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고가 며칠째 잠에 들지 못한다. 일이 많고 생각할 게 많으면 잠과 대척하는 사람이다.
잠들지 못하는 밤은 괴롭고 그 괴로운 다음날은 몸이 눅눅해져 더 괴롭다. 고작 잠에 하루가 좌지우지되는 것이 못마땅하지만 인간의 몸뚱이는 곧잘 그렇다. 그래서 그의 잠 못 자는 새벽은 옆 자리에 누운 내가 더 걱정이 많아지는 새벽이 된다.
침대에서 함께 뒤척이던 중 고가 갑자기 내목소리를 녹음하기 시작한다.
따라 해 봐.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아닌 밤중에 목소리 녹음이라니.영문을 모르지만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 순순히 따라 해 본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목소리를 재생시켜본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이게 내 목소리야? 대박. 이상한데.
응 네 목소리 맞아. 대박 이상하지.
고저 없는 무뚝뚝한 열두 글자에우린 둘 다 낄낄 웃어댄다. 아닌 밤중에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 더 신나게 웃어댄다.
고가 또 목소리 녹음을 재생시킨다. 그리곤 혼자 또 낄낄 웃는다. 아마 그가우울할 때 꺼내는 플레이 리스트 61번이 완성된것 같다. 플레이리스트 1번은 술에 취해형편없는 노래를 부르는 내가 주인공인동영상이고 그 외 나를 근접 촬영한 아니 핸드폰 카메라 버튼을 그냥 마구잡이로 눌러 찍힌 내 사진들이 수십장 있다.고는 기분이 처질 때나 우울할 때 그 영상과 사진들을 꺼내본다. 난기꺼이 고의 광대가 된다.
문득 고에게 사랑을 느낀다. 자신의 힘듦을 떠벌리지 않는 과묵하고 처량한 그에게 연민을 느낀다. 인어공주가 왕자를 위해 목소리를내어주던 것처럼 내가 가진 것으로 그를 웃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든지.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이런 인사말은 수십 번, 그래 조금 더 써서 수백 번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