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생김새는 나를 닮았고, 나는 엄마를 닮았다.
하여 아이를 볼 때마다 이젠 기억이 잘 나지안는 나의 유년기를 보는 것 같기도 하며
더 나아가 엄마의 유년기가 생각나기도 한다.
아이가 태어난지 130일째, 아이는 아주 천천히 자라나고있다.
130일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말도, 걷지도, 기어다니지도, 심지어 밥 먹는것조차 잘 못하는 아이를 보며
정말 교육이, 양육이 너무나 오래 걸리는구나.
이 긴 시간을 희생하고 사랑해가며 나를 키워준 부모가, 그 젊은 날이 고맙고 안쓰럽게 느껴진다.
인터넷의 어느 범인이 쓴 글 처럼
엄마가 늙고 시대에 뒤떨어져 무언가를 못해 자식에게 도움을 청하면
엄마, 내가 도와줄게
왜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줘?
엄마는 나를 더 오래, 친절히 알려줬잖아.
남자가 결혼을 하고 효자가 된다는 이야기는
아이를 낳으며 희생한 부모의 고통을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 같다.
젊은 날 치열하게 살아와 이젠 제법 여유가 생기고있다.
나는 젊은날에 오직 돈, 일과 사투를 벌여 중년기에 들어선 지금은 제법 이유가 생겼고
나의 부모는 나를 키우느라 삶에서 발전해야하는 시기를 모두 놓쳐 지금도 하고싶은 것을 하고 살진 못하고 있다.
우리 모두 (엄마와 나) 꿈이 많았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태어난 나의 딸은 그렇게 살지 않을 것에 다행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딸의 얼굴에서 투영되는 엄마의 흘러간 과거가 안쓰럽다.
어떠한 의미로
유전자의 전승은, 아이라는것은
서로 다른 객체가 아니라
하나의 본질이 전승하고 계승되는 - 영생의 한 개념이 아닐까?
타인을 바라보는게 아니라 나보다 더 소중히 느껴지는 나 자신의 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