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해서 월급좀도둑도 어렵다구
이번 주는 참 느리면서도 빨랐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팀장이 금주 휴가인 데다 크게 바쁘게 처리할 업무가 없어 하루 종일 마음 편히 시간을 보냈는데, 이 여유로운 하루가 매우 길면서도 지나고 보니 벌써 나흘이나 지난 것이 아닌가.
게다가 내일부터는 3일 연속 휴일인데 기쁘면서도 기쁘지 않은 것은, 휴일이 지나면 또다시 한 주가 시작되고, 그럼 팀장이 출근할 거고, 그럼 난 여느 때와 다름없는 긴장된 근무를 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이런 걸 두고 사서 걱정, 사서 고생이라는 것이겠지.
퇴근까지 50분 남은 이 시점에서 불현듯 브런치에 글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에겐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글을 켜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월급 루팡까진 아니어도 50분 정도는 월급 좀도둑이 되어도 괜찮지 않을까.
내일은 광복절이자 빨간 날이자 남편의 당직날이다. 꼬마를 데리고 하루 종일 놀아야 하는 특명이 떨어진 날. 뭐 하고 놀까. 뭘 먹을까.
또 쿠키를 만들까? 아니다. 냉장고에 생크림 대용으로 산 유통기한이 긴 휘핑크림이 있는데 그걸 쓸 방법을 궁리해 볼까. 냉동실에 넣어둔 초코 제누아주가 있으니 딸기퓌레를 섞어 딸기 생크림을 만든 다음 ‘초코딸기케이크’를 만드는 거야. 아유, 근데 말만 꺼내도 뭔가 피곤하네. 이번 휴일엔 베이킹을 좀 쉬는 게 낫겠다.
운동을 안 간지 오래됐다. 아랫배가 진심 임신 6개월 차 정도 되는 것 같다. 내가 30대 아가씨였던 시절, 어떤 아주머니가 날 보고 “아휴, 나도 아가씨 땐 배가 없었는데”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러게요. 아휴, 나도 그럴 때가 있었는데 말이죠...
이 모든 원흉은 남편이다.(탓 좀 할게) 그를 만나 ‘차려먹는’ 안주의 재미를 깨달은 이후부터 나의 아랫배는 점점 불러오기 시작했다. 술안주라면 고추장 찍은 멸치나 김이 최고였던 나에게 기름진 음식의 행복을 알려주다니. 이 나쁘으... 면서도 좋은 녀석.
티셔츠를 바지에 넣어 입는 최애 패션 스타일을 포기하고 배를 가리는 옷만 입기 시작한 지 7년여 동안 내 옷장의 옷들은 많이 달라졌다. 바람이 불면 펄럭거릴 정도의 커다란 상의와 배 위까지 올라오는 펑펑한 하의. 옷 사이즈도 크다 보니 옷장을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다. 요즘은 시스템행거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살을 빼고 티셔츠를 바지에 넣어 입는 날이 올까?
아휴. 운동이나 가고 생각하자.
얼마 전, 꼬마 유치원 같은 반 친구네 집에 초대받았다가 충격 아닌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그날 우리 술상에 감바스, 알리오올리오 파스타, 포테이토샐러드, 리코타샐러드, 꼬지어묵탕, 오징어볶음, 계란말이, 주먹밥 등이 플레이팅까지 예쁘게 해서 올라온 것이다. 아니, 집들이도 아니고 그냥 가볍게 먹는 술상에 이런 가짓수의 음식을 내놓는다고? 게다가 맛도 있어?
그중 계란말이가 인상적이었다. 당근, 파 등을 잘게 썰어 크고 정갈하게 말았는데 우리 집의 그것, 노란색 온니원 계란말이(만든 지도 한참 됐다만)와 차별적인 모양새였다. 매일 반찬 가게에서 산 흰 김치에 미역줄기만 먹는 우리 딸랑구에게 미안해서 내일은 좀 더 다양한 반찬을 사러 가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퇴근까지 이제 20여분 남았다. 6시 땡 하면 바로 튀어나가야지.
잠깐 쉴때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보고왔지효
내일은 꼬마와 전통시장에 갈까? 가서 사진 좀 찍고 업무에 활용할 콘텐츠 자료 좀 확보해 볼까나. 아니 이렇게 쉬는 날에도 업무를 위하는데 월급 좀도둑 정도는 정말 해도 되지 않겠어요?
글이 자꾸 길어진다. 시간이 남아서이다.
이제 글은 마무리하자. 다시 업무 모드로 돌아가 키보드를 뚜딱거리고 기분 좋게 6시를 맞이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