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도 화처럼.

2024년 9월 28일

by 에이해브

마지막으로 울어 본 게 언제쯤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최근 한 영화를 보며 감정이 복받쳐올라 울먹울먹 했던 기억은 있지만, 마음 터놓고 울어본 적은 사춘기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아마 울음은 내 약점을 남들에게 드러내는 것과 같기 때문 아닐까.


다들 감정을 숨기는 것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다. 기쁠땐 기쁘다고, 슬플땐 슬프다고 웃고 울고 얘기할수 있는 성인이 얼마나 될까. 일종의 어른의 책무 같이 느껴진다. 그 나이 먹고 울고 있냐, 점잖게 행동해라, 뭐 이런 식으로, 은연중에 들어오는 감정에 대한 절제의 압박은 우리를 안에서부터 곪게끔 한다.


그럼에도 아이러니 한 것은, 분노라는 감정에 대해서는 우리는 한없이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소리를 지르고, 마음에도 없던 말을 하고, 상처가 될 만한 행동들을 거리낌없이 저지르는게 화에 휩싸인 인간이고, 우리는 그들을 남에게서나 혹은 우리 자신에게서나 흔히 발견한다.


나는 예전부터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얘기도 못 하고, 오히려 분위기에 휩쓸려 마음도 없는 상대에게 좋아한다고 해보기도 했고. 나는 내가 행복할 때 무슨 표정을 짓는지 모른다. 사진 속 내 웃음에서는 어색함을 넘어 가식이 느껴질 정도다. 감추거나 위선을 떨 의도는 없었다. 그냥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웃고,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울어라. 라고 입력이 된 로봇처럼 가짜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화는 억누르지 못하는 이중적인 내 자신을 본다. 또 비슷한 행동을 하는 남들을 보며 나 자신은 그리 나쁘지 않다고 합리화를 한다. 이는 절대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 감정에 대해 솔직해지는 것은 건강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몹쓸 말을 의도치 않게 내뱉게 되는 화에게까지 너그럽고 솔직해지는 건 건강치 못하다 이 말이다.


최근엔 웃는 법을 연습 중이다. 카메라 렌즈 앞에서 웃는 법이 아닌, 언젠가 내가 이만치 행복하다는 걸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싶은 사람이 나타났을때 웃어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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