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향해 손을 내밀다

by 문경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마치고 포카라에 머물던 어느 날... 계엄령이 선포됐다. 바퀴 달린 것들은 멈추고 상점은 문을 닫고 주민들은 집 안에 머물고 관광객은 산책 외에 할 일이 없던 며칠... 설산이 호수에 비치는 그 아름다운 동네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자고 일어나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밥을 먹다가도, 햇볕 속을 걷다가도, 호수를 바라보다가도... 끝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영문도 모른 채 며칠 울고 나자 마음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무도 너를 그렇게 미워하지 않았다. 아무도 너를 그렇게 모욕하지 않았다. 언제나 너를 가장 미워하고 모욕한 건 너 자신이다. 너는 너 자신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얼마나 구박했던가! 못생겼다, 키도 작다. 멍청하다, 재주도 없다, 성격도 까칠하다, 한심하다... 남이 그 절반만 했더라도 너는 그를 증오하거나 죽이고 싶어 했을 것이다. 온갖 핑계로 너는 너를 학대하고 고문해 왔다. 그렇게나 학대하고 모욕했는데도... 네가 살아있음을 축복하라. 감사하라. 너만이... 오직 너 자신만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


그 목소리가 너무나 크고 생생해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나 자신에게 무릎 꿇고 사죄했다. 호숫가를 산책하다가도, 잠깐 문을 연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도, 자다 깨서도... 염불처럼 낮게 중얼거렸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스스로에게 참회하기를 또 며칠...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니 거울 밖 내가 거울 속을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정말 눈이 부시도록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애썼다. 그렇게 구박을 받고 온갖 협박을 받으면서도 끝끝내 살아있어 주어 고맙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온 우주가 너를 사랑한단다...' 포카라에 체류하는 한 달 내내 사과와 사랑의 말을 반복했다. 그렇게 스스로 쌓아 올린 벽은 허물어졌다.


누군가에겐 과장된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는 걸 안다. 나도 남 이야기라면 '좀 오버하는 거 아냐?' 하고 웃어넘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태어나 한 번도 애정표현을 받지 못하고, 칭찬받아 본 기억도 없는 아이는 스스로를 사랑하기가 매우 어렵다. 물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지만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고, 먹고살기 바빠 애를 바라봐 줄 시간도 없고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는 자신이 사랑받을만한 존재라는 걸 모르고 미움부터 시작한다. 사랑은 어렵지만 증오는 쉽다. 이해와 받아들임 보다는 비난과 야유가 빠르게 자리 잡는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감옥에 가두기 시작한다.


포카라에 머물던 그 한 달 동안, 내가 쌓아 올렸던 벽이 허물어지자 순리라는 듯 사랑이 차올랐다. 그 사랑은 원시적이고 근본적인 사랑이었다. 이유도 목적도 없이 오직 존재에 대해 흘러넘치는 '사랑!' 그 사랑은 '나'라는 존재에 국한되지 않았다. 타인을 향한, 나무를 향한, 지구와 우주를 향한 무한한 사랑. 허공을 향해 사랑한다고 소리 지르기까지 했다. 바람에 실려, 온 우주에 퍼지기를 바라며...


그리고 신기한 마법이 일어났다. 사랑이 차오르자 스스로가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늘 성형을 고민했던 외모가 어느 한 구석 못난 것 없어 보였다. 눈, 코, 입 제자리에 있고, 자유롭게 걷고 말할 수 있고, 무슨 일이 됐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건강한 몸뚱이가 있다는 것... 다 좋았다. 다 감사했다. 어마어마한 자신감이 생겼다. 그것이 마음의 힘이라면 대단한 성형효과였다.


나는... 늘 사랑을 바깥에서만 찾았던 것 같다. 남이 나를 사랑해 주고 인정해 주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부모님, 친구, 선생님, 어른, 남자... 타인이 괜찮다고 해야만 조바심이 덜어졌던 것 같다.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누가 나를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나조차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데... 사실 남은 내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 모두 자기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빠 내가 예쁜지, 못생겼는지,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외로운지... 신경 쓸 겨를도 없다. 그들도 남들의 사랑과 인정을 욕망하느라 바빠 나를 사랑해 줄 여유가 없다.


그렇게... 태어나 처음으로... 거울 속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봤다. 부정과 비관의 렌즈를 빼고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봤다.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이 그냥 존재였다. 예쁜 것도 못생긴 것도 아닌 그냥 사람이었다. 거울을 향해 웃었다. 거울도 내게 진심으로 웃어주었다. 그제야 평생 느꼈던 애정의 갈증, 결핍의 갈증이 옅어졌다. 그 경험은 나의 전 우주를 바꿔놓았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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