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하지 말기.

2025년 1월 6일

by 에이해브

새해가 밝았다. 누가 내 글을 읽을런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되었던지,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바란다. 새해가 되면, 다들 케케묵은 다짐 한두개씩은 실천에 옮기려 하곤 한다. 다이어트, 자격증, 연애 등등. 내 목표는 다이어트나 자격증처럼 다분한 노력을 요하지도 않고, 연애처럼 타인의 개입을 필수로 하지도 않는다. 난 그저 덜 불안했으면 한다.


난 어릴 적 부터 게임을 좋아했다. 특히 내가 그 세계관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롤플레잉 류의 게임을 많이 하곤 했었는데, 판타지 세계 속에는 나를 위협하는 커다란 변수란 게 없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겨 일이 꼬여도 마지막 저장 지점으로 돌아가면 되기 때문이다. 실패해도 한번 더 도전하면 되니 불안할 게 없었다. 그리고 게임의 결말은 대부분 정해져 있다. 그것도 플레이어들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일이 종국엔 잘 끝날 걸 아니"까. 같은 맥락으로 영화도 좋아했었다. 내가 그 엔터테이먼츠들을 향유하는 순간만큼은 위험요소와 변수가 가득한 현실에 대한 생각이 전혀 안 났기 때문이다. 이 이유로 오랫동안 게임을 좋아해 왔으니, 그만치 내 불안의 역사는 길다고 말할 수 있다.


전 여자친구는 종종 나에게 조금 칠(Chill)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곤 했었다. 사소한 일에도 불안해하고 세상의 흐름을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너무 '칠'한게 문제였지만. 그러면 나는 내 불안은 현실감각으로부터 야기된다고 정당화 함으로서 맞받아쳤다. 여행 계획을 짜는 와중에도, 가면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계획을 설렁설렁 짜냐고, 혹은 네가 워킹 홀리데이로 훌쩍 떠나버리면 나는 어떡하냐고, 뭐 이런 것들. 그런데 말이다, 결국 불안해 봤자 바뀌는 건 없다. 예상치 못한 변수는 여행의 큰 부분이고 재미다. 사는 것 또한 그렇겠지. 한 방향으로만 가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갑자기 들이닥친 변화에 적응하고, 새로 맞춰가는 것도 삶의 과정이다. 이걸 가르쳐준 네가 결국 호주로 떠나고 날 떠난 걸 받아들인 것 처럼.


이걸 알면서도 좀처럼 내 신경은 진정되지 못했다. 베넷 부인의 불쌍한 신경 다발처럼 내 마음은 항상 어딘가가 불안하다. 진정하지 못하고, 걱정으로만 가득 차 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무엇이든 바뀌나? 안 바뀌잖아. 라고 되내이며 이성적으로 불안감을 해결할 방법에 집중해본다.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볼 수도 있지만, 이들은 일시정지의 역할만 할 뿐이다. 오히려 그것들을 끝낸 뒤 몰려오는 공허감은 차라리 하지 말걸, 하는 후회만 남길 때도 있다. 이런 경우는 아무나 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줬음 함과 동시에 아무도 이 기분을 몰랐으면 할 정도의 불쾌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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