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5일
아홉 살 때였다. 쭉 조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우리 가족이 드디어 분가를 하여 따로 살기 시작한 게. 그에 따라 나의 공간이 생겼다. 화장실보다 약간 큰, (당시에는 막내였으므로) 집안의 기반인 장자계승의 원칙에 따라 가장 작은 방이었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도 기뻤다. 마침내 내 방이 생긴 거니까. 내 침대가 생기고, 내 책상이 생기고, 내 의자도 생겼다. 부모님에게 혼난다던가,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이 생겼다 하면 나는 그곳에서 쉴 수 있었다. 그 누구의, 그 어떤 것의 방해도 받지 않는 나만의 작은 철옹성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즈음, 가족이 이사를 가야 했다. 교회 건물에 딸린 작은 주택으로. 성인이 된 형과 같은 방을 써야했고, 방의 문은 미닫이식이었는데 그마저도 고장나 결국엔 미닫이문을 떼고 다이소에서 산 작은 보자기로 문을 가려놔야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다시는 내 성을 가져본 적이 없다. 마땅히 심신이 제일 편해야 하는 집에서도 나는 항상 쉬지 못했다. 몸은 편해도, 마음 한 구석은 답답했다. 왕왕 한밤 중 새벽에 나와 거실 소파에 누워 노래를 듣곤 했는데, 그때만큼은 모두의 공간인 거실이 내 방처럼 느껴졌다. 물론 가족이 불편한건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때때로 가족을 포함한 모두에게서 벗어나 오로지 자신만의 휴식이 필요한 법이니까.
오히려 군대에서는 모든 공간이 시끌벅적하고 붐비다 보니 혼자만의 여유를 갖고 싶다는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시간이 빨리 지나갔던 걸까. 그래도 당직근무 중 새벽에 나와 앉아 있던 흡연장에서나마 그런 여유를 느끼곤 했다.
원체 성격이 내성적이다 보니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처음에는 크게 힘들었다. 여렸을 때 부모님이 식당에서 억지로 내게 계산과 주문을 종종 시키신 것도 그런 성격을 어떻게든 다듬어주려 하신 것이었는데, 지금의 나를 보면 부모님의 조기교육이 큰 빛을 발한 것 같다. 군대에서나, 대학에서나, 예전의 나였다면 절대 짜내지 못했을 인관관계의 거미줄을 완성해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과 있다는 사실 자체가 편해진 건 아니다. 술자리던, 모임이던,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라 할 지라도 그들이 전부 떠나고 나면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무거운 짐이 사라진 느낌이다. 아무리 친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피로가 그들과의 만남에서 내 속에 조금씩 쌓여 간다.
이런 종류의 피로는 안정과 고요로만 해소된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그러나 그런 무간섭의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완전한 자립을 이루어낼 경제력을 갖추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만의 힘으로 세운 내 성, 나는 그 사적인 공간에 대한 판타지를 계속 꿈꿔오고 있다. 언젠가 대학을 졸업해 취직을 하고, 자본이 쌓이고, 위치와 방향을 고려해 집을 고르고... 현재 부동산 시장의 동향이 계속 유지된다면 계속 판타지로 남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