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답하기 어렵다. 특히 제일 무엇을 좋아하는지, 제일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 취향의 최고를 묻는 질문은 더욱 그렇다.
늘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며 넘겨버리는 희미한 성격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형성된 것이 확고한 취향이 없는 취향이다. 그래서 누군가 저런 질문을 하는 것에 대비해 몇 개의 예비 답안들을 정해놓았다.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엘리엇 스미스,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쿠엔틴 타란티노,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피자. 뭐 이런 식이다. 하지만 올 상반기에 엘리엇 스미스를 들은 건 서너 번 밖에 없고 오히려 최근에 나온 박진영과 선미의 노래는 오늘만 해도 세 번 들었을 정도다. 횟수로 치면 난 엘리엇보다 박진영을 좋아한다.
타란티노 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요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를 즐겨본다. 취향이라는 건 그때그때 바뀌고 대체된다. 그래서인지 '가장' '최고' 등의 명사가 들어간 질문들은 늘 나를 어럽게 한다.
가장, 최고를 떠올리다 보니 5년 전 즈음 작업했던 한 지자체의 '기네스' 책자가 생각났다. 지자체 내에서 최초, 최고, 최저, 최다 등 유무형의 기록을 뽑아 기록한 책이었는데, 당시 취재를 하면서 다양한 유형의 기네스형 인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종류도 많고 개수도 많았지만 그중에 기억나는 몇 가지를 떠올려보면 1번은 이 남성이다. 한 60대 남성은 자격증을 본인의 나이만큼인 61개를 취득해 (해당 지자체 내에서) '최다 자격증 취득자'에 이름을 올렸다. 자동차 정비기사, 건설기계 정비기사, 전기내선공사 기능사, 빌딩 경영관리사, 요양보호사 1급, 중등교사증, 태권도 국가공인 사범자격증 등 누구는 평생 따기 힘든 어려운 국가 자격증부터 기계, 체육, 교육 등 여러 분야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기억 속 2번은 머리카락을 언젠가부터 자르지 않아 '머리카락이 제일 긴 사람'의 타이틀을 얻은 오십 대의 한 여성이다. 그에게 물었다.
머리카락을 기르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 남편이 청순한 여자를 좋아해서요. 한번 기르다 보니 좀 더 길러보자 한 게 지금까지 됐네요.
줄자를 가지고 그의 머리카락 길이를 쟀던 기억이 난다. 길이는 126cm였고 그의 딸도 엄마처럼 머리를 기르고 있다 했다.
'헌혈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의 기록을 차지한 한 30대 남성은 심지어 결혼식 날까지 헌혈을 했다고 했다. 하나같이 신기하고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무언가에 미친 사람들이었다. 기네스 등재는 누구에겐 가문의 영광이었고 누구에겐 개인의 업적이었다. 인생을 대충대충 살아가는 나로서는 이 책자 하나에 이름을 올리는데 쏟는 그들의 에너지가 그들의 기록보다 더 대단해 보일 따름이었다.
글쓰기는 어렵다. 매일 쓰는 것은 더 어렵다. 그래서 '일간이슬아'의 이슬아 작가가 매일 쓴 글을 이메일로 구독자들에게 보낸다는 것을 알았을 땐 입이 떡 벌어졌다. 그의 꾸준함과 성실함이 재능을 뛰어넘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네스에 오른 그들도 어쩌면 재능보다는 노력이었다. 자격증의 사나이는 용접관련 자격증을 따기위해 8개월간 용접 학교 인근의 찜질방에서 잠을 자며 공부했고 결국엔 따냈다고 했다.
짧은 휴가 동안 한 편의 글도 완성하지 못하고 주저대던 나는 조금 용기 내 글 발행 버튼을 눌러본다. 거추장한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보다 당장 헌혈을 하러 가는 것보다 덜 노력해도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