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하나, 아는 언니 K

by 유스

편집자주_

'서울'이란 단어는 누군가에게는 '꿈'이라는 단어와 같은 무게를 지니기도 한다. '인 서울'의 목표를 가지고 서울의 대학교에 진학한 학생이나, 무작정 '서울행'을 선택한 젊은 청년들, 직장이나 아이들의 교육 등 환경적인 요인으로 이사를 결정한 사람들.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형태는 하나이다. 서울의 이방인으로 시작해 이제는 서울 사람이 되어가는 그들. '서울살이'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 안녕하세요. 서울 광진구에 사는 평범한 직장인 여성 K입니다. 나이는 34살이구요. '천방이'라는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원래 집은 서울이 아니시죠? 고향은 어디세요?

- 고향은 전북 전주예요. 한옥마을로 유명한 곳이죠. 서울에서 버스 타면 넉넉잡아 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어요.


서울에 처음 올라온 게 언제였나요?

- 제 나이 25살.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9년 전 이네요. 평소 영화 '미장센'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제가 흥미로워 하는 '메이크업' 이라는 분야하고 그 관심사가 결합해서 영화판 분장팀 막내로 뛰어들었죠. 그게 제가 서울로 올라오게 된 계기였어요.


무작정 올라온 거네요? 두렵진 않았나요?

- 마침 친한 친구의 언니가 서울로 올라갔어요. 운이 좋았죠. 동대문 쪽에 언니가 잡은 전셋집에서 더부살이를 했어요. 저는 지방 촬영이 많았기 때문에 집에는 가끔 들어가서 잠을 자는 식 이었죠. 그땐 두려움 보다 호기심이 더 컸었던 것 같아요.


첫 영화는 무엇이었나요?

- 영화 '공필두'에서 처음 분장팀 막내 일을 시작했어요. 첫 작업은 한 4~5개월 정도 진행됐었던 거 같아요. 분장팀 선임 보조 업무와 함께 분장일을 배웠죠. 보수요? 엉망이었죠.(웃음) 최저시급에 못 미치는,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시간당 1,000원이 안 됐던 거 같아요.


꿈으로 시작한 영화 일은 언제까지 하신건가요?

- 한 6년 정도 했어요. 마지막 작품은 '여고괴담 5'였고요. 제 나이는 31살 이었죠.

그만둔 이유요? 글쎄요. 아무래도 경제적인 이유가 컸던 거 같아요. 나이는 먹어 가는데 모은 돈은 하나 없고. 이렇게 늙어갈 거 같더라고요. 영화판이 '입봉'의 기회도 적고, 팀장이 된다 해도 고액을 벌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지금 생각하면 저 모든 이유가 '핑계'처럼 느껴지네요.


마냥 어리지 않은 나이, 현실보다는 미래를 걱정할 나이인 31살. 앞만 보고 달려가던 그녀는 잠시 달리기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리곤 현실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서울에 대한 첫 기억은 무엇인가요?

- 저희 고향에는 지하철이 없어서 서울에 와서야 처음 타봤어요. 그야말로 '촌년'이었죠. 그래서 많이 당황했던 기억이 나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나이의 저에겐 서울은 참 복잡한 도시였어요. 처음엔 그 삭막함이 참 싫었어요.


서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변화가 생겼나요?

- 여전해요. 하지만 무언가 제 시각이 달라진 거 같아요. 처음엔 삭막함에 두려웠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그 삭막함이 오히려 좋아졌어요. 내가 무슨 일을 해도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으니까요. 요새는 서울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을 많이 관찰해요.


서울 사람들의 표정은 어떤가요?

- 공기라는 게 그렇잖아요. 평소에는 소중함을 모르지만, 희박해졌을 때 그 소중함을 크게 느끼는 거죠. 서울사람들은 저한테 그런 모습을 보여줘요. 누구나 말하듯 '정 없고' '삭막한'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 사랑을 갈구하는 거죠.

얼마 전 버스를 타고 가던 중 한 꼬마 아이가 횡단보도 건너편으로 뛰어가더니 형으로 보이는 사람 품에 안겨 엉엉 우는 모습을 봤어요. 형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품에 꼭 안아주고 있었죠. 사건의 전후는 모르지만 순간 울컥했어요. 사람에 대한 애정. 내가 가진 결핍이 바로 그거였던 거 같아요.


서울 사람들의 표정을 바라보며, '사람에 대한 애정'을 목격했네요?

- 네. 그런 셈이죠.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번잡한 곳의 카페에 자리 잡고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는 게 하나의 취미가 됐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캐릭터를 잡아가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다시 일 이야기로 돌아와 볼까요. 영화 일을 그만둔 걸 후회한 적 있나요?

- 후회는 늘 마음속에 있죠. 2년 전 인가? 극장에서 영화 엔딩 크레디트이 올라가는데 예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의 이름이 보이는 거예요. 분장 팀장이 되어 있더라고요. 그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죠. 물론 그 사람도 많은 노력을 했을 거예요.


지금 도전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하세요?

- 글쎄요. 경력은 많지 않은데 나이는 34살이네요. 자존심 따위는 다 버리고 새로 시작할 마음도 있어요. 하지만 당장에 들어가야 하는 월세나 생활비를 생각하면 음..

이거 뭐, 핑계로 가득한 인터뷰 같네요. 마치 내 합리화를 위한 자위 같은 기분도 들고.(웃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 서울에 지인이 많은 것도 아니고, 딱히 즐겨 찾는 공간도 없어요. 그럼에도, 저는 지금 삶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동물을 좋아해 동물 보호 단체에 관심이 많은데 이런 관심사를 가지는 것도 행복해지는 방법 중의 하나죠. 행복해지는 건 공간의 문제가 아닌 거 같아요. 서울이든 고향이든, 내가 행복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인터뷰가 끝나고 얼마 후 K는 다시 한번 꿈을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수년간 ‘영화판’ 경력이 단절된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대학생들 졸업 작품 분장팀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K에게 서울이란, 여전히 꿈이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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