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일
한 모금마다 목이 타는 듯이 아프고, 역한 연기는 꾸역꾸역 기도를 타고 내려간다.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담배를 태웠던 이유는 '없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싫어하는 행동을 함에 대한 대가를 바란다. 보상심리라는 거다. 두 시간이나 공부했으니 조금 쉴 수 있어, 긴 러닝을 했으니 오늘은 열량을 조금 채워도 돼. 이런 식이다. 힘든 시간을 보냄에 따라 담배 한두개비, 고된 하루를 보냄에 따라 소주 한두 병. 그러다 보면 우리는 도파민을 계속 분비시켜주는 이 행위에 점점 의존하게 된다. 없으면 안 될 행위가 되어가는 것이다.
의존의 대상이 차라리 담배고 술이거나, 혹은 폭식이라도 차라리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 보단 훨씬 낫다. 당신이 마음 놓고 기대왔던 벽과 같던 사람이 언제 변할지도 모르니 독하게 버텨라, 와 같은 의미의 얘기가 아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 단단한 만리장성과도 같던 당신의 의존대상은 저 깊은 어디선가부터 천천히 금이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마음이 충분히 강해지지 않으면, 내가 아끼는 사람들의 의지의 기둥을 흔들어 버린다.
비단 남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나 자신에겐 없는 무언가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그것들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박약한 의지는 나 자신부터 썩게 하기 마련이다. 중독이 만연한 이 사회에서 다들 익숙하지 않은가. 해방감 선사했던 대상의 부재에서 오는 초조함, 불안감. 그 사람이 없으면 집중이 안 되고, 담배가 없으면 손이 떨리며, 술을 못 마시면 난폭해지는 사람들을 주변,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서 쉽사리 찾을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사람에게도 많이 의존해왔다. 나만의 작은 '일일 역경' 을 속에 꽁꽁 싸매고 있다가 남들에게 풀어 나누어 주었다. 그들도 분명 어깨에 많은 짐을 지고 있었을 텐데. 이기적이었다. 철옹성처럼 단단해 보였던 그들도 언젠가는, 하나 둘씩 나에게 질려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내 무책임함을 한번 돌아보게 된다. 정말로 소중한 사람들은 매일은 아니더라도, 가끔 내 짐을 받아주고, 나도 그들의 짐을 나누어 들어주며 서로의 존재만으로 박약한 의지를 탄탄히 받쳐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