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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yworker Jan 10. 2024

작년에 정말 기뻤던 그 장면

2023년도 이제 하루 남았다. 책상 앞에 앉아 가만히 한 해를 되돌아본다. 내가 정말 기뻐했던 순간이 언제였던가? 아니 있기는 했던가? 기억을 불러오기 위해 띄엄띄엄 끄적여놨던 한 해의 일기장을 들춰봤다.


지난 시간에 기억 대부분은 아쉬움이다. 일의 재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젊었던 시절의 성취욕이나 도전정신 같은 것들은 희미해져 버렸다. 아이들이 커가며 들어가는 돈은 J커브를 그리며 증가하고 있지만 40대 중반을 정점으로 수입은 별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남들처럼 딱히 재테크에 성공한 것도 아니다.


늘어가는 흰머리와 점점 떨어지는 체력, 삐그덕 대기 시적한 관절들을 보며 나에게도 노화라는 것이 예외 없음을 실감한다. 좋아하던 테니스도 체력과 실력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의욕이 한풀 꺾였다. 몇몇 지인과의 관계는 실망과 권태로 점점 소원해졌다.


이래서 나이를 먹으면 기쁨과 감사가 줄어들고 사람이 점점 옹졸해진다고 하는 건가? 아니면 이것이 선배들이 읊던 갱년기 증상의 시작인가? 아니, 아무래도 나는 감사가 부족한 사람인 것 같다.




언제부턴가 사춘기 소년처럼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사무실도 있고 필요하면 재택근무를 하면 되지 뭐 하러 불필요한 돈을 쓰냐며 반대했다. 하지만 나는 집도 사무실도 아닌, 오롯이 나 혼자만의 공간을 원했다. 고민 끝에 지난 1월 나만의 작은 공간을 계약했다. 두 평 남짓한 크기는 협소하지만 혼자 쓰기엔 너무 충분해 보였다.


돌이켜보면 입주 첫날, 책상 앞에 앉아 이 공간에서 어떻게 시간을 채워갈지 꿈꾸던 그 순간이 올 한 해 가장 기뻤던 지점이었다. 새로운 공간이 주는 기대와 희망, 그리고 홀로 있을 때의 이상한 편안함 때문일 게다.


그렇게 일 년이 흘렀다. 책상 위에 노트북과 수첩 그리고 사각사각 써지는 트위스비 만년필을 올려놓고 한쪽 벽에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같은 읽고 싶은 책들로 채웠다. 스투키를 비롯해 조그마한 화분과 예쁜 스타벅스 머그잔도 하나 들였다. 이 공간에서 나는 일과 놀이의 애매한 경계를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어떤 달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렀고 다른 달은 바쁜 일상 탓에 겨우 두세 번 들르기도 했지만, 이 공간은 업무를 볼 때도, 책을 읽거나 혼자만의 놀이를 찾는 시간 속에서도, 가끔 지인들이 찾아와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최적의 아지트였다. 나로선 기대 이상의 보상이었다. 내년에는 이곳에서 어떤 기쁨을 만들 수 있을까? 반백살 소년의 작은 가슴이 미리 활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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