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하연 Sep 10. 2022

나를 살게 하는 것

살아 있길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들

계절의 변화는 언제나 놀랍고 새롭고 경이롭다.

생각해보면, 내가 살아있길 잘했다고 생각하도록 만든 것은 언제나 인간, 혹은 인간이 만든 피조물이 아니라 자연이 빚어낸 풍경들이었다.


여름 하늘을 근사하게 수놓은 뭉개구름의 조화,

오묘한 빛의 물감으로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

초승달이 질 때 쯤 남색과 보라색의 경계에 걸친 하늘빛,

낮과 밤의 경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황혼의 빛깔,

캄캄한 밤하늘에서 작지만 분명하게 반짝이고 있는 별들

홀릴 듯 매혹적인 달빛과 황홀함의 절정에 선 달무리


타는 듯 번쩍이는 황금빛 석양이 고스란히 비치는 건물들

굽이굽이 파도처럼 늘어선 산의 능선들

하늘 끝 평선과 키스하는 파란 바다의 끝자락


아침을 알리는 새소리와 저녁을 알리는 풀벌레 소리

얼음이 녹을 무렵 움트는 새순의 사랑스러운 연둣빛

오월의 눈부신 하늘과 형형색색 피어나는 꽃들의 향연

여름의 우거진 초목 사이로 조각나 쏟아지는 햇빛

높아진 가을하늘의 시리도록 청명한 빛깔과 서늘한 바람

겨울의 어스름하게 지는 땅거미와 어둠과 함께 내려앉은 고요함


그 시절 특유의 온도, 습도, 내음, 피부에 닿는 감촉,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순간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죽으면 다른 무엇보다도 이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지 못하는게 가장 아쉬울 터였다.






작가의 이전글 일 못하는 아르바이트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