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월 May 14. 2024

[반려견 투병일기 01] 아픈 강아지와 함께 한다는 건

남편의 생일 전날, 발작을 일으켰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퇴근을 마친 남편을 픽업하고 저녁을 먹고 집안일을 마친 뒤에 U-23 한일전을 보려고 TV 앞에 앉았다. 맥주를 따라서 한 모금 마신 순간, 평소와 다른 아이의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있는 공간으로 갔는데 셋째가 휘청거리면서 낑낑거리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픽, 쓰러졌다. 다급하게 아이를 안았는데 몸이 굳고 눈이 돌아가고 있었다. 심장 마사지를 하며 아이를 안고 바로 차에 탔다.


 다행히 남편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술을 먹지 않았고, 계속 다니던 동물병원이 24시간이고 늦은 시간엔 1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어서 빠르게 움직였다. 피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전해질 수치가 낮게 나왔고 우선 입원을 하기로 했다. 숨을 쉬는 걸 힘들어해서 산소방에 들어간 아이를 두고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남편 생일이라 미역국을 먹인 후 출근시키고 병원으로 가 아이를 확인했다. 분명 어제보다는 괜찮아진 것 같았지만, 여전히 기운이 없어 보였다. 병원에서 계속 있을 수가 없어 사랑한다 말하고 많이 쓰다듬어주고 다시 집에 왔다. 멍했다. 엄마, 아빠, 딸, 아들 4마리의 프렌치불도그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고, 막내아들을 제외한 아이들은 10세 이상이라 노견에 속했다. 특히나 프렌치불도그의 경우 평균 수명이 짧기 때문에 늘 항상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엄마나 아빠견에게 먼저 이상이 발견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는데 우리 집에서 가장 활발했던 셋째의 발작은 내게 충격이었다. 병원에서 뇌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단 이야기를 들었기에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예후가 좋은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랐지만, 아이가 돌아왔을 때 조금 더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창문을 다 열어두고 다른 세 아이를 목욕시키고 집 청소를 했다. 평소보다 더 열심히 더 깨끗하게 청소를 했다. 아이에게 영양식을 주기 위해 닭을 주문했다. 저녁에 남편 친구와 동생과 약속이 있었지만 약속을 미뤘다. 나는 어차피 아이가 병원에 있으니 생일은 보내자라고 했지만, 네 아이 중 셋째에게 가장 큰 애정이 있던 남편은 마음이 불편한 것 같았다. 정신없이 하루가 지났다. 퇴근한 남편을 태우고 다시 병원에 가 아이를 보고 남편의 동생에게 연락해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있으면 남편이 무너질 것 같았다.


 남편은 죽음에 대한 공포증이 있다. 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받지만 언제 생길지 모르는 미지의 병들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아버지의 임종을 눈앞에서 목격한 이후로 유난히 심해졌고, 몸이 조금만 불편해도 걱정을 한가득 안고 사는 사람이다. 인터넷에 증상 하나만 검색해도 암이니 뭐니 나오는 이야기들이 많아 검색 금지령을 내렸을 정도다. 그런데 너무나도 멀쩡하던 아가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고 경직이 오고 큰 병일 수 있다고 하니 그에 대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는 듯했다.


 남편의 동생과 셋이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왔다. 새벽에라도 연락이 올 까봐 핸드폰을 꼭 쥐고 잠을 이루지 못한 채 한참을 뒤척였다. 4월에는 집안 행사가 많다. 결혼기념일, 남편의 생일, 엄마의 생일. 주말에는 엄마가 있는 시골에 내려가기로 한 상황이었다. 아가의 건강 상황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될 것이었기에 생각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남편을 출근시킨 후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오늘은 퇴원 예정일임과 동시에 MRI가 예약되어 있었다. 10kg가 넘던 아이는 며칠사이에 살이 빠져서 홀쭉했고 가벼웠다. 담요로 아이를 둘러싼 후 MRI를 촬영할 수 있는 병원에 갔다. MRI 촬영 시 마취를 하기 때문에 동의서를 작성해야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그리고 아버지와 남편의 보호자를 하면서 많은 동의서를 작성해지만 느낌이 조금 달랐다. 그들에게 부작용이 일어날 확률은 극히 낮았지만, 단두종이고 나이가 많은 아이는 부작용의 확률이 높았다. 그래도 지체할 수 없기에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로비에서 끝없는 대기를 했다.


 12시에 시작해서 2시 정도면 끝날 것이라고 했지만, 마취도 늦게 깨고 몸에 체온이 올라오지 않아 3시 반쯤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정도였는데 배터리도 부족한 핸드폰을 들고 멍하니 기다리는 건 힘들었다. MRI 촬영 결과 아이는 뇌종양이라고 했다. 조직검사가 어렵기 때문에 양성인지 악성인지 바로 알 수도 없다고 했다. 기존에 다니던 병원 주치의와 상담해서 아이 치료를 어떻게 할지 결정하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의 기력이 너무 약해져 있었기에 다른 아이들과 다시 합사 할 수 없었다. 1, 2층으로 집안이 구분되어 있었지만 아이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을 구축했다. 밥도 잘 먹지 않아 애가 타들어갔다. 아이 치료에 대해 여러 정보를 찾아보며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을 시작했다.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아이가 뒤척일 때마다 잠에서 깨고, 다시 발작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다시 병원에 방문하던 날, 수술, 방사선, 항암, 연명치료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나이도 많고 단두종이기 때문에 사실 위험성이 높은 수술은 애초에 고려하지 않았다. 방사선의 경우에도 매번 전신 마취를 해야 해서 순위를 크게 두지 않고 항암치료를 생각하고 있었다. 일주일 정도 더 고민의 시간을 갖고, 아픈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에서도 언급되는 서울의 한 병원을 예약했다.


