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를 깨 부수고 싶은 사람

by 문경화

태어나서 한, 번,도 웃어본 적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여자 아이를 데리고 가게로 들어왔다. 날은 덥고 오르막길이라 힘들다며 짜증 섞인 몇 마디 푸념을 늘어놓더니 자리에 앉았다.


한 번도 웃어본 적 없을 것 같은 사람이라 그냥 조용히 음식을 준비해 내드렸다. 말을 건넬 엄두 따위 내지 않고 조용히 마늘을 까고 있을 때, 그녀가 먼저 날씨 이야기를 꺼냈다. 거리가 오르막이고 집들이 붙어 있으니 바람이 모이는 골일 거 같다며 겨울 날씨는 어떻냐고 물었다. 정말로 겨울바람이 어마어마하다며 작은 물건들은 날아다니고 넘어지곤 한다며 지역의 특성에 대해 소소하게 얘기를 나눴다.


그렇게 소소하게 시작한 이야기가 점점 깊어졌다. 그녀가 현재 제주에 살고 있다는 것, 10년 전 남편 사업이 망해 유배되듯 제주로 이사 갔었다는 것, 제주에서 농사며 농산물 유통이며 식당일이며 안 해 본 게 없다는 것, 육지 사람이 제주 토박이들 사이에 산다는 건 엄청 힘들다는 것, 사방에 펼쳐진 바다가 온통 벽처럼 느껴진다는 것, 오늘은 포천에 볼 일이 있어 올라갔다 내려가는 길이라는 것, 남편과 사이가 안 좋다는 것, 남매아이 둘을 키운다는 것까지...


그녀는 몹시 갈증이 났던 듯, 숨차게 말을 이어갔다. 식사를 마치고 옆에서 얌전히 기다리던 아이가 게임을 하겠다며 태블릿과 충전기를 가지고 자리를 옮긴 후, 그녀와 나는 대화를 더 깊게 이어갔다.


자기는 사람 죽이는 걸 이해한다며 공황장애로 몇 년을 고생했다고 했다. 몇 년 약을 먹다가 지금은 약을 끊어 가고 있다며 공황장애는 안 겪어본 사람은 절대 이해 못 한다고 고개를 바투 저었다. "어떻게 빠져나왔어요, 그 공황장애에서?" 내가 묻자 그녀가 잠깐 숨을 고르며 한 박자 쉬더니... "불교와 명상 쪽으로 공부를 시작했어요"라고 했다. "포천도 그것 때문에 만날 교수님이 있어서 올라갔다 내려가는 길이에요"라고 했다. "정말 좋은 선택을 하셨네요! 제대로 하는 명상이야 말로 제일 확실한 처방전이죠!"


우리는 불교와 명상에 대해 또 한참 얘기를 나눴다.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불교와 명상. 스무 살, 질문이 시작됐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 여러 책을 찾아보고 스승을 찾아 헤맸고, 인도에서 비파사나 명상을 만나 관(찰)하는 방법을 알게 됐고, 지리산골에서 드디어 스승을 만나 스승께 지도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어렵다... 는 정도다. 머리로는 많은 것을 이해하지만 여전히 생각 아래로 명상을 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다.


그녀는 지난 일 년 반 동안 여러 절을 다니고 많은 스님들을 만나봤지만 큰 스님이 없다며 대부분 세속인보다 못하다고 했다. 자기는 법정 스님을 좋아한다며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분이셨던 것 같다고 했다. 나도 한 때 불만을 품었던 부분이다. '공양으로 공부하는 스님들은 진짜 죽기 살기로 공부해야 하는 거 아니냐...' 비난을 했었다. 세속인들이 진흙밭을 굴러가며 벌어 보시하는 돈으로 먹고사는 종교인들은 정말 한 소식하셔야 하지 않냐며 안일한 종교인들을 한심하게 생각했었다. 지금은... 뭐 그들 공부는 그들에게 맡겨두고 나나 잘하자 한다. 그렇게 사는 그들도 나처럼 애잔하지 뭐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


어쨌든 그녀는 한참 불교와 그 주변에 대해 얘기하다 또 주제를 바꿔 AI가 지배하게 될 미래에 대한 공포를 얘기했다. 얼마 전 아이와 함께 간 과학관에서 로봇개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들어 인사하는데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도덕적인 문제 때문에 상용되지 않을 뿐 이미 로봇이 얼마나 발전했을지... 인간은 로봇에게 어떻게 지배당할지... 지구와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무섭다고 했다.


"할 수만 있다면 설국열차를 깨 부수고 뛰어내리고 싶어요. 영화 설국열차 보셨어요? 우리는 수많은 도덕과 자본과 체제와 계급과 통념들 안에 갇혀 살죠. 얼핏 자유로운 거 같지만 그 틀 안에서 전혀 자유롭지가 않죠. 한 번 그 바깥을 보고 싶어요. 한 번 진짜 자유를 보고 싶어요" 그녀가 말했다.


하... 나는 두 손을 가슴께에 공손히 모으고 "저도 그 설국열차 바깥으로 뛰어내리고 싶어요. 저도 진짜 자유를 만나고 싶어요."라고 힘주어 또박또박 말했다. 우리는 서로의 눈동자를 깊게 바라보며 침묵으로, 간절함으로 눈을 반짝였다.


어쩌면 내가 만든 세계, 내가 자진해서 탄 설국열차. 하지만 가끔 '나'라는 게 뭘까? 세계라는 건 뭘까? 궁금하다. 엄청 어려운 확률을 뚫고 태어났다는데 삶이 이게 다인가? 싶다. 왜 이렇게 벽을 느낄까? 나 또한 '트루먼 쇼 '를 찍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끝까지 숨차게 달려가도... 수많은 통념의 벽들, 무의식에 스며든 벽들, 도저히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은 편견과 독단들, 하물며 소비 하나마저 거대 기업의 광고에 영향을 받는 이 세계에서 과연 자유란 뭘까?... 생각하면 할수록 답답하고 숨이 고르게 안 쉬어진다.


질문만 무성할 뿐 답을 알 수 없어 미칠 것 같을 때도 나는 착실히 일상을 살아간다. 해야 할 일, 해야만 하는 일, 하는 게 좋을 일, 하면 안 된다고 하는 일... 들을 지키며 아주 바쁘게 열차를 굴린다. 나는 이 '설국열차' 바깥이 진짜 궁금하긴 한 걸까? 죽음으로도 이 열차는 내릴 수 없는 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복잡한 모든 생각들을 끊고... 호흡으로 돌아온다. 사유로도 안 되는 것은 호흡으로, 여기로 돌아오는 길 뿐이라며... '명상'만이 유일한 답일 거 같다고 중얼거려 본다.

그녀가 갑자기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태어나 한 번도 웃어본 적 없을 것 같은 굳은 근육을 풀고 그녀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이렇게 말 많이 한 거 얼마만인 지 모르겠어요. 앞으로 일 년은 말 안 해도 될 거 같네요."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함께 깔깔깔 웃었다.


오늘 제주까지 가는 건 무리일 거 같다며 한숨 자고 가야겠다고 그녀가 일어섰다. 그녀와 아이가 나가고 몇 분 뒤 차가 한 대 가게 앞에 정차하더니 아이가 뛰어 들어왔다. "엄마가 명함 달래요." 열린 문 틈으로 그녀가 말했다. "또 올 지 몰라요, 시절인연이 닿는다면, 어쩌면..." 나는 힘차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시절인연도 마음이 시키는 일이죠. 마음이 가 닿으면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라고 낮게 속삭이면서...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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