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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스 Aug 05. 2020

신경안정제는 날 슈퍼맨으로 만든다

나는 가끔 슈퍼맨이 된다.
 
내가 생각하는 슈퍼맨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싫으면 싫다고 확실한 표현을 하는 사람이다. 어떤 장소에서도 긍정적인 에너지로 분위기를 밝게 만들고 기복 변화가 적어 시종일관 침착한다. 강한 정신력으로 누군가의 비난과 손가락질도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말싸움에 절대 지지 않으며 책을 통해 장착한 논리를 강력한 무기로 세운다.
 
내가 슈퍼맨이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무기가 있다. 바로 신경안정제이다. 안정제를 먹으면 난 슈퍼맨이 된다.
약 4년 전부터 동네의 신경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고 있다. 병원에서는 나를 불안장애라고 했다.
 
내게 병원을 권한 건 어머니 조였다. 조는 수년간의 타지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온 딸을 반갑게 맞이한 참이었다. 보글보글 찌개가 끓는 가스레인지 앞에서 난 조에게 나의 증상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조는 심란한 표정을 짓더니 가스레인지 불을 껐다. 옷을 갈아입고 다 큰 삼십 대 딸의 손을 잡고 집 앞 신경정신과를 데리고 갔다.
 
나는 불안상태를 체크하는 여러 테스트를 했고 환갑이 넘은 조는 이왕 온 거 자신도 검사나 받자며 치매 상태 체크를 했다.
우리는 병원에서 각자 검사를 받고 있는 서로를 보며 괜히 낄낄 웃었다. 오랜만에 상봉한 모녀가 함께 온 곳이 정신과라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랑 정신과도 오고 좋네.
그러니까 엄마가 진작 집에 내려오라고 했잖아.
 
그날 나는 간단한 체크와 의사 상담과 함께 불안장애라는 진단과 약을 처방받았다. 엄마는 아직은 치매가 아니라는 희망인지 절망인지 모를 진단과 함께 치매 방지를 위한 뇌 영양제를 받았다. 


이날부터 병원비와 조제약 2만 원 정도면 슈퍼맨이 될 수 있는 티켓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약을 먹으면 생각보다 증상을 잠재우는 것은 쉬웠다. 진작에 병원에 올 걸 후회했다. 병원에 오기까지 수십 번의 인터넷 검색과 수백 번의 고민을 해왔기 때문이다.
 
아파트에서 나와 횡단보도만 건너면 바로 있는 신경정신과를 수년이 되도록 갈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은 아무래도 치료비 때문이었다. 시간당 많게는 십여만원하는 상담료를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횡단보도를 가운데 두고 나는 매번 처량한 내 얇은 지갑을 바라봤다. 그리고 매번 횡단보도를 등에 지고 스스로 극복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증상이 발현된 2년가량, 스스로를 윽박지르고 가엷어하고 자책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까짓것, 이게 뭐라고, 한 번만 더. 할 수 있어와 노력해보자라는 말은 2년 동안 나 자신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었다.
 
그게 잘 안되자 스스로 내 심리가 왜 이러는지를 학문적으로 접근해보기로 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나 자신을 알라' 시기였다.
심리학자 중에 유명하다는 융의 저서를 읽기 시작했고, 퇴근 후에는 한 심리학 모임에 나가기도 했다. 그 모임의 인원은 10여 명으로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지만 나처럼 심리적인 문제가 있어서 모임을 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각자 꿈에 대한 분석과 의견을 피력했고 그 사이 나는 시들어버린 시금치처럼 흥미를 잃고 그 모임을 떠났다.
 
처음 증상은 대인기피였다. 내 경우를 보면 정신 장애라는 것은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의 콜라보 정도 되는 것 같다. 선천적인 원인으로 보면 내 아버지의 소심함이 떠오른다. 어머니 조의 증언에 의하면 아버지가 진급 시험을 볼 때 손을 덜덜 떨며 봤다고 했다. 


소심한 아버지의 딸로 태어났지만 난 아버지와 달랐다. 발표하기 좋아하고 어느 순간에서든 골목대장처럼 굴어야 속이 시원했고 누구에게든 주목받고 싶어 했다. 마음에도 없는 짝꿍의 짝사랑하는 대상이 내가 아니면 속상했고 글짓기나 그림 대회에서 상 하나라도 받아야 내가 나 다웠다.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 강해서 시험 성적이라도 떨어지면 방에 틀어 박혀서 울면서 문제집을 풀었다.
 
그때의 나는 자라 또 다른 내가 됐다. 성격의 큰 변화를 겪은 것은 사춘기, 학창 시절이 아닌 직장에서였다.

지역에서 회사를 다니던 중 본사로 발령이 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그곳은 새로운 세계였다. 서울과 시골의 차이인지, 큰 조직과 작은 조직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서울의 큰 조직에서 난생처음 낯선 적응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많은 걸 배웠다. 함께 일하는 동료는 때로는 협업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연봉 협상을 위해 날 선 비판을 (몰래) 해야 하는 상대였다.
새로운 직원이 왔을 때 그와 점심을 같이 먹을지를 단톡 방에서 투표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 역시 그 과정을 거쳐 선발이 된 건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때를 떠올리면 같은 팀, 같은 직군의 동료 송이 떠오른다. 송은 외톨이였다. 내가 처음 발령을 받아 그 팀에 배치되었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줬던 사람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8층 사내 카페로 커피를 사러 함께 갔고 점심을 같이 먹고 야근할 때 저녁을 사러 함께 갔다.
겉보기엔 둘도 없는 절친이었지만 우리는 자주 틀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와 송이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365일 중 360일은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지만 송은 오늘은 커피, 내일은 초코, 또 내일은 에이드를 먹는 사람이었다.
 
