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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스 Jul 20. 2020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눈을 의심할 문장으로 글을 시작해볼까 한다.


난 요즘 달리기에 빠져있다.


물론 마라토너처럼 달리는 것은 아니다. 일주일에 서너 차례, 하루에 30분가량을 인터벌 형식으로 달린다. 이번 주 초보자 코스 7주 차를 통과하고 있다.

오늘은 5분간 준비운동 후 10분을 뛰고 3분을 걸은 다음 다시 12분을 뛰고 5분을 걸으며 마무리 운동을 했다. 달리기인가 싶은 이도 있겠지만 솔직히 그건 나에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나의 역사에 있어 이 몸뚱이가 쉬지 않고 10분 이상을 뛴다는 것은 갑자기 시어머니 앞에서 요리를 해보라는 말보다도 더 막막하고 예상 불가능한 일인 데다, 게다가 그 10분간 조금의 순간도 달리지 아니하지 않으니 두 다리의 끈기에 대해 스스로 감격할 일인 것이다. 달리기를 하고 나면 난 내가 대견하고 사랑스러워진다.



그렇다면 그간의 내 운동 역사를 상기시키면서 내 몸뚱이가 어떤 수준이었는지 가늠해볼까 한다. 어렸을 적부터 꾸준히 무언가를 해본 역사가 없는데 그중에서도 운동은 단연코 언급할 가치가 없는 대상이었다. 미술학원, 피아노 학원, 서예학원 등 내 짝사랑의 상대는 늘 바뀌었는데  운동은 그 후보에도 낄 수 없었다.


설상가상 평소 체력이 약하고 힘을 잘 못쓴다. 특히 나에게 팔, 다리는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매우 취약한 신체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학년 전체가 극기훈련을 갔는데 웅덩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밧줄을 붙잡고 힘차게 땅을 밀어내 반동으로 건너야 했다. 건너기 전부터 불안했고 역시나 난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밧줄을 놓치며 진흙탕 속에 처박혔다. 시발. 눈물이 날 거 같아 이를 악물고 차리리 욕을 했다. 전교에서 단 두 명이 성공하지 못했고 난 그중 한 명이었다. 그 와중에 나 말고 다른 한 명은 누구인지가 굉장히 궁금했는데 걔가 누구인지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처럼 온몸에 진흙을 뒤집어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걔와 난 서로의 몸을 보며 더욱 수치스러워했고 진한 패배감을 느꼈다.


그러던 20대 후반 만나던 남자와 이별을 하고 수렁 같은 우울에 빠져들었을 때 어차피 할 일도 없고 살이나 빼자며 헬스장을 끊게 됐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자의로 시작한 나의 첫 운동이었다. 6개월간 꽤나 열심히 다녔다. 운동 첫날 헬스장에서 OT라는 명목으로 트레이너가 내 몸을 점검해줬다. 그는 나를 바닥에 눕히고 근력을 테스트하고 근육을 만져보더니 요 근래 이런 몸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나름 끈기는 있었다. 몸살이 나도 운동으로 치료하겠다며 헬스장을 향했고 장염이 걸린 상태에서 GX 요가 프로그램을 참가하다 기절 직전까지 가서 트레이너의 경악스러운 얼굴을 상기시키며 좀비처럼 집으로 기어 오기도 했다.


헬스장 6개월 회원권을 다 사용한 다음에는 수영장으로 향했다. 이주일이 넘게 인터넷을 뒤져서 마음에 드는 수경과 수영복과 수경 김서림 방지제까지 다. 물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내 모습을 떠올리면서 황홀해했지만 난 수경과 수경모와 김서림 방지제를 검색하던 이주일보다 짧은 일주일을 물속에서 허우적대다 그만뒀다. 독한 소독약 때문에 피부 트러블이 스멀스멀 올라왔는데 수영장 수강료보다 피부 재생 비용이 더 들 거 같았기 때문이다.  


