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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연 Nov 07. 2022

온몸으로 느끼는 기억, 향수

기억의 공감각적 형태에 관하여

나는 중학생 때 서울 외곽의 새로 개발된 지역으로 이사를 왔다. 전에 살던 동네는 온통 산, 굽이굽이 언덕을 가득 메운 빌라,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오래된 학교뿐이었다. 눈이라도 와서 길이 얼면 집 앞에서 썰매를 타고 내려갈 수 있을 만큼 지형이 가팔랐고, 교통도 썩 좋지 않아 지하철역은 고사하고 버스도 종점까지 걸어가서 타야 했다. 하교 후에는 꼬불꼬불 샛길과 지름길을 탐방하듯 걷고 걸어 집에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7살부터 14살까지 햇수로 8년을 살았다.   

  

반면 그 뒤로 이사 온 동네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경사라고는 없는 평지에 새로 지은 네모반듯한 건물들이 블록마다 각을 맞춰 들어차 있었고, 성냥갑 같은 아파트와 신축 오피스텔로 촘촘히 짜여진, 전봇대마저 땅밑으로 묻어버려 깔끔하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나는 온통 새것들 뿐인 이 쾌적한 동네가 마음에 들었다. 진짜 도시 생활을 하는 느낌이었고, 새로운 일상에도 금방 적응했다. 아파트 단지에서 나와 다른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한 블록만 걸어가면 학교가 있고, 상가 건물도 코앞에 있다. 버스는 아무거나 잡아 타도 모세혈관처럼 이 도시 구석 구석으로 노선이 뻗어 있었고, 걸어서 30분 이내로 갈 수 있는 지하철역만 해도 여러 개였다. 물론 내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반경 몇 킬로미터 안에서 다 해결 가능했기에 기껏해야 지하철로 몇 정거장 거리조차도 벗어나는 일 없이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말이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고 소개받은 과외 수업을 하러 처음으로 내가 살던 지역구가 아닌 다른 구에 가게 되었다. 지도상으로는 옆에 붙어 있는 구라고 하나 실제로는 시 외곽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30분 넘게 가야 했다. 첫 수업을 하러 이 동네로 향했던 겨울날에, 내려서 몇 번이고 갈아탈 버스 번호를 확인했던 정류장이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던 것이 생생히 기억난다. 7교시가 끝나는 시간에는 근처 중고등학교 교문에서 왁자지껄하게 교복 입은 학생들이 몰려 나와 버스를 가득 채우고 떠난다.   

   

그 다음으로 가게 된 과외 동네는 전 동네와 그리 멀지 않았는데, 코앞에 개천이 흐르고, 길 하나 차이로 경기도와 붙어 있는, 말하자면 이름만 서울인 동네였다. 개천을 따라 기껏해야 삼 층 짜리 빌라와 주택이 빼곡히 지어져 있고, 언덕을 따라 올라가는 입구에는 빼꼼히 초등학교 표지판이 보인다.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가면 편의점에 밀려 요즘은 은근히 보기 어려운 슈퍼마켓이 심심찮게 보이고, 정육점, 미용실과 조그마한 동네 카페들이 아기자기하게 줄지어 스쳐지나간다.      


그 다음으로 가게 된 동네는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주택가가 많기로 유명한 동네였다. 큰 사거리에 위치한 지하철역 근처 그나마 평지인 곳에는 큼직한 상가 건물이 위치하고, 그 바로 뒤편에는 온갖 술집과 포차, 재래시장이 있다. 인파를 뚫고 한 블록만 더 들어가면 마을버스를 타지 않고는 도무지 걸어서 올라올 수 없는 경사가 시작된다. 그 언덕에 빽빽히 빌라와 초등학교, 어린이집, 교회, 복지관이 들어차 있었다. 여차해서 버스를 잘못 타거나 잘못 내리기라도 하면 지도를 보고서도 길을 찾기 어려운 골목투성이였다.

    

여태까지 열거한 동네들은 내가 사는 거주구역이 아님에도 주기적으로 오가게 된 곳들이다. 나는 분명 이 동네들 근처에도 살아 본 적이 없으며, 순전히 일적인 목적으로 처음 가게 되어 일 년 가까이 오가게 된 곳들이다. 하지만 이곳들의 공통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그곳들의 세세한 부분과 정경까지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이 장소들이 내게 실어다 준 기억 때문이다. 문득문득 골목을 스쳐 지나가다, 마을버스를 타고 내리며 주위를 둘러보다, 거미줄처럼 얽힌 전깃줄 사이로 노을을 발견할 때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왜인지 모를 묘한 그리움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 오도카니 서 있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 풍경과 분위기를 잊고 싶지 않아 대단할 것도 없는 동네 풍경을 몇 번이고 카메라에 담곤 했다. 그 까닭 모를 감정을 설명할만한 가장 비슷한 이름은 아마도 향수가 아닐까 싶다.      


확실히 성인이 되고 발걸음하게 된 이 낯선 동네들은 어딘지 모르게 나의 어린 시절 살던 동네와 닮은 구석들이 있다. 마치 그 동네의 한구석이 조각조각 파편처럼 갈라진 채 곳곳에 박혀 있기라도 한 듯이. 골목골목 가득하던 오래된 빌라, 눈이 덮인 채로 얼어버린 아스팔트 경삿길, 언덕 위의 초등학교, 그 아래로 복지관과 피아노 학원과 구멍가게가 즐비하고, 더 내려오면 그리 크지 않은 시장과 시장을 가로질러 흐르던 개천이 있는, 내 유년의 고향 말이다. 나는 그 기억의 파편들을 발견할 때마다 진한 그리움에 젖어들곤 한다. 어쩌면 그간 빌딩과 아파트 단지 사이에서 쳇바퀴 돌 듯 동동거리며 살아오며 잊었던 것은 마음의 여유뿐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미화된다고 했었나,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흐려진 기억들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저장하는 방식으로 뇌가 우리를 속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온전치 못한 기억을 재생하는 일에는 신체의 일부가 아닌 전체가 동원된다. 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억을 되살려낸다. 그래서 비록 내가 어렸을 적의 굵직굵직한 사건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도, 사소한 순간에 내리쬐던 햇빛, 어딘서가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시장의 온갖 냄새와 물비린내, 소박하지만 화목한 분위기에는 반응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힘든 줄도 모르고 언덕을 쏘다니던 아이는 물리학자의 꿈을 꾸며 대학에 입학했다가, 느닷없이 철학에 마음이 이끌려 교양 철학 강의를 듣게 되었다. 철학에서 말하는 기억이론에 따르면, 우리 각자는 기억과 그에 연관된 심리적 상태의 집합체이다. 그렇기에 기억과 심리적 상태의 연속성이 보존된다면 그 사람은 보존되는 것이고, 기억의 대체는 내 존재의 종식이자 죽음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내 기억을 이식받은 다른 사람과 나의 동일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감히 말하건데 나는 그런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들이 온전한 ‘기억’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렇기에 설령 모종의 이유로 내가 이전까지의 기억을 잃고 살아가게 되더라도 내 존재는 이전과 단절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기억은 두뇌에 저장된 정보의 집합, 정적인 단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존재하며 상호작용하던 모든 것들에 나의 기억이 묻어 있고,  비록 내 두뇌에는 남아 있지 못하더라도 그 자리에 여전히 존재한다. 그것들이 이따금 감각 자극의 형태로 바람에 실려 오다 스치는 찰나의 감각으로 나와 공명하게 되면 비로소 완전해지는 것이다.


내가 처음 보는 풍경에서 느끼는 향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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