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기고 쫓기는.

2024년 11월 15일

by 에이해브

'I'm haunted'. 무언가에 쫓기고 있다. 문맥에 따라 나를 쫓는 주체는 귀신, 악몽, 혹은 안 좋은 기억이 될 수도 있다. 텅 빈 집에서 홀로 소파에 앉아 노래를 들으며 차를 홀짝일 때면, 내 몸은 편할지 몰라도 내 감정은 항상 무언가에 쫓기고 있었다. 텅 빈 지갑을 바라보며 마음 편하게 매점에 가는 친구들을 바라보았던 기억이나, 페이스북에 올라오던 유명 식당의 후기들을 보고 텅 빈 냉장고 안의 재료들로 어떻게든 비슷한 음식을 만들어보려 했던 기억 등이 나에겐 귀신이고, 악몽이다. 파스타 위에 올라가는 저 풀때기는 무엇인가. 말라 비틀어져가는 깻잎을 찢어 어렴풋이 흉내만 내 보곤 했다.


한번은 어렵게 얘기를 꺼냈다. '서가 앤 쿡' 에 가보고 싶다고. 엄마는 흔쾌히 가자고 했다. 항상 후질구레한 후드티와 반팔만 입고 다니던 나는 교회 연말 행사때만 꺼내입던 베스트를 꺼내 와이셔츠 위에 걸치고, 유일하게 한 벌 있던 슬랙스를 꺼내 입어 신나는 마음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홀린 듯이 주문했다. 사 만원 상당의 플래터를 시켜 엄마와 배 터지도록 먹었다. 과하게 시킨 탓인지, 커다란 도마 위엔 음식들이 잔뜩 남아있었는데, 남은 음식들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아쉬웠다. 엄마가 지갑에서 단 한장 있던 오 만원 지폐를 꺼내 계산을 하는 걸 보기 전까지는.


사정이 조금이나마 나아진 지금도, 나는 그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 식당이 사라진 지금도, 나는 그것이 있던 자리를 항상 피해 다니곤 한다. 지나가기만 해도 떠오르는 그때가 상기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몸이 아무리 편해도 언젠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 나를 끝없이 불안하게 만든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다시는 푼돈에 쩔쩔매며 다음 주의 쌀값을 걱정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커피 한 잔 함부로 사 먹지 못하는 지금의 사정이 나를 끊임없이 그 걱정의 구렁텅이에 옭아매려 한다. 오히려 더 악화되었달까.


어떻게든 안정된 삶을 살고 싶어 숱한 노력을 해 왔다. 성인이 된 직후부터 이십 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까지, 군대에 있던 시간을 제외하면 아르바이트를 쉰 적이 없고, 모아둔 돈을 어떻게든 불려 보려고도 했는데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저축의 소모는 내가 응당 받을 자격이 있는 것들에게만 한해 행해졌다.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후회가 되는 점이라면, 감정으로도 돌려받지 못할 사람에게 많은 돈을 썼다는 정도였다.


노력을 했는데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는 점은 정말로 공포 그 자체다. 말 그대로 최선을 다 했지만 돌아오는 건 변화의 상실이며 좌절의 확대만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눈 앞은 어두컴컴 해진다. 더 앞으로 나아갈 동기조차 가을날의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리고, 바스락 소리를 내며 수 많은 신발의 밑창에 부숴진다. 침대에 누워 잠에 들고, 무의식의 세계에 들어갈 때 만이 긴 하루에서 유일하게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었고,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마저도 혐오스러워 기꺼이 일어나 새 하루를 맞이할 용기가 없어졌다.


엄마는 내가 언젠가는 교회에 진심으로 나와 주님을 만나기를 기도해 왔다. 나는 꾀병까지 부려가며 예배를 빼먹으며 말했다. "내가 필요하면 주님을 찾지 않을까?". 기댈 구석마저 사라져버린 지금의 나는 주님이 나를 세워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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