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어린 입맛 하곤 어울리지 않게 팥을 좋아했다. 팥이란 게 왠지 예스러운 느낌을 담고 있어서인지, 유난히 팥죽이나 팥칼국수를 좋아하는 어린 나를 두고 ‘어린애답지 않은 노인 입맛’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겨울이 오면 늘 엄마는 간식이자 주식으로 팥칼국수를 직접 만들어 주곤 하셨다. 단지 당신 딸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래서인지 식탁에 팥칼국수가 올라오는 날은 겨울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우리 집만의 겨울 신호탄이었다.
“엄마 귀찮게 뭐 하러 만들어? 그냥 사 먹지.”
딸의 퉁명스러운 질문에 엄마는 늘 똑같이 대답했다.
“별 힘든 일도 아닌데 엄마가 해주는 게 더 맛있지. 네가 자식 낳아보면 엄마 마음 알 거야.”
하지만 엄마의 말과는 달리 통팥을 죽으로 만드는 건 꽤 번거로운 작업이다.(물론 나는 해보지 않았다.)
우선 시장에서 사 온 팥을 깨끗하게 씻어 물에 불린 후 어느 정도의 시간을 두고 불 옆에서 기다려야 한다. 행여나 팥이 솥 바닥에 눌어붙지는 않을까 끈기 있게 저어 삶아야 하는 작업 인 게다. 어느 정도 삶아지면 삶은 통팥을 꺼내 물을 부어가며 채에 눌러 으깬다. 아니 말만 들어도 ‘별 일’이 아니라는 엄마의 말은 거짓이지 않은가.
통팥이 죽으로 만들어졌을 때, 늘 엄마의 얼굴에는 겨울에 어울리지 않은 작은 홍조가 띄어져 있었다. 그래서 집에서 먹는 팥죽은 그 어떤 팥죽보다도 붉은빛을 띠는 건가 싶은 생각마저 들곤 했다.
팥죽을 먹고 자란 어린 나는 어느덧 나이를 먹고 엄마 품을 떠나 타지 생활 중이다. 몇 달 여 만에 고향 집을 찾은 지난 겨울날의 식탁에는 어김없이 그 음식이 등장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붉은빛을 띤 진한 팥색의 칼국수. 커다란 면기가 작아 보일 정도의 많은 양이었다. 지난 계절에 주지 못한 사랑까지 꾹꾹 눌러 담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하얀 설탕을 숟가락으로 듬뿍 퍼서 살살 뿌렸다. 설탕이 잘 녹아들도록 휘저은 후 몇 번의 간 보는 단계를 거친 후 한입 먹어본다. 엄마의 사랑이 담긴 진한 팥죽을 입안에 머금으며 ‘올해도 겨울이 왔구나’라며 겨울과 인사를 나눈다.
늘 겨울이 오면 난 엄마의 팥칼국수가 생각난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이 맛을 보지 못할까 벌써부터 겁이 나는 건 내가 너무 겁쟁이이기 때문일까. 어쩌면, 내가 여름보다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엄마의 팥칼국수 때문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문득 엄마에게 전화 한 통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 식사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