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바리는 아이가 잠잠한 틈을 이용해 큰 용기를 냈다. 어제 퇴근 후 샤워는커녕 양치도 못했던 그는 재빨리 씻고 있다. 난 웬일로 조용히 누워있는 아가 옆에 보초 서듯 앉아있다. 아이가 울면 바로 바리를 불러야 한다.
엊그제 아침, 새벽 내 아이를 돌보느라 날을 새고 출근한 바리에게 전화가 왔다.
"밖에 첫눈이야. 집에서 잘 안보일까 봐. 우리 아가 오고 셋이 맞는 첫눈이네. 집에만 있은지 일주일 됐지? 답답하면 이따 도우미 이모 계실 때 잠깐 나갈까?"
그제야 내가 보인다. 암막커튼과 단단하게 잠긴 창문 속 방안 침대에 누워있는 내가. 산후도우미가 오면 최대한 쉬기 위해 거의 방안에 누워있는 내 모습이
바리의 목소리로 첫눈을 만난다. 첫눈이란 단어에서 느껴보지 못한 따뜻한 온도.
침대에 누워있다 잠이 쏟아질까 싶어 방안에 커튼을 걷지 않는다. 형광등 스위치까지 걸어가는 것이 지금의 내겐 산을 정복하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요즘 보고 있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 극 중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손녀에게 말한다. 달이 보고 싶다고. 손녀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마트에서 카트를 훔쳐 할머니를 태운다. 작은 체구로 힘겹게 카트를 끌고 달동네의 험한 계단을 내려온다. 한 장의 이불을 뒤집어쓴 할머니는 하늘을 바라본다. 오랜만에 보는 달이다.
달을 올려다보며 황홀해하는 표정의 할머니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올 겨울 바리와 아가와 함께 눈을 밟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코끝이 얼얼할 정도의 차가운 공기와 아이의 체온으로 덮혀진 가슴속 따뜻함과 머리 위 작은 얼음결정,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왠지 경험해본 것처럼 생생하다.
신생아를 집으로 데려온 지 오늘로 일주일 째이다. 그러고 보니 벌써 목요일이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좋은 것인지, 가는 시간을 아쉬워해야 하는지 애매한 기분이다. 시간이 흘러 어서 내 몸이 회복되면 좋겠고, 산후도우미 서비스가 끝나는 3주가 다가온다고 생각하면 덜컥 겁이 나고.
지난 일주일간 바리는 수척하다. 오늘 아침 그의 몸무게는 평소보다 2kg가 빠져있었다. 퇴근 후 시작되는 독박 육아와 아내 간병의 결과물이다. 게다가 태어난 지 한 달이 채 안된 아가는 이유 없이 새벽만 되면 울어댄다. 얼굴이 빨개져라 용을 쓰며 그 작은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린다. 가엾다. 우는 이유를 모르니 그저 안아주고 그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방법 밖에.
이럴 때 의지가 되는 것은 인터넷 선배들 뿐. 아이의 증상을 검색해보니 영아산통이 의심된다. 영아산통은 생후 4개월 이하의 영아에서 발작적인 울음과 보챔이 하루 3시간, 최소 한 주 동안 3회 이상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아이이든 어른이든 이유 없이 아픈 것은 힘들다. 세상 모든 일에 이유가 있을 순 없지만 특히 아플 때는 이유가 더욱 필요하다.
아가는 어제보다 하루만큼 더 성장했다. 사람 품이 아니면 빽빽 울어대던 아가가 오늘은 침대에서 혼자 잔다.(물론 그 시간이 길지는 않다. 길면 3분.)
기특하다. 울지 않고 자는 모습을 보니, 울며 보채던 지난 밤보다 애정이 배로 샘솟는다. 아, 물론 조건부 사랑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