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형의 정의
이상형이 뭐야?
언젠가부터 이상형을 묻는 질문이
부담스러워졌다.
이상형을 따져가며 상대방을 '고를' 나이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과거에 저런 질문을 받았다면
의레 이런 대답을 했다.
'연예인 누구를 닮은 사람'이
내 이상형이다라고.
예컨대
밴드 넬 보컬 김종완 같은 사람이 좋아.
배우 조진웅 같은 사람이 좋아.
뭐 이런 식.
헌데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으면서,
20대에서 30대로 변화하면서,
저 이상형이란 것이 다른 방향의 구체성을 띄기 시작했다.
예컨대 이런 거다.
친구 - "너 이상형이 어떻게 돼?"
나 - "엘리엇 스미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친구 - (뭐래 라는 표정)
나 - 아 물론, 돈도 잘 벌고 잘생기면
좋지.
친구 - 뭐래. (이건 말로 함)
34살 젊은 나이로 요절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엘리엇 스미스.
그 사람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내 이상형이다, 라는
오글거리는 말을 떠벌리기 시작한 게
언제 부터였을까?
외모가 아닌 교감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서로를 맞춰나가는 시간이
조금 줄어들 테고
그럼 연애가 더 편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얼마 전 마침표를 찍은 나의 네 번째
구 남친은
나를 만나기 전 '엘리엇 스미스'가
사람인 것조차 몰랐던,
오히려 그와는 반대 성향인
힙합을 좋아하고 드렁큰 타이거의
타이거JK를 그의 정신적 멘토로 삼았던 녀석이었다.
언젠가 그의 휴대전화 음악 리스트를
본 적이 있었다.
리스트에는
드렁큰 타이거의 노래 몇 곡.
유행하는 10대 걸그룹들의 노래 몇 곡.
나는 모르는 힙합 곡 몇 곡.
그리고
엘리엇 스미스 노래 몇 곡.
이 외 내가 좋아하는 이한철, 검정치마, 9와숫자들 등의 노래가 각각 몇 곡씩.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내 이상형은
'엘리엇 스미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엘리엇 스미스 음악을 들어보려는 사람' 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문득 의문이 든다.
과연 나는 저 녀석에게,
이상형의 정의를 바꿀 만큼의 사랑을
주었던가.
그가 엘리엇 스미스를 듣고 있던 그 시간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제는
누군가 이상형을 묻는 질문을 한다면
-제발 질문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엘리엇 스미스 음악을 들어보려는 사람'
역시,
사랑은 쉽지 않다.
여기서부터는 번외 편.
나는 남자를 만날 때 '외모를 보지 않는다'라고 말하지만
이 '외모를 본다'는 것이 참 애매한
표현이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잘 생긴 사람'-예컨대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형- 을 원하지는 않지만
내가 선호하는 몇 가지 취향의 기준은
생각보다 확고하다.
네 명의 공식적인 구 남친들을
쭉 떠올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남친 - 검은색 뿔테. 일반 체형. 쌍꺼풀 無. 꿈이 목사님.
두 번째 남친 - 검은색 뿔테를 썼다 벗었다 함. 마른 체형. 쌍꺼풀 無. 직업 회계사(가 됐다고 풍문으로 들었소)
세 번째 남친 - 검은색 뿔테(로 내가 바꿔줌). 매우 마른 체형. 쌍꺼풀 無. 별명이 김제동.
네 번째 남친 - 검은색 뿔테(이쯤 되니 나 뿔테에 뭐 있나 봄). 마른 체형. 쌍꺼풀 無. 하얀 피부.
이렇게 정리해보니
내가 선호하는 남성상은 이 정도
되는 것 같다.
하나, 쌍꺼풀이 없거나 속쌍꺼풀인 눈매
둘, 보통 체격이거나 마른 체형
선호하는 분위기로는
하나, 착해 보이면 좋겠고
둘, 착실한 모범생 느낌
모 여자 연예인의 구 남친과 현 남친을
보며
"그녀는 '공룡상'을 좋아하나 봐"라는 이야기가 나오던데,
그럼 나는 '뿔테상'을 좋아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