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4일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명확히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걸어가는 오솔길이 절벽으로 이어지더라도 확신을 갖고 묵묵히 걸어나가는 사람이 있는 한편, 갈림길의 벤치에 앉아 무슨 길을 택하느라 고민하다가 느닷없이 내려온 땅거미에 당황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래도 걷고 있었다. 방향 감각도 없이 숲을 헤쳐나가고 있었는데, 최근에 들어서야 내가 길을 잃었다는 걸 체감하게 되었다. 어느 시점에서 이 숲에 발을 내딛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시간이 꽤 지났다는 것이다. 나는 숲의 풍경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잎사귀에 내려앉은 유리구슬 같은 이슬과, 낮게 깔린 상쾌한 안개에 취해 영원히 이렇게만 살 것 같았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엔 녹음이 우거져 있고 해와 별은 울창한 관목에 가려져 있는 것이다. 큰 일이 나버린 거지.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계해보고자 냅다 소리라도 질러본다. 새들조차 미동하지 않는 내 외침은 바람소리에 미어져 금방 희미해지고 말았다. 발자국이라도 있을까 땅을 기어보지만 더러운 진흙만 옷자락에 묻을 뿐이다. 나는 여기에 묻혔다. 그 사실을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데에는 고맙게도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그걸 인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를 지치게 하였기에, 주변의 풀벌레 소리와 알록달록한 버섯들에 집중하며 관심을 돌려 보지만, 결국 얻는건 공허함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뿐이다. 눈을 뜨면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문득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걸까? 그들도 이렇게 헤메며 절망하는 걸까. 그렇다기엔 날 삼킨 이 숲은 너무나도 깊고 울창하다. 남이 나를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과의 비교는 정신적 위안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탈출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무작정 나아가본다. 이게 탈출구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포기하고 냅다 누워버리는 것 보단 낫지 않은가. 풀숲을 헤치며 걸어가던 나는 곰곰히 생각한다. 이게 가장 효율적인 길인가. 이게 맞는 길인가? 가장 신중해야할 이 시점에 나는 방향을 바꾼다. 여기가 맞을 거야.
자신감을 가지고,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려 하지만 마음 깊은 곳 자리잡은 불안감은 계속 커져만 간다. 다리는 저려 오고, 날은 더욱 어두워져만 간다. 미칠 노릇이다. '가만히 있는 것 보다는 나으니까'. 선택의 기저가 되었던 이 신념조차도 의심이 되기 시작한다. 그냥 앉아서 쉴 걸 그랬나? 아침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안 되는 걸까. 그러다 아침이 영영 안 올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계속 움직여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