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라이프

(1) 오래된 주유소

by 유스

제 고향은 작은 도시입니다. 차도 꽤 많고 아파트도 꽤 많죠. 간혹 도시 외곽으로 나가면 드물게 논과 밭도 있어요. 지난 여름, 전 몇년간의 서울 생활을 접고, 작은 고향보다 더 작은 시골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습니다.

여긴 정말 시골이에요. 논과 밭이 흔한 풍경이고, 아파트가 드문 풍경이죠.

이곳에서 저는 ‘옛날’ 방식으로 살아가는 풍경을, ‘요즘’ 사람인 제 눈으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제 이야기의 제목을 '시골, 라이프' 정도로 부르면 될까요?

시작해볼게요.


(1) 오래된 주유소


완주군 고산면에 있는 오래된 주유소.



이것은 주유소다. 사진에도 ‘금성 주유소’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으니 주유소가 맞을 것이다.

이곳이 길거리의 흔한 주유소와 다른 점은, 멈춰져 있는 주유소라는 것이다. 시간은 멈췄지만, 차가 서지 않고 사람은 멈추지 않는다.


주인장의 얼굴을 보고 싶어 기웃거리니 이웃 할머니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느껴진다. 무릇 시골은 이렇다. 이방인을 경계하기보다 궁금해 하는 순한 심성.


“사진은 왜 찍는데요?” (할머니 1)

“아. 그냥 길 가다 오래된 주유소가 있길래 찍어봤어요.”(나)

“(이해가 안 되신다는 듯) 오래돼서 찍는다구? 그럼 나도 찍혀야것네.”(할머니 2)


그럼 할머니도 찍어드릴까요, 라고 농을 던져볼까하다 그만둔다. 왠지 등짝 맞을거 같아서.




어렸을 적, 저 주유통을 본 기억이 있다. 아빠가, 허리가 길고 삐죽한 당신을 닮은 르망에 태워 데려갔던 주유소에서, 저 빨갛고 파란 주유통을 봤다.

"가득이요."

당당하던 아빠의 목소리가 어렴풋 떠오른다. 기억 속 아빠 얼굴은 가뭇하지만, 기억 속 르망은 선명하고, 주유통은 장장하다.


K-6.jpg 르망은 대우가 1986년 선보인 소형차다. 당시 가격은 고급형 485만원, 최고급형 519만원. (이미지출처: http://auto.naver.com/car/main.nhn?ye)


우리 집 첫 차는 르망이었다. 먼지 묻은 흰색에는 중고차의 딱지가 붙어있었다.

그날 아빠는 온 가족을 집 앞으로 나오게 하더니 우리를 태워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사다리꼴 창문에 매달린 난 가슴이 벅찼다. 서먹한 우리 가족이 달뜬 마음으로 한 자리에 모인 특별한 시간이었다.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둥글게 자전하고 있는 하나의 우주였다. 누군가는 '르망은 절망'이라 혹평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르망은 로망' 이었다.

나이를 먹고 '내 차'라고 부를만한 소유를 가지게 되었지만, 아직도 나는 르망을 타고 벅찼던 어린 시절의 떨림을 기억하고 있다.




언젠가, 어느 SNS에 저 주유소 사진을 올린 적이 있다.

댓글이 달렸다.

“와~~ 영화 세트장인가요??”

"박물관에 재현된 게 아니라 실제 남아있는 건물이에요?"


생각해보니 그때 그 분들께 답변을 못 드렸다.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답변이 되시길.


"영화 세트장도 아니구요, 박물관에 재현된 것도 아니에요.

그냥, 시골 주유소입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