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5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무슨 뜻인고 하면, 우리는 어떤 공동체 안에 속해 각기 다른 자아를 지닌 동등한 인격체들과 어울리며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어울리며 살아가야 '한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 에서 주인공은 무인도에서 홀로 오랜 시간을 살아가게 되는데, 외로움에 사무친 나머지 배구공에 얼굴을 그려놓고 마치 이 배구공이 사람인 것 처럼 대화하고, 싸우기도 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범우주적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나' 라는 존재는, 세상에 살아가고 또 살아왔던 그리고 살아갈 여타 다른 인간들처럼, 그저 하나의 유기체일 뿐이다. 영겁한 긴 세월에 비하면 내가 살아 숨쉬며 사고하는 시간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리적인 크기 또한 그렇다. 이 사실을 곱씹을 때면 그저 나를 포함한, 나를 둘러싼 이 모든 것들이 한없이 보잘것 없이 느껴진다. 그게 사실이니까. 그렇다면 이처럼 짧고 의미없는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번엔 우주적 관점이 아닌, '나' 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나 자신에겐 먼 옛날의 빅뱅이나, 소스라치게 놀랄 만큼 거대한 크기의 블랙홀이 집어삼키는 막대한 질량의 천체들 보단 당장 눈 앞에 닥쳐온 시험이 훨씬 중요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짓 한 번, 눈길 한 번이 초신성의 폭발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나의 세상이 곧 나의 우주인 것이니 너와 나의 눈맞춤은 두 우주의 격돌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깨닫고 만다. 자아들의 만남과 헤어짐, 두 종단 사이에 놓인 수 많은 상호작용들은 헤아릴 수 없는 수 많은 세상들이 만들어 낸 거미줄이고, 삶을 살아갈 수록 그것들은 더 촘촘해지며 끝에 다다랐을 때에는, 그 위에 누워 한 가닥 한 가닥 다시 곱씹게 될 것이란 걸.
갑자기 삶은 의미로 가득 차 버렸다. 압도될 정도로 많은 수 많은 가닥들이 내 세상을 만들어 준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죽은 사람들과도 상호작용을 한다. 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세상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고. 음악으로서, 영화로서, 그리고 글로서. 그렇게 남겨진 죽은 이들의 유산은 산 자들의 우주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아름답고 소름돋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