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지원사업 이의제기 평가’라는 데에 불려간다. 이름부터가 무언가 드라마틱하다. 마치 정의가 억울함을 바로잡기 위해 늦게라도 찾아오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현실은 늘, 이름을 배신한다. 이의제기란 실제로는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확인 작업이다. 사업내용이 오해받았는지, 진정성이 전달되지 않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평가 당시 위원이 실수했는가, 절차상 하자가 있었는가 하는 법률적 스멜이다. 그러니 다시 설명할 기회를 기대하는 것은, 비 오는 날 야외 결혼식을 예약하는 일처럼 순진한 일이다.
심지어 일부 위원은 이의제기에서조차 각론으로 들어가 한 문장, 한 단어의 해석을 붙들고 씨름한다. 논리란 끝없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그럴듯한 오류에 도달하기 마련인데, 어째선지 그 함정에 몸을 던지는 걸 자청한다. 지원사업은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다. 즉, 당신의 부족함이 문제가 아니라,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말발이 조금 더 세거나, 자료집 인쇄물이 더 고급스러웠기 때문일 수 있다. 때로는 발표 순서도, 발표자의 목소리 톤도, 위원장의 점심 메뉴도 작용한다. 점수는 그렇게 태어난다. 최고점과 최저점은 제거되고, 평균이 계산되며, 표준편차가 끼어들어 객관성의 가면을 쓴다. 공정은 언제나 그렇게 흉내 내어진다.
그러다 보면 시장에선 ‘지원사업 전문가’라는 새로운 종족이 출현한다. 그들은 마치 점쟁이처럼, 아니, 강남 학원가의 일타강사처럼 “이대로만 쓰면 무조건 붙는다”고 외친다. ‘비밀 노하우’라는 단어가 등장하면, 이제는 귀를 막아야 할 때다. 평가에 운이 작용한다고 했더니, 그 운조차 ‘관리’할 수 있다며 패키지를 만들어 파는 이들이 있다. 언어의 유희는 상품이 되고, 애매한 기술은 자격증이 된다. 이쯤 되면 창업은 본래 목적을 잃고, 평가를 통과하기 위한 기술 연마로 전락한다. 창업자가 아니라 ‘서류장인’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묻고 싶다. 이게 정말 그럴 일인가?
사업이 어려운 것이지, 사업계획서 작성이 어려운 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이가 쓰려 하니 막막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시장을 기웃거려본 사람, 작게나마 고객을 만나본 사람, 가계부처럼 매출을 적어본 사람이라면, 사업계획서는 그냥 그 삶의 흔적을 정리하는 일이다. 그것은 예언서가 아니라 일기장이다. 단지 ‘나는 이렇게 살아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기록이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이의제기를 준비하기보다는, 당신만의 작은 시장을 다시 관찰하라고. 누구의 평가를 통과하는 서류보다, 스스로 설득할 수 있는 계획을 쓰라고. 언젠가는 평가위원도, 전문가도, 공모전도 없는 진짜 시장 앞에 서게 될 테니.
그때 필요한 건 남이 대신 써준 사업계획서가 아니라, 스스로 쓴, 당신의 말로 된 계획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