몇 년이 지나고 지난해 즈음에는 필라테스를 다니기 시작했다. 곡소리를 내며 기구에 매달렸지만 고비용에 비해 체감하는 운동효과가 미미하다고 느껴져 두 달 만에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일 년여 만에 다시 시작한 운동이 지금 이 달리기이다. 돈도 들지 않고 혼자 하니 시간 약속을 지켜야 하는 부담감도 없는 데가 집 앞에서 하니 크게 위험하지도 않다. 이 정도면 완벽한 운동이다. 게다가 달리면서 심장의 펌프질이 강력해졌는데 그간 혈액순환 문제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던 내가 요새는 나름 숙면을 취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안 할 이유가 없다.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건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통해 런데이라는 어플을 알게 된 이후부터였다. 지나가듯 누군가 런데이를 언급했고 호기심에 바로 다운을 받았다. 어플 속 트레이너가 매회차 달리기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이 내레이션이 사용자들 사이에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던데 나는 호에 속한다. 리는걸 포기하고 싶을 즈음 격려 혹은 채찍질을 가한다는 점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다음번엔 지금보다 더 힘들 겁니다. 하하 농담입니다. 간혹 이런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농을 던질 때도 있지만.



어찌 됐든 어플을 다운로드한 다음날부터 집 앞 작은 놀이터에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주로 퇴근 후 달리기를 하는데 그 시간엔 저녁밥을 먹고 소화를 시킬 겸 산책 및 맨손체조를 하는 여자 어르신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은 그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트랙을 돌고 그들보다 조금 더 운동다운 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나를 대견하게 생각한다. 가끔은 음악의 소란스러움을 배경 삼아 대화를 이어간다.


또 왔네? 어제 뛰었지?

네? 어제는 안 뛰었는데. 헥헥

며칠 전에 뛰지 않았어?

아 네 맞아요. 헥헥.

거봐. 체력 대단하네.


젊음을 마주한 어르신은 진심을 담아 날 칭찬하신다. 체력에 대해 칭찬받는 일은 처음이라 쑥스럽기도 하면서 기분이 좋았다. 더 열심히 달려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작은 놀이터의 트랙을 돌다 보면 같은 방향으로 산책을 하는 어르신들과 부딪히곤 한다. 내가 뒤에서 헥헥거리며 달려오면 어르신들은 자신들의 차례가 왔다는 듯 후다닥 뛰어 비켜서신다. 7주를 거쳐 만들어진 우리만의 룰이다. 나는 뛰고 그들은 걷는다. 트랙 위에서. 트랙을 공유하는 그 순간은 우리는 운동 메이트가 된다.   


운동 후엔 온 몸이 무거워진다. 달리는 동안 반동을 만들어내는 팔은 뻐근해지고 다리는 진흙에 빠진 듯 걸음을 떼기가 힘들고 온몸의 맥박은 요동친다. 특히 달리기를 하다 보면 이상하게 콧물이 나는데 땀이 다른 형태로 콧속을 통해 배출되는 건지 뭔지는 잘 모르겠다. 초보 러너인지라 호흡도 가다 듬어야하고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게 신경도 써야 하는데 콧물까지 닦아가면서 달리는 것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르신들처럼 손을 대지 않고 코를 휑하고 푸는 방법을 아직 몰라 손등으로 대충 닦고 코를 는 방법으로 대처하고 있다. 콧물이 나오지 않으면 좋겠다.


나는 트랙이라고는 부르지만 트랙이라고 말하기엔 실은 부끄러운 놀이터의 짧은 산책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간이 있다. 9월 입주를 목표로 공사를 마무리하고 있는 고층의 아파트를 뒤로 하고, 지어진지 20년은 된 우리 집 베란다를 왼쪽에 둔 채 시소를 향해 달려가는 5초가량의 구간이다. 트랙에서 유일하게 바람이 부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바람을 맞으며 달리고 있으면 런데이 트레이너가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말한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달려보세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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