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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스 Aug 23. 2020

너의 광대가 되어줄게

남편 고가 며칠째 잠에 들지 못한다. 일이 많고 생각할 게 많으면 잠과 대척하는 사람이다.


잠들지 못하는 밤은 괴롭고 그 괴로운 다음날은 눅눅해져 더 괴롭다. 고작 잠에 하루가 좌지우지되는 것이 못마땅하지만 인간의 몸뚱이는 곧잘 그렇다. 그래서 그의 잠 못 자는 새벽은 옆 자리에 누운 내가 더 걱정이 많아지는 새벽이 된다.


침대에서 함께 뒤척이던 중 고가 갑자기  목소리를 녹음하기 시작한다.

따라 해 봐.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아닌 밤중에 목소리 녹음이라니. 영문을 모르지만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 순순히 따라 해 본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목소리를 재생시켜본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이게 내 목소리야? 대박. 이상한데.

응 네 목소리 맞아. 대박 이상하지.

고저 없는 무뚝뚝한 열두 글자에 우린 둘 다 낄낄 웃어댄다. 닌 밤중에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 더 신나게 웃어댄다.



고가  목소리 녹음을 재생시킨다. 그리곤 혼자 또 낄낄 웃는다. 아마  우울할 때 꺼내는 플레이 리스트 61번이 완성된 것 같다. 플레이리스트 1번은 술에 취해 형편없는 노래를 부르는 내가 주인공인 동영상이고 그 외 나를 근접 촬영한 아니 핸드폰 카메라 버튼을 그냥 마구잡이로 눌러 찍힌 사진들이 수십장 있다. 고는 기분이 처질 때나 우울할 때 그 영상과 사진들을 꺼내본다.  꺼이 고의 광대가 다.



문득 고에게 사랑을 느낀다. 자신의 힘듦떠벌리지 않는 과묵하고 처량한 그에게 연민을 느낀다. 인어공주가 왕자를 위해 목소리를 내어주것처럼 내가 가진 것으로 그를 웃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든지.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런 인사말은 수십 번, 그래 조금 더 써서 수백 번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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