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소리를 따라 살고 싶어요.

by 문경화

여행하는 일과 먹는 일이 무척 닮았다는 걸 분식집 사장이 되고서야 알았다. 둘 다, 혼자일 때와 무리일 때 사람들의 태도와 감각이 달라진다. 혼자일 때 보통... 처음 본 타인과도 빠르게 말을 섞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나 고민도 쉽게 털어놓는다. 또 현재 마주한 것들을 더 섬세하게 관찰한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혼자 오는 여행자를 애정하고 그들에게 말을 거는 건 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두 명의 손님, 남녀가 들어왔다. 그들은 내게서 등을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이럴 때 나는 배경으로 존재하면 된다. 그들이 주문한 음식을 준비하려 나도 등을 돌렸을 때 갑자기 여자가 "여행 좋아하세요?"라고 물었고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어느 틈에 나와 가장 가까운 자리로 옮겨 앉은 뒤였다.


그 둘은 여행지에서 만나 연인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각자 돈을 벌어 처음으로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괜찮았어요? 같이 사는 것보다 같이 여행하는 게 힘들다는 말이 있는데..." 그들은 서로를 잠깐 바라보더니, 함께 하는 여행이 좋았다고 했다. 나는 희귀 식물을 바라보듯 입을 벌리고 "우와... 우와..."를 연발했다.


그들이 함께 여행했다는 남미. 나도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나라들이라 이것저것 물었다. 그리고 어리석은 질문인 줄 알면서도 늘 묻게 되는 질문, "어디가 좋았어요?"라고 묻자 여자가 '코스타리카'가 좋았다고 했다. "그냥 모든 게 여유 있었어요. 느려도 괜찮아... 가 아니라 느리게 살아! 였어요. 온전히 지금을 사는 느낌이었어요. 우린 안 그렇잖아요. 과거를 발판 삼아 미래를 향해 달려가잖아요. 가끔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남자보다는 여자 쪽이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남자는 과묵한 편은 아니어 보였지만 여자 친구의 말을 자르거나 끼어들지 않았다. 음식을 먹으며 잠시 숨을 고르던 여자가 물었다. "시골에 사는 거 어떠세요? 저희도 자연 속에서 살고 싶지만 아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전 여행하며 진짜 제 자신을 만났나 봐요. 여행 전에 잘 만나 놀던 친구들을 여행 후에 다시 만나니 재미가 없더라고요. 몇 번 만났는데 그때마다 그래요. 무슨 브랜드 옷이 예쁘고, 연예인 누가 성형을 했고, 요즘 핫플레이스 디저트 집이 어디인지 얘기 나누는 게 하나도 재밌지 않아요. 할 얘기도 없고요. 자리가 어색해질까 봐 맞장구치고 관심 있는 척 하긴 하는데 뭔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느낌이에요.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이 친구들과 삶의 방향이 달라졌다는 그런 느낌?"


나는 웃으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와 나의 궤도가 만나는 지점에 대해 내 경험을 얘기했다. 언젠가 여행을 다녀온 후 압구정역 근처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찌나 다들 옷을 잘 입었는지 패션 잡지 한 권을 풀어놓은 것 같았다. 여행을 만나기 전의 나였더라면 허름한 내 옷차림이 신경 쓰여 마음 따라 몸도 자꾸 수그러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더 이상 바깥의 것들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 안에 반짝이는 내면의 빛을 발견한 뒤였기 때문이다.


여자가 조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목소리를 따라가고 싶어요. 제 목소리 대로 살고 싶어요. 가끔 친구나 식구들에게 느리고 소박한 삶에 대해 얘기하면 다들 여행 다녀오더니 나사가 빠졌다는 식으로 얘기해요. 치열해도 힘든 세상에 무슨 낭만 같은 소리냐며... 철이 없다고 해요. 제 목소리는 다른 말을 하는데 너무 작아요. 정말 남들 말이 맞는 걸까요?"


나는 자신의 목소리를 따르라고, 느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작은 우주와 신화를 찾기 위해 여기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기적을 알아차리고, 자신도 돕고 남도 돕기 위해 여기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깥의 것들... 돈, 멋진 차, 멋진 집, 아름다운 옷과 맛집 같은... 감각의 제국에 끌려다니느라 자기 목소리를 잊어버리는 순간은 얼마나 많은가! 세상이 주입하고 자본주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쫓아가느라 자기가 무엇을 위해 왜 사는지를 잊어버리는 순간은 또 얼마나 많은가!


정해진 답은 없다. 자기 자신대로 사는 일이 세속적으로 크게 멋있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길거리를 청소하고, 누군가는 택배를 배달하고, 누군가는 농사를 짓고, 누군가는 설거지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은 알고 있다. 무슨 일을 하는지보다 어떤 태도로 사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어떤 삶이 나도 돕고 남도 도울 수 있는 삶인지를... 마음은 언제나 다정하게 말을 건다. 내게 그 작은 목소리를 들을 조용함만 있다면! 그 작은 목소리를 따라 행동할 수 있는 힘만 있다면!


나는 그녀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마음이 힘을 갖기 전까지는 생각이나 파동의 아우라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 영향을 받으라고 조언했다. 생각이 다르고 삶의 방향이 다른 사람들을 자주 만나다 보면 자신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자신이 이상한 거라고 스스로를 자책할 수도 있다고... 힘이 생기기 전까지는 원하는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찾아다니라고... 사실 알고 보면 자신의 목소리를 따라 사는 사람도 진짜 진짜 많다고...


그녀는 눈을 빛내며 각오를 다졌다. 어쩌면 쉽지 않겠지만 그녀는 찾아낼 것이다. 자신으로 사는 방법을. "이번 여행에서 여기가 가장 좋아요. 밥 먹으러 왔다가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이야." "자신의 목소리가 여기로 이끈 거예요. 들을 준비가 될 때 이야기는 시작되죠." 우리는 비밀을 나눠 가진 아이들처럼 모종의 미소를 교환했다.


그들이 다시 오겠다며 떠나고... 그와 그녀가 자신의 진짜 얼굴대로 살게 되기를 축원하며 나는 설거지를 시작한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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