숨을 쉬거나, 입을 헹구고 남은 잔향에 헛구역질을 하다가 토하기 일쑤. 양치를 하는 의미를 찾기 어려운 나날들이었다. 충치가 생길까 봐 치실질도 열심히 했지만 결국 임신 후기에 어금니 끝에 충치가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정말 너무 억울했다. 이건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비참함일 것이다. 


그렇게 임신 7주가 되었고 임신 초기여서가 아니라 입덧 때문에 걱정을 한가득 안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공항에 도착했는데 하... 향수 뿌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싫다. 다들 좋은 향을 뿜뿜 하며 내 곁을 지나갔고 나는 헛구역질을 참아가며 마스크를 얼굴에 꼭 누른 채 공항에 와서 기다리시는 부모님을 찾아갔다.

엄마, 아빠! 감격의 포옹을 하는데 아... 우리 부모님께서도 섬유유연제를 쓰시는구나... 우욱, 구역질이 났다.


"엄마, 아빠 잠시만요. 우리 기념사진 찍어요."

"공항에서?"


미리 남편과 입을 맞춘 상태였기 때문에 얼떨떨해하시는 부모님과 인천공항 벤치에 앉았다. 남편이 핸드폰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고(물론 부모님은 사진을 찍는 줄 아셨지만) 나는 외쳤다.

"엄마, 아빠! 사실 우리 둘이 아니라 셋이 왔어요!"

말이 끝나자마자 엄마는 내 얼굴을 쳐다보시더니 "진짜?!"라고 외치시며 웃는 얼굴로 우셨다. 일 년 동안 아기가 생기지 않아 많이 걱정하셨기 때문이리라. 아기 없어도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우리들의 말에 충격을 받으신 후라서 더더욱 좋아하셨던 것 같다.

아빠는 처음에 무슨 의미인지 못 알아채셨던 것 같다. 그러다가 엄마의 반응을 보고 눈시울을 붉히셨다.

기쁨도 잠시, 나는 나의 입덧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계속 참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빠는 나를 배려해 주시기 위해 조금 떨어져서 걷기 시작하셨고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국 여행이 시작되었다.


4년 만에 방문한 한국. 많은 것들이 그대로인 듯했지만 많이 달라진 모습들이었다. 그리고 내가 겪었던 가장 힘든 일은 어딜 가든 존재하는 화장실의 방향제 냄새, 물비누에서 나는 아주 강력한 향기였다.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두려울 정도였고 그래서 물도 안 마시고 싶을 정도였다. 정말 모든 음식점의 화장실에는 반드시 방향제를 쓰는 것 같았다.

KF94 마스크를 항상 쓰고 다녀야 했고 그마저도 양손으로 얼굴에 꽉 붙여서 다녀야만 토하지 않을 수 있었다. 지하철이 버스보다 더 괴로웠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하철에서 더 높은 확률로 향수를 뿌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지하철에는 임산부 배려석이 있어서 꽤나 높은 확률로 앉아서 갈 수 있었기에 그것 하나는 장점이었다. 외국에 살기 때문에 임산부 배지를 받을 수 없어서 그게 좀 아쉬웠지만(나도 대한민국 국민인데ㅠ) 해외 거주자의 비애일 수밖에.

임산부 배려석에 앉으면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나는 특히나 남편이 외국인이라 더더욱 쳐다보는 듯했다. 괜히 배를 손으로 감싸게 되더라. 초기 임신부는 티가 나지 않기에(나는 배지도 없고ㅠ).

임신하기 전에 세웠던 모든 계획들은 물거품이 되었다. 입덧 때문에 맛집에 가는 것 자체가 하나도 즐겁지 않았고 서울의 9월은 너무 더웠다... 땀이 나서 다리 사이 피부가 짓무르고 초기여서 그런지 현기증이 나고 입덧까지 나를 괴롭혔다. 임신 초기에 입덧을 한다면 해외여행,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


그래도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한 친구 그룹에서 '아, 여기 한국이었지.'싶었던 일을 겪었다.

"왜 이렇게 살이 많이 쪘어?"

미국에서 너무 오래 살았나. 적응이 안 되더라. 하하.

나는 "마음이 편해서. 하하"라고 대충 대답했다. 씁쓸.


