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죽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마치 '인간은 죽는다. 살아있는 생명은 모두 죽는다'와 같은 명제일 뿐이다.
그렇다. 그녀는 죽을 것이다, 언젠가는... 하지만 그녀는 아직 죽지 않았다. 순전히 그녀의 긍정하는 마음 때문에! 그녀 이름은 '김소연'.
그녀는 산책하다 우연히 가게로 들어왔고 근처에 살아 가끔 들리고 있다. 암투병 중이라 마음대로 먹을 수 없지만 가끔은 떡볶이를 사 먹는다. 또 어떤 날은 물만 마시고 가기도 하지만 그녀는 내게 무척 반가운 손님이다. 나는 문 앞에 그녀가 보이는 날이면 달려 나가 그녀를 깊게 끌어안는다. 바스러질까 최대한 힘을 빼고...
유방암을 발견했을 때 이미 말기였던 그녀는 그 후 음식과 생활을 모두 바꿨다고 한다. 우선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와 밤에 불빛이 없는 삶을 시작했다. 그녀는 도시에서 밤에도 불을 켜놓고 잤었다고 한다. 그리고 맨발 걷기를 시작하고, 강에서 돌을 주워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몸과 대화를 나누고, 기도와 감사로 하루를 채워나갔다.
"내가 웃고 씩씩하게 지내니까 사람들이 안 아프냐고 노골적으로 물어. 아프지. 당연히 아파. 항암치료하고 방사선 치료하고 림프종에 심각한 비염에... 온몸을 자르고 이어서 종이 조각 붙여놓은 것 같은 몸을 가지고 어떻게 안 아파? 게다가 음식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고 때때로 살갗은 타들어가고... 그래서 뭐? 아프니까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는 얼굴로 살아야 해? 맨날 울고불고 징징대야 해? 아프다는 사실은 안 바뀌지만 오늘 하루는 선택할 수 있는 거잖아. 감정이나 태도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거잖아. 나, 아직... 아니 오늘 살아있어. 오직 오늘이야, 오늘! 내일은... 아니 어쩌면 몇 시간 뒤라도 죽을지 모르지. 그렇지만 햇살을 보며 걸을 수 있고,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바람을 느낄 수 있고, 강가에 이는 물결을 볼 수 있는 지,금,은 나 살아있어."
"지난 6년 동안 병원 다니며 혹은 주변에서 많은 암환자를 봤어. 왜 하필 내가 암이냐며 화내는 사람, 우울해하는 사람, 삶에 의욕을 잃어버린 사람, 자기 몸만 들여다보느라 예민해지는 사람... 다양한 사람을 봤어. 그중에 암에게도 감사하고, 아프지만 오늘 살아있는 나 자신에게도 감사하고, 이 지구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 감사하는 사람은 별로 없더라. 그리고 이상하지? 그 사람들 대부분 죽었어. 나보다 늦게 암이 발견됐거나 발견 당시 상태가 심하지 않았던 사람조차도... 심지어 담당 의사 선생님조차 내가 아직 살아있으니까 너무 신기해하셔. 의료적으로 안 해본 것들을 막 실험해보고 싶어 하셔. 얼마 전에 또 전이가 일어나서 수술했거든. 병원에서 항암 치료받고 며칠 누워있다 움직일만하니까 링거 들고 거북이처럼 병원을 돌아다녔어. 층마다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들 보는 게 재미있거든. 병실에서... 사실 내가 보기엔 내 상태가 제일 안 좋거든. 그런데 밥시간에 스스로 밥 나르는 사람은 나밖에 없더라. 내가 다른 사람들 물도 떠다 주잖아. 처음엔 고마워하다가 나중에 당연시 여기고 심부름까지 시키는 거 보면 '내가 이걸 왜 하나...' 싶기도한데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냥 해. 또 하루는 병원 휴게실에서 만난 여자가 나보고 몇 기인데 그렇게 씩씩하게 돌아다니냐고 묻더라. 내가 물어봤지. 당신은 몇 기냐고... 초기라 유방을 하나 절제했대. 여자가 아닌 거 같고 너무 슬프고 우울하다나? 가슴 성형수술 해야겠다나? 참, 나... 가슴 둘 다 없애고, 림프종 때문에 어깨에서부터 가슴까지 다 잘랐다가 꿰매서 자투리천 이어 붙인 것 같은 몸을 가지고도 난 내가 이렇게 예쁜데, 가슴 없으면 여자 아니니? 나이가 거의 60도 돼 보이던데 아직도 여자 타령을 하고 있어. 내가 '저는 암 말기 중의 말기예요.'라고 했더니 입을 닫대."
