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삼일 만에 쓰는 일기이다. 육아를 하면서 일기를 쓴다는 건 애당초 말이 안 되는 것이었음을 깊이 느끼고 있다.
아이를 병원에서 데려온 지 이틀 차. 거동이 불편한 나를 대신해 남편과 시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겉싸개에 쌓여 집에 도착한 아이는 내가 아닌 아이를 기다리고 있던 산후도우미 품에 안겼다. 식탁 의자에 앉은 나는 거실 소파에 있는 가족들과 도우미, 그리고 내 아가를 쳐다본다. 한 걸음이라도 무리해선 안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육아를 도와주는 산후도우미가 퇴근 후 나와 남편 바리의 첫 육아가 시작됐다. 조리원 퇴소 전에도 가장 걱정했던 우리 둘의 육아는 예상보다 더 가혹했다. 아이는 엄마의 기질을 닮았는지 예민했고, 그래서 잠도 자지 않고, 분유도 잘 먹지 않고(한 번에 먹는 양이 20ml 정도)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쏟는 아이였다. 조리원에 있을 때 엄마가 제대로 안아준 적이 거의 없어서 신생아실 조무사들이 울면 아이를 곧잘 안고 이리저리 움직였다는데 흔히 말하는 '사람 손을 타서'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자세인 앉은 자세로 아이를 안아봤자 눈물을 그치지 않는다.
그나마 아이를 꼭 안고 서서 이리저리 움직였을 때 눈물을 조금 멈추는 편 인 것 같다. 물론 품에서 내려놓으면 바로 눈물과 고성의 괴로움이 시작된다. 거동이 불편해 아이를 안고 거실을 오갈 수 없는 나는 그저 흔들의자에 앉아 눈물 흘리며 몸서리치는 아이를 안고 있을 뿐이다. 무력감.
우리는 매우 곤혹스러웠다. 육아라는 것이 이런 것인지, 남들은 대체 어떻게 육아를 해나가고 있는 것인지. 정답 없는 시험 문제를 시간에 쫓겨 풀어야 하는 것보다,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고 답답하고 도망치고 싶고 눈물 나는 것이었다니. 정말이지 핵 매운맛 경험이다.
오늘은 나이트 출근을 해야 하는 엄마 영이 휴식을 접고 나를 돕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왔다. 택시를 타고.
그녀는 나와 바리를 위한 요리를 하고 예민한 손녀를 어르고 달랜다. 거동을 돕는 보행기를 끌고 다니는 딸을 모습을 본 엄마 영은 속상하다. "나는 감정이 없어서 눈물도 없어"라고 말하던 영은 보행기 소리에, 손녀의 울음소리에 무너져버린다. 내 딸이 불쌍해서, 안타까워서.
영은 내게 말했다.
"그러게 내가 너 아이 낳지 말랬잖아."
난 대꾸할 말이 없어 웃는다. 실은 영의 눈물에 목구멍이 시큰거려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아이가 운다. 또 운다. 이유를 모르겠다. 무언가 불편해 보이지만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 필요한 시간이 얼마만큼인지 가늠할 수 없어 내 품 안에서 울고 있는 아이처럼 울어버리고 싶다.
그래도 토닥거려본다. 흔들의자에 앉아 손목아대를 하고 아이를 안아본다. 지난밤 거의 날을 꼴딱 샌 바리가 아이를 안고 거실과 부엌을 오간다. 정답이 있길 바라며육아 유튜브를 찾아본다.
오늘도 기도한다. 기도문에 소망이 하나 더 추가됐다. 욕심쟁이처럼.
내일 아침이면 기적처럼 내 몸이 낫고, 기적처럼 아이가 덜 울게 되길, 우리가 더 괜찮은 양육자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아이의 우는 원인을 모르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돈을 쓰는 일이다. 이미 산 젖병을 다른 것으로 바꾸고 분유를 새로운 브랜드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