또, 날씨가 너무 더워서 가져온 옷들을 못 입고 엄마의 원피스를 빌려 입고 다녔더니 다리 사이 피부가 짓물렀다. 그래서 속바지를 사러 이마트에 갔는데 이마트 직원이 나를 위아래로 스캔한 뒤 뱉은 말.

"우리 가게에 그런 사이즈는 없어요."

아... 여기는 한국이었지.

내가 미국에서 M사이즈를 입는데(M사이즈도 좀 넉넉한 편이다) 한국에서는 M사이즈가 XL 사이즈보다 큰 것 같더라. BMI에서 아직 정상이라는 수치가 뜨는데도 사이즈가 안 맞다니. 충격이었다. 물론 내 골반이 일반 사람보다 큰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말할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쳇.


친구 결혼식에 갔다. 진심으로 축하해 줬는데 아주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이 나를 보더니. 

동창 A: "많이 달라졌다." 

동창 B: "내가 말했잖아, 살이 엄청 많이 쪘다니까?"

아... 기분이 좀 나쁘네. 뒤에서야 말할 수 있지만 굳이 내 앞에서까지?

부러워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한국에서의 삶이 여간 팍팍한 게 아닌가 보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미국에서 넓은 집에, 좋은 남편 만나 고생 하나 없이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일 테니(실제로도 그렇지만).


친척들을 만났다. 내 외모에 대한 지적은 없었다. 그런데 내 입덧이 유별나다는 지적은 들었다.ㅠ 이건 정신적으로 이겨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내가 이렇게 유난을 떨면 나중에 태어날 아이도 유난을 떨게 될 거라는 말을 들었다(저주 아닌가?). 와... 진짜 나 미국 사람이 다 되었나 보다. 미국에서 이런 말을 들을 일이 없으니(미국 문화상) 적응이 안 되더라. 허허.

또, 입덧이 그렇게 심한데 왜 왔냐는 말도 들었다. 임신하게 될 줄 알고 여행을 계획한 게 아니라고요.ㅠ

정말 너무들 하네.


나 때문에 부모님도 힘들어하셨다. 부모님 댁에 있는 모든 향이 나는 것들 때문이다. 엄마의 화장품까지. 나의 입덧 때문에 모두가 힘들어했던 것 같아서 괜히 서러웠다. 제일 힘든 건 나란 말이야.ㅠ


그래도 한국에 있을 때 산부인과에 예약 없이 주말에 가서 검사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좋았다. 한국의 의사들이 좀 가여울 정도였다. 주말까지 나와서 일해야 할 정도인 거야?ㅠ 미국의 의사들은 월-금 평일에만 일하고 저녁 근무가 어디에 있는가. 오전 9시 출근에 오후 4시-5시면 퇴근이다. 진짜 병원에 가려면 회사에 병가를 내야만 갈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게다가 나는 미국 병원에 방문할 때 Co-pay로 40달러씩 내는데 한국에서는 보험도 없이(나는 해외 거주자라서 국민의료보험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진료를 본 뒤 초음파 검사까지 했는데도 3만 6천 원이 나왔다. 정말 싸구나! 이것도 주말 가격이라서 좀 더 비싼 거란다.


처음 7주 차 초음파 검사를 할 때 남편과 함께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른다. 또 아기의 심장이 안 뛰는 영상을 보게 될까 봐.

그런데 초음파 영상을 보자마자 반짝반짝 심장이 뛰는 게 보였다.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지더라. 내가 막 우니까 의사 선생님께서 당황하시며 괜찮으세요? 어디가 불편하세요?라고 물어보셨다.

"아니요. 너무 행복해서요.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은 자신은 감사를 받을 만큼 한 일이 없다며 겸연쩍게 웃으셨다. 우리 부부에게는 그냥 모든 게 감사한 상황이었다. 미국의 검진실과는 달리 남편은 진료실에서 다른 모니터로 동시에 초음파 검사 화면을 봐야 했는데 의사가 하는 말이 잘 안 들려서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었지만 아기 심장은 봤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국을 떠나기 전 임신 9주 차에 다시 한번 초음파 검사를 하러 갔다. 아기는 여전히 건강하게 잘 크고 있었고 우리는 안심하며 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미국에 도착하니 마음이 편한 것이 아, 이제는 이 나라가 나의 안식처가 되었구나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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