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엘료를 만나다

by 문경화

내가 처음 만난 파울로 코엘료의 책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였다. 한 줄 한 줄이 다 내 이야기였다.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자학하다 결국 자살까지 꿈꾸기도 했던 스물몇 살의 나 자신이 베로니카였다. 그 책을 연달아 세 번 읽고 '연금술사'를 만났다. 이번에도 욕이 튀어나올 정도로 좋았다. 꿈에 대해, 꿈을 이루는 것에 대해 누가 이렇게 아름답게 쓸 수 있단 말인가? 책날개에 있는 그의 소개 글을 자세히 읽었다. 정신병원에, 그것도 부모가 직접 입원시킨 사례가 있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그래, 그래. 자기 길을 가려는 사람은 언제나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기 마련이지. 하라는 대로, 평범하게 살지 않으면 늘 주변의 질타와 멸시와 모욕을 받기 마련이지. 오케이' 나 혼자 괜히 작가에게 연대감을 느끼며 흥분했다. '연금술사'를 일곱 번 읽고 나서 읽은 책이 '순례자'였다. 파울로 코엘료는 스페인에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을 걷고 나서 '순례자'라는 글을 썼고 본격적으로 소설가로 살기 시작했다고 다. 나도 그 길을 걷고 싶었다. 나도 그 길을 걷고 나서 작가로 살고 싶었다.


마음에 품고 있다 보니 어느새 나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길 위에 있었다. 파울로처럼 마법 같은 여행은 아니었지만 길이 품은 신비와 진리는 내게도 알알이 들어와 박혔다. 무너진 돌담에 앉아 초원을 뛰어다니는 양 떼를 보고 있으면 '연금술사' 주인공 산티아고가 왜 양치기가 됐는지, 어떻게 보물을 찾아 떠날 수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지평선까지 꽃이 펼쳐진 들판에서 정신줄을 놓고 뒹굴다 보면, 세상이 내게 미친 여자라고 손가락질하든 말든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고 싶은, 내가 베로니카였다. 또 내게도 큰 깨달음이 있었으니... '진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 위에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자기만의 길을 간다는 건 대단히 특이하고 특별할 거라 생각했다. 솔직히 보통의 평범한 삶을 무시하는 마음도 있었다. 정작 나는 주변에 민폐만 끼치며 살면서도 신비롭고 마법 같은 삶에 대한 환상에 젖어 일상을 무시하고 살았다. '연금술사'에 나오는 영국인이 바로 나였다. 신비한 연금술을 찾아 헤맬 뿐 삶을 직접 연금술로 만들 생각은 하지 못하는... 하지만 순례길을 걸을수록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사랑하고, 햇볕을 쬐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타인을 위해 희생할 때도 있는...' 그 평범한 일상 안에 진리가 있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과 사물에게 다정하게 대하고, 낯선 이에게 미소를 보내고, 밥을 해서 이웃과 나눠먹고, 행동해야 할 땐 용기를 내는 것... 그게 진짜 마법이고 신비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순례를 마치고 산티아고 시내에서 어슬렁거리던 어느 날... 외로웠던 어느 날 의자를 몇 번씩이나 옮겨가며 노을을 봤던 어린 왕자처럼, 저녁 늦도록 자리를 옮겨가며 대성당 주변 길거리 연주자들을 구경했다. 순례는 끝났지만 여전히 외로웠고 삶은 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던 길... 한국인 두 명이 길거리에서 손뼉을 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 지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물으니, 방금 파울로 코엘료에게 사인을 받았다며 당당하게 사인을 보여주었다. 장이 꼬이듯 배가 아팠다.


다음날, 길에서 만난 J와 함께 파울로가 묵는다는 파라도르 호텔 주변을 배회했다. 혹시 그가 커피를 마시고 있을지 모르니 호텔 1층 커피숍에 가보자는 J. 초라한 몰골이 신경 쓰여 망설이는 동안 J가 앞장섰다. 그리고 따라 들어간 그곳에 파울로가 지인과 함께 앉아 있었다. 우리는 무례한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에게 다가가 사인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선뜻 'of course'하며 일어섰다. 심지어 나는 그에게 안아봐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환한 웃음과 함께 그가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당신이 나를 꿈꾸게 했다고... 당신의 글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이해한다는 듯 웃으며 사인 옆에 'ultreya'라고 적어주었다.


광장으로 나와 만나는 외국인마다 붙잡고 그 뜻을 물었다. 모두들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러다 식당에서 만난 이탈리아 순례자가 파울로 코엘료가 여기 와 있다던데 들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조용히 사인을 보여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ultreya' 