 5월 6일 월요일, 어린이날 대체 휴무였지만 병원은 일요일 제외하고 모두 진료를 하고 있었고 다행히 남편과 함께 병원을 방문했다. 차가 막히지 않는다면 1시간도 걸리지 않을 거리지만 출퇴근 시간을 고려하면 1시간 반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이런 곳을 아이를 데리고 매번 이동하게 된다면, 스트레스받지 않을까 걱정을 하며 예약시간인 9시보다 30분 빠르게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대기하는 동안도 어떤 방법이 맞을지 생각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후회는 할게 뻔한데, 덜 후회하는 쪽을 택해야 하기에 더 고민이었다. 사람이었다면 오히려 쉬운 선택이 가능했을 텐데, 말을 하지 못하는 강아지이기에 더 신중하게 고민했다.


 뇌종양의 크기가 크기 때문에 빠르게 치료를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우선 항암치료를 결정하고 약을 받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수원 스타필드에 들려 아이와 밥을 먹고 옷, 장난감 등을 샀다. 이틀 내내 비가 오고 어린이날 휴무였기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나도 아가도 사람이 많은 건 스트레스라 빠르게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만 다녀오면 위축되고 유난히 힘들어하는 아이를 옆에 두고 빗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항암 치료를 바로 시작하지 않기로 했다. 약물을 먹기 시작하면 아이의 배설물이 사람에게 닿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눈물이 나 침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일주일정도 더 시간을 두고 아이를 더 마음껏 사랑해 주기로 했다. 그렇게 일주일의 고민이 시간이 더 생긴 샘이었다. 외국의 사례들을 찾아보고 다른 아이들의 치료 예후들도 살펴봤다. 과연 항암치료를 하기로 한 우리의 결정이 맞는 걸까, 끝없는 고민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방사선 치료를 하기로 결정했다. 아이와 더 붙어있기 위해, 생존율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병원에 연락해 방사선 치료를 위한 모의 치료 일정을 잡았다. 그동안 아이는 발작도, 구토도 하지 않았고 체중도 조금씩 증가했으며 아침저녁으로 꾸준한 산책도 했다. 갯벌도 바다도 다녀왔고 콧구녕에 바람도 쐬며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를 위한 동의서를 쓰고 MRI, CT 촬영을 들어간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이 촬영과 마취에서 깬 이후에 어떤 방사선 치료를 진행할지 또 결정해야 한다. 내일이 석가탄신일로 휴일이라 아이를 데리고 저녁에 펜션을 갈까 했다. 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목욕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영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바람도 쐬려 했다. 아이의 컨디션이 걱정되어 지금 또 고민을 하고 있다. 끝이 없는 고민.


 아이가 아픈 이후, 나는 당분간 다시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어마어마한 치료비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경력들을 살려, 재택근무들을 알아보고 있다. 고민이 많고 그 고민들이 스트레스가 되어 오랜만에 편두통이 다시 시작됐다. 생각이 많아지니 집중력도 더 떨어지고 있다. ADHD 때문에 복용 중인 콘서타도 효과가 없어 병원에 방문해야 하는데, 아이 때문에 움직일 수 없다. 거진 1년 만에 잡은 내 친구들과의 약속도 취소했다. 거의 매일 가던 도서관에 가지 못해 책은 연체되었고, 남편 찬스로 반납했지만 책을 빌릴 수 없었다. 한 달에 한번 가는 서점도 가기 어렵고, 지저분해진 머리를 다듬으러 미용실에 가는 것도 남편이 쉬는 날에나 갈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주 토요일은 남편이 쉬는 날이다. 병원을 방문하고 필요한 것들을 구매해서 집에 올 수 있다.


 자발적 집순이였던 내가, 코로나에 걸려 집에 갇혀 있을 때도 좋아했던 내가, 필요한 것을 하러 나갈 수 없는 지금 이 상황은 조금 답답하다. 대학 강의는 2주가 밀렸고, 하루종일 멍하게 있다.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 멀쩡해 보이지만, 갑작스러운 아이의 큰 병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줬고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다시 깊어지고 있다. 그래도 나는 괜찮아야 한다. 내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남편도, 아이도 다 무너질 게 너무 뻔하니까. 조금만 더 힘내보자고 생각한다. 내 배로 낳은 아이는 아니지만, 아이가 태어나던 날 탯줄이 달린 상태로 내 손에 있던 그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내 가슴으로 낳은 아이니까, 엄마는 강하니까 힘내볼게. 너도 힘내서 괜찮아지자 우리. 우리 행복하자.

                    

작가의 이전글 첫 출판, 그리고 실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