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나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 집은 7년 간의 잠실생활을 마치고 둔촌동 주공아파트로 이사했다. 잠실에서의 일상은 부러진 나뭇가지 하나 들고 이리저리 풀들을 쳐대며 땅바닥을 수색하거나 황량한 석촌호숫가에서 하릴없이 돌맹이나 던져대던 것이 다였다. 하지만 이 동네는 사뭇 달랐다. 신축 대단지 아파트에 어울리는 커다란 주차장이 곳곳에 있었는데, 그곳은 놀이터와 더불어 우리의 재미를 배가시켜줄 훌륭한 운동장이 되어 주었다. 방과 후 텅빈 주차장은 축구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로 붐볐다. 또 한 구석은 야구하는 아이들의 고함으로 법썩이었다. 프로야구가 개막된 지 얼마 안 됐을때였고 너나 할 것 없이 좋아하는 구단의 어린이 회원에 가입해 야구점퍼를 자랑스럽게 입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엄마를 조르고 졸라 나도 글러브와 알미늄 배트를 하나 장만했다. 우리의 주경기장은 304동 옆 직사각형 모양의 주차장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흔한 아스팔트 바닥이지만, 그 시절 우리에겐 샌프란시스코 오라클 구장보다도 웅장하게 느껴졌다. 열기로 자욱한 아스팔트 양옆으로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그 아래에는 연갈색의 조그마한 벤치가 있었다. 난 항상 고학년 형들에게 타순이 뒤로 밀린채 벤치에 앉아 있었다. 간혹 운이 좋아 출전 기회를 잡기도 했지만, 대부분 삼진을 당하거나 투수 코앞 빗맞은 땅볼로 출루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형들은 새 야구배트와 글러브를 탐하며 매번 날 불러냈고 엄마는 그런 날 보며 공부도 안 하는게 노는데만 정신 팔렸다고 속상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단지에 김재박 선수가 이사왔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렇다. 한일전 기습 번트의 영웅이자 MBC청룡의 간판타자 바로 그 김재박말이다. 하교 길, 나는 야구공 하나를 들고 그가 살고 있다는 305동 주변을 며칠내내 서성거렸다. 당시 김재박과 같은 층에 살았던 우리 반 친구는 시즌 중에는 언제 올 지 모른다며 단념하라 했지만, 그 집념이 가여웠던지 결국 자기가 받은 싸인볼을 내게 건넸다. 꿈에 그리던 그 싸인볼을 받아든 순간, 나는 이미 김재박이 되었다.
며칠 뒤, 내게 주전으로 참여할 기회가 왔다. 2루에 주자가 나가 있었는데, 나는 개구리 점프를 뛰어 번트를 대서라도 주자를 불러들이겠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타석에 섰다. 5학년 에이스 기현이형이 던진 공이 그날 따라 수박만 하게 보였다. 내 방망이는 가볍게 돌아갔고, 구체는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 우리가 분필로 그어놓은 홈런선을 넘겼다. 기현이형의 망연자실한 표정은 지금도 그리라면 그릴 수 있다. 기적 같았던 그 찰나는 내 인생의 별이 되어 지금도 추억의 밤하늘에서 반짝인다.
그날의 심장 고동은 이제 중년의 가슴 한 편에 고이 접혀있다. 그러나 가끔, 정말 가끔 그 고동이 되살아 난다. 열망이란 게 그렇다. 한 번 맛본 기적의 달콤함이 평생을 지배한다. 오늘 내 손에 쥐어진 건 야구 배트가 아닌 테니스 라켓이 됐지만 그날의 홈런은 내 삶의 모든 순간마다 느낌표를 찍는다.
둔촌동 주공아파트는 강산이 몇번이나 바뀌는 세월을 버티다 결국 재개발로 자취를 감췄다. 304동 옆 주차장도, 은행나무 그늘도 모두 사라졌지만 아홉살 소년의 꿈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다. 우리 모두에겐 그런 순간이 있다. 평범한 일상에 스며든 작은 기적의 찰나. 그 순간을 기억하는 한, 우린 언제든 다시 꿈꿀 수 있다. 설령 그 목표가 홈런이 아닌 다른 무엇일지라도. 영원히 잊지 못할 그날, 그 승부를 추억하며 나는 오늘도 새로운 도전을 향해 초록색 코트에 들어선다. 아, 처음 테니스 코트에 들어섰던 장면이 기억난다. 사각의 코트 위에 가장 우아한 선을 그리며 경쾌한 사운드와 함께 공을 쳐내는 신세계. '아, 이거 재밌겠는데..' 난 그 신세계로 스며들었다. 지겨운 '구세계'는 이젠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