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4일
어릴 적, 거실 소파에 누워있을 때면 거실 이중창 바깥에 우거진 울창한 나뭇가지들을 뚫고 들어온 햇볕이 내 볼에 내려앉곤 했다. 그 느낌이 좋았다. 따뜻하고, 몸이 나른해지는 느낌. 때문에 지금도 종종 베란다에 나와 텐트 의자에 앉아 가만히 햇볕을 쬐곤 한다. 층수가 낮아 바깥에서도 잘 보이는게 단점이지만. 뿐만 아니라 비가 오고 난 후의 흙냄새는 우리가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게 될 사실을, 아이러니하게도, 기분 좋게 상기시켜 주며 아찔한 상쾌함을 선물해 준다. 이런 일반적이고, 반영구적인 행복들은 내가 숨을 쉬는 한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반면, 어떤 행복감들은 특정한 시기가 지나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 기억 속에서나 간간히 떠올리며 그리워해야만 한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친구들과 함께 걸어가던 하굣길, 늦은 밤, 폐점 직전의 마트의 식품코너를 엄마와 함께 구경하던 기억이나, 혹은 장롱 속에 들어가 나만의 성을 만들어 숨어있던 기억처럼. 얼마 전 문득 든 생각이다. 이런 특정 시간에 종속된 행복한 감정들은 다시는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사춘기의 감정, 성장이 덜 된 신체로만 즐길 수 있던 놀이처럼, 어른이 된 지금은 접근 불가한 먼 시간 너머의 유산으로만 남아 있다. 공포스러웠다.
좋아하던 푸딩이 단종이 된다거나, 혹은 극단적으로 주변의 누군가를 떠나보내거나. 나는 평소에 애정하던 무언가 혹은 누군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슬픔보다는 공포감이 앞섰다. 삶에 힘을 불어넣어주던 그들이 이젠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에, 이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앞서 얘기했던 그 모든 행복감들을 이젠 더는 느낄 수 없다는게 너무 두렵고 공포스럽다, 고 생각했다. 근 며칠간 나는 이런 테러에 둘러쌓여 그 어떤 일에도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친구에게 물어봤다.
너는 안 그래? 크리스마스 이브 밤에 진심으로 있다고 믿었던 산타를 기다리던 그 행복감은 이제 절대 느낄 수 없어. 몇몇 감정들은 우리 삶에서 철저히 배제된 거야. 죽은 거라고.
내 공포는 그녀의 대답에 말끔히 씻겨져 나갔다.
산타를 기다리던 예전의 너는 어른만의 상대적인 경제적 풍요에서 오는 행복감을 알았을까? 하물며 이성간의 사랑은? 혹은 가볍게 친구들과 맥주 한 잔을 걸치며 나누는 담소의 즐거움은? 잘 생각해봐. 오래되고 지나간, 너의 과거에 종속된 어떤 감정들은 다시는 느낄 수 없어. 하지만 지금의 너는 다른 요소들에서 행복을 찾고 있잖아. 미래에도 그럴 거야. 언젠간 너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랑하는 사람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엄청나게 행복해질 걸. 미래에 종속된 감정은 너는 지금 느끼고 싶어도 느낄 수 없어.
나는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더 이상 무섭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