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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의 기술, 혹은 집착의 물리학

by Shadow Tipster

테니스 코트 위에서 누군가 외쳤다. 넘어질 것 같으면 라켓부터 내던지라고. 일견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자명한 충고지만, 인간은 의외로 이 자명한 물리법칙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라켓, 그 단단하고 각진 물건을 쥔 채 딱딱한 코트 위로 쓰러지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라켓은 지렛대가 되어 충격을 증폭시키고, 손목이나 팔꿈치, 심하면 어깨까지 더 큰 부상을 야기한다. 맨몸으로 유연하게 낙법을 구사하며 구르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는 것은, 뉴턴 역학만큼이나 명백한 사실이다.


허나, 우리는 왜 그토록 라켓을 놓지 못하는가? 추락의 찰나, 본능은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더하게 만든다. 마치 라켓이 구원의 동아줄이라도 되는 듯이. 이 현상은 비단 테니스 코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야말로 인생이라는 더 크고 예측 불가능한 코트 위에서 우리가 매 순간 벌이는 실존적 투쟁의 축소판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라켓'이라 부를 만한 것들은 무수히 많다. 그것은 애지중지하던 지위일 수도, 한때 열정을 바쳤던 낡은 신념일 수도, 회수 불가능한 비용이 투입된 사업 계획일 수도 있으며, 혹은 이미 변질된 인간관계일 수도 있다. 상황이 명백히 기울어 더 이상 유지하는 것이 무의미하거나 심지어 해롭다는 신호가 연달아 울림에도, 우리는 종종 마지막까지 그것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본전 생각'이라는 이름의 미련, '실패 인정'에 대한 두려움, 혹은 변화 자체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우리의 손아귀에서 라켓을 빼앗아 던질 용기를 앗아간다.


그 결과는 어떤가? 테니스 코트에서 라켓과 함께 넘어졌을 때 더 크게 다치듯,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놓아야 할 것을 끌어안고 추락할 때, 우리는 더 큰 대가를 치른다. 재정적 파탄, 정신적 황폐, 돌이킬 수 없는 관계의 파국. 차라리 초기에 손실을 인정하고 '라켓을 던졌더라면' 가벼운 찰과상 정도로 끝났을 일을, 집착 때문에 전신 골절에 가까운 치명상으로 키우는 셈이다. 이는 합리적 판단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손실 회피 편향(Loss Aversion)이나 매몰 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 같은 인간 심리의 깊숙한 함정에 가깝다.


결국 추락의 순간에 필요한 것은 악력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손을 펼 용기다. 빈손이 되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낙법, 즉 충격을 최소화하고 다음을 도모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할 수 있다. 라켓을 던진다는 것은 포기나 패배의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중요한 자산, 즉 '나 자신'이라는 플레이어를 보호하기 위한 가장 냉철하고 전략적인 판단일 수 있다.


테니스 코트의 조언은 이렇듯 삶의 보편적 지혜로 확장된다. 무엇을 쥐고, 무엇을 놓을 것인가. 추락이 예견될 때, 당신의 손에 들린 라켓은 무엇인가. 그것을 던져버릴 때 얻는 자유와 안전의 가치를, 우리는 너무 쉽게 간과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일이다. 때로는 놓아버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적극적인 생존의 기술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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