그녀는 고목나무 같은 몸을 가졌다. 뼈만 앙상하게 남아 몸에 물기가 다 증발해 버린 것 같다. 하지만 그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웃음과 총명한 눈매를 가졌는지 주변 사람은 다 알 거다. 그녀의 밝은 에너지가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살뜰히 돕는지도... 그녀는 내게도 그 긍정을 나눠준다.
처음 해 보는 자영업자의 삶이 쉽지 않아 그녀를 붙잡고 하소연했던 날이 있었다. 월세와 대출비가 무섭다고, 하루 종일 아무도 안 오면 준비한 음식을 버려야 하고 이 번달 공과금은 어떻게 해결할지 깜깜해진다고...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가 말했다. "자기야. 나도 분당에서 자영업을 했잖아. 그것도 일식. 알지 그 마음... 근데 지금 자기는 자기 생각을 어디로 집중시켜?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부정적인 생각 쪽 아니야? 생각이 현실을 낳아.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부정적인 현실, 감사한 생각을 하면 감사한 현실! 자기 알지?"
그 순간, 눈앞이 환해졌다. 맞네! 나 한동안 걱정만 하고 있었네? 유지가 안될까 봐 걱정하고 불안해하느라 이 공간에 대한 기쁨, 가끔 와 주시는 손님들에 대한 감사를 잊고 있었네? 나 왜 분식집 하고 싶었는지 잠깐 잊어버리고 있었네!
물론... 생계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있다. 나는 현재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취미활동 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힘든 먹는장사를 시작한 이유는... 타인을 먹이는 일이 큰 '보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울하거나 슬픈 사람, 방황하거나 갈등 중인 사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다. 가까운 사람에겐 오히려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털어놓고... 고깃집이나 비싼 정식집이 아니니 가볍게 밥 한 끼 먹고... 다시 힘을 내 하루하루 잘 살아내라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고 싶었다.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하고 싶었다. 그 마음이 컸기 때문에 무모하게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잠깐 월세와 공과금 걱정에 마음을 뺏겨 원래 마음을 잊고 있었다.
그녀의 조언 뒤로 나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는다. 걱정을 선택하지 않는다. 정말 버텨낼 수 없으면 문을 닫으면 되고 다른 일로 빚을 갚아나가면 된다. 그냥 이 일을 하는 동안은 원래 마음을 지켜나가고 싶다. 사람을 먹이고, 그들 이야기를 들어주고, 할 수 있다면 그들을 살리는 일... 걱정을 버리고 긍정을 선택했다. 힘든 부분에 집중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고 있다. 세상엔 이런 분식집도 하나 있어야 한다며 손님과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아직 가게는 영업 중이다.
유리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온다. 문 손잡이를 잡은 채 가게가 어쩜 이리 예쁘냐며 감탄사를 늘어놓는 사람, 호기심 있게 눈을 빛내며 맛있다고 몇 번씩이나 환호하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문을 열면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사람이 있다. 길이 오르막이라 힘들다며, 이렇게 오르막인 줄 알았으면 안 왔다며, 가게는 왜 이리 좁냐며... 나는 두 경우 다 빙그레 웃는다. 오르막이 있고 가게가 좁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 안에 다른 게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것을 선택해 받아들일지는 그들 해석자의 몫이다. 나는 이 일을 하며 매일 배운다. 바깥에 사실로 보이는 일이 실제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내 선택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해석에 따라 펼쳐지는 삶도 무척 다르다는 것을...
그녀가 한동안 오지 않으면 살짝 불안해진다. 궁금하고 보고 싶어진다. 그러다 그녀가 창문 밖에 서서 손을 흔들면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밝은 얼굴로 그녀를 맞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는...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알고 있다. 그녀가 매 순간 감사하며, 매 순간 빛나게 살았다는 것을...
그렇다. 그녀는 언젠가 죽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