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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 Mar 11. 2023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면

사춘기 아들과 소통하기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엄마와 함께 하는 숙제 타임이 있다. 숙제가 매일 안 되어 있는 둘째군에게는 거의 고정적으로 매일 맞이하는 시간이고, 학원에서 늦게 오기 때문에 내가 잠든 후에 오는 경우가 많은 첫째군은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서재에 모여서 다같이 공부를 한다. 내가 가운데 앉고 우첫째 좌둘째로 나란히 앉아서.


사실 첫째군은 어렷을 때부터 혼자 알아서 숙제하고 알아서 학원가는 스타일이어서 내가 별로 터치하지 않는데 가끔 한번씩 크게 걸릴때가 있다. 답지를 보고 베낀다거나, 숙제를 안해간다거나(이거야 금방 들통이 나므로 요즘은 잘 안하는 일). 한동안은 문제를 안풀고 자기맘대로 답을 쓴 다음에 푼 것처럼 채점을 해놓는 깜찍한 짓도 했다.(맨날 다 맞는게 이상해서 어느날 유심히 보신 선생님에게 딱걸림) 그런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숙제를 안하면 집에 안 보낸다거나, 답안지를 선생님들께서 갖고 계시거나 하기 때문에 한동안 잘 하고 있겠거니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담을 하다가 선생님께서

숙제를 너무 일찍 끝내거나 할 때는 유심히 지켜봐 주세요.

'음? 왜요? 답지는 선생님이 갖고 계시잖아요.'

"아이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워낙.. 스마트폰 앱으로 찍기만 하면 금방 답지 찾을수가 있고.. 너무나 잘 되어 있어서요.."

'에??'

아.. 또 뒤통수를 맞았다. 나는 순진하고 순진하게도 종이 답지가 없으면 베낄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마음을 놓아버렸으니.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인터넷에서 얼마나 쉽게 구할 수 있을텐데... 역시 어리석은 애미 같으니라구.

그리하여 '엄마와 함께 하는 숙제 타임'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두 번쯤은 지켜봐야겠다 싶어서.


옆에서 수학 문제를 풀다가 이녀석은 일부러 그러는건지, 자꾸 모르겠다며 엄마는 이거 풀수 있냐는 식으로 나를 찔러본다. 아니 내가 저걸 배운지가 언젠데, 배운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것을 어떻게 기억해. 그럼에도 나는 또 덥썩 걸려들어서 '이리 줘봐라' 하면서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이차방정식, 인수분해, 마치 학창시절 먼 친구의 이름처럼.. 웬지 알 것 같고 반갑긴 한데 누군지는 전혀 기억이 안나는 흐린 기억속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단어들이란.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모른다 할수도 없어 받아들었는데 막삭 붙잡고 나니 답이 척척 나오기 시작.

“아니 엄마는 어떻게 식을 쓰지도 않고 문제를 풀어? 그거 완전 감으로 찍는거 아냐?”

‘아니지, 답이 정확하게 맞았잖아. 그걸 어떻게 찍니?’

그냥 딱 보면.. 보여

그렇다. 아마도 나는 문제집의 홍수에 빠져 허덕이는 학생이 아니라, 한 걸음 뒤에 물러서서 바라보기 때문에 전체가 한눈에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딱 보면 답이 보이는데, 이게 그렇게 어렵나..


40대가 넘어가니 신기하게 모든게 수월해 졌다. 이래서 마흔이 불혹인가

불혹(不惑) -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 

뭐 하나라도 계획되로 안되면 안달복달 병이 나고 마는 못된 성격도, 빨리빨리 해치우지 않으면 다리를 못 뻗는 지독한 조급증도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아지는 나날들. 세상 일 다 그럴 수 있다며 뭐 그렇게 급할 것도 없다며.


얘야,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 금방 보일텐데

너는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까? 나만큼이나 성질이 급하디 급한 녀석.


그나저나, 이참에 공부를 다시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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