팀이 바뀌면서 우린 서서히 멀어졌다. 필요에 의한 관계는 그렇게 마무리됐고 어느 순간 송은 다시 혼자 지내고 있었다. 나는 송을 방임했다.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가는 송을 보며 무책임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나는 침묵하며 가해자가 되었다. 잔인하고 비겁했다.  
 
여러 겹의 시간이 쌓여갔다. 나는 서서히 병들어갔고 마음속에 나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이 생겼다. 아니 나는 이미 나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에 살고 있었다. 신림동 번잡한 곳에 위치한 좁은 원룸에서 나는 곧잘 숨이 막혔다. 주말이면 텔레비전의 소음을 배경 삼아 하릴없이 천장을 바라봤다. 형이상학적인 벽지의 무늬가 마치 내 정신 상태 같았다. 


혼자가 익숙해지니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점차 힘들어졌다. 몸도 쇠약해졌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 기절을 하기도 했고 입술에 가끔 나타나던 헤르페스 바이러스는 얼굴로 번지기 시작했다. 말을 해도 외롭고 말을 하지 않아도 외로웠다. 그리고 옛 고향 선배들에게 이직 제안이 오면서 난 도망치듯 내려왔다.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되려면, 고향으로 내려온 후 난 완치가 됐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병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심리장애를 우울증과 동일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남들보다 웃음이 많고 리액션이 풍부한 사람에 속한다.(불안장애를 겪고 있다는 것을 노출하기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불안장애라는 것은 어떤 특정 상황이 야기될 때 오는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무언가를 잘 해내고 싶을 때 오는 중압감과 부담감에서 불안이 오는 것 같았다. 회의를 진행하다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고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식은땀이 나는 경우를 한번 겪은 적이 있었고, 그날 이후 모든 회의가 두려워졌다.
 
의사는 불안을 야기하는 상황이 되면 무조건 약을 먹으라고 한다. 약을 먹을까 말까 고민이 든다면 먹어야 할 때라고 했다. 불안장애는 도미노와 같아서 한번 쓰러지면 그 여파는 웬만해선 쉽게 멈추지 않기 때문에 시작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했다.
 
약을 먹으면 두려운 게 없었다. 회의를 진행할 때도 안정적이었고, 때로는 유머까지 섞는 여유를 보일 수 있었다. 상대방과의 언쟁에서도 더 이상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았고 밀린 업무를 보면서도 더 이상 머리를 쥐어뜯지 않았다. 다시 말해 나는 감정이 무뎌졌다.
 
이런 날도 있었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다 옆 차를 세게 긁었는데 나는 그때마저도 아무런 감정의 미동이 없었다. 어이없는 사고를 내놓고 보험으로 처리하겠다며 차분히 말할 수 있는 나. 그러니까 이 약이라는 것은 내가 원하던 감정의 기복이 없는 상태를 만들어주는 약이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이 부적이 통할 수 있을까? 약을 먹고 내가 원하는 슈퍼맨이 됐을 때 그것은 진짜 나일까?

나는 누구일까? 어쩌면 나는 신경안정제라는 가면을 쓰고 내 흉내를 내는 꼭두각시 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슈퍼맨이 되고 싶었다.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그런 존재로 각인되고 싶었다. 하지만 진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내 엄마 조는 나와는 판이하게 다른 사람이다. 작은 체구지만 종아리가 불국사 기둥 같은 튼튼한 균형을 가진 사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할 말은 해야 하는 사람이다. 어디서나 당당하고 유쾌하다. 어쩌면 내가 꿈꾸는 슈퍼맨은 조 인지도 모른다. 조는 약을 먹을지 말지 고민하는 나를 보며 늘 측은하고 심란해하며 말한다.
니 마음먹기에 달린 건데...
뒷말은 듣고 싶지 않다는 내 표정을 보고 엄마 조 역시 뒷말은 생략한다.

엄마 조가 생략했던 말들을 상상해본다.
니 마음먹기에 달린 건데 그게 그렇게 힘드니? 그냥 니 맘대로 행동하면 좋겠어. 왜 남의 눈치를 보고 사는 거야. 엄만 그런 거 싫어.
 
성격은 하루 새 생겨나지 않는다. 수백, 수천 년 동안 풍화된 암석처럼 성격도 습관도 오랜 시간을 들여 갈고닦아진다. 나는 이러한 나를 만들기 위한 시간을 보내왔던 것이고, 이게 그 시간의 결과물인 셈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 것 같다. 또 다른 나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보내야 한다.

요새는 약을 먹었다 끊었다를 반복하며 약 8개월 동안 약을 거의 먹지 않고 있다.  이 병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극복, 회복이란 단어를 쓰겠지만 이 병을 아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내가 상대방의 뒤치기를 앞둔 모래판의 씨름선수처럼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말이다.
슈퍼맨이 되고 싶은 나는 하체의 힘을 먼저 길러야 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갖은 풍파에도 당당하게 사는 엄마 조의 종아리가 유독 튼튼한 이유가 그것 때문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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