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린 지브란의 시에 이런 일화가 나온다. 지혜로운 왕이 살고 있는 평화로운 마을에 마녀가 온다. 마녀는 동네에 하나 있는 우물에 마법의 약을 떨어뜨리고 그 물을 마신 사람 모두 미칠 것이라는 주문을 건다. 개인 소유의 우물을 가지고 있는 왕을 빼면 마을 사람 누구나 그 우물물을 마셔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결국 마을 사람들은 모두 미친다. 그리고 얼마 후 그들은 왕궁으로 쫓아가 왕과 총리에게 "저들은 미쳤다!"라며 물러나라고 반기를 든다. 모두 다 함께 미친 마을에선 미치지 않은 사람이 미친 것이다. 지혜로운 왕은 한참의 고민 끝에 마을 우물물을 떠 오게 하고 총리와 함께 나눠마신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다 함께 축제를 벌인다. "우리의 왕은 정말 지혜롭다"라고...
아주 오래전에 텔레비전에서 <베델의 집 사람들>이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일본 어느 공동체 사람들 이야기였다. 그들 대부분은 어떤 정신적 약함 때문에 그곳에 모여 함께 살고 있었다. 가끔 발작을 일으키거나, 사람들 앞에 서면 온몸이 굳어지거나, 자기가 설정한 세계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 공동체에선 다시마를 포장해 판매하는 일을 주민들이 직접 했다. 포장이야 별 문제없지만, 담장 밖 사람들을 상대로 판매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판매 도중 쓰러지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많은 우여곡절 끝에그 다시마 사업은 유명해졌고 탄탄한 작은 기업이 됐다. 거기서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던 건 공동체 주민 중 한 사람의 인터뷰였다. "나는 담장 밖에 사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더... 더... 속도에 미쳐가면서 자신들이 정상이라고 말한다. 내가 보기엔 다들 미쳐있는데 그걸 따라갈 수 없는 사람을 미쳤다고 한다. 즐기면 되는데 잘할 수 없으면 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곳으로 쫓겨 들어왔다. 음치이지만 나는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한다. 이 담장 안에서는 못한다는 이유로 하고 싶은 일을 막지 않는다. 나는 즐겁게 노래 부르며 산다"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그 순간, 심장을 얼음물에 넣은 느낌이었다. 순간이지만, 나의 오랜 방황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오래 방황했다. 오래... 오래... 보통 사람들이 가고 있는 방향으로 갈 수 없어서, 남들처럼이 아니라 나처럼 살고 싶어서, 그런데 어떤 게 나다운 삶인지 모르겠어서,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모르겠어서.... 방황했고 나를 한심하게 생각했고 학대했다.
그 당시 내 눈에 비친 보통의 사람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결혼하고 아파트를 사고 좋은 차를 사고 때때로 휴양지에 놀러 가고... 나름 한 방향으로 잘 가는 거 같았다. 예뻐야 한다, 돈이 많아야 한다, 날씬해야 한다, 건강해야 한다, 잘해야 한다... 당위로 끝나는 집단 무의식의 우물물도 다 함께 마신 거 같았다. 자본주의 무의식에서 조금만 이탈하면 사람들은 '너 그러다 밥이나 먹고살겠니? 고민하지 말고 남들만큼 열심히 살아라. 남들도 다 그러고 산다...'라고 비난했다. 아니 나는 나로 태어났는데 왜 내가 남들처럼 살아야 하지? 지문만큼 다 다른 고유성을 갖고 태어났는데! 내가 이상한 건가? 미친 건가? 끝없는 도돌이표 고민들...
나는 나처럼 살고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사는 게 나처럼 사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미칠 거 같을 때마다 서울 골목을 싸돌아다녔다. 종로 사잇길을 누비고 다니고, 강북에서 강남까지 걸어 다니고, 산에도 가고, 백화점에도 가고,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에도 가고, 병원이나 시장도 가고, 교회나 절에도 가고... 계속 걸어 다녔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 속에서 진실을 찾고 싶었기 때문에. 물론 표피만 본 내 어리석음 탓이었지만, 당시 내 눈에 비친 그 누구도 환희에 차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진짜 삶을 사는 것 같지 않았다.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걸어 다니며 물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결국, 나도 바깥으로 갔기 때문에 답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아메리카 땅 원래 주민들은 이렇게 말한단다. '네가 안으로 가지 않는다면 너는 바깥으로 가게 되리라.' 어쩌면 우리는 자기 안으로 들어가기 두려워서 자기 목소리 대로 살지 않고 마법의 약이 든 우물물을 재빨리 마시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그냥 바깥으로 가 남들처럼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내 안에 아무것도 없을까 봐, 굶어 죽을까 봐, 손가락질받을까 봐, 도태될까 봐, 혼자일까 봐, 내가 틀렸을까 봐...
여행을 만났을 때, 길 위의 사람들 대부분 독특했고 편했다. 자기 얼굴대로 살고자 궤도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많았다. 삶의 의미에 대해 얘기 나눌 사람도 많았고 괴짜들도 수두룩했다. 나 정도쯤은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길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요가하고 명상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며, 나도 뭔가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나 자신에게 다시 물었다. 담장 안으로 쫓겨 들어가지 않고, 같은 우물물을 마시지 않고... 살아낼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돌고... 돌아... 우습게도 나는 평범한 삶에게 건너왔다. 괴짜들처럼 히말라야로 가는 대신 시장으로 내려와 매일매일 시장 속에서 지지고 볶으며 산다. 때로 비난했고 자주 이해할 수 없었던 보통의 삶... 허무맹랑하게도, 그 평범한 삶 안에 진실이 있다고 느낀다. 애초에 '나'다운 게 없는데, 찾을 '나'가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길 위를 오래 방황하고 헤매서 얻은 결론치고 좀 무게가 없나? 어쩔 수 없다. 마녀가 탄 우물물 대신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샘물을 마시려 한다. 담장 안으로 쫓겨 들어가지 않기 위해 내가 미쳤다는 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직업을 가져본다. 못해도 즐겁게 음식을 만든다. 바깥으로 가지 않고 내 안으로 가려고 매일 청소를 한다. 평범한 하루, 아주 평범한 순간들... 이 안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샘물을 목마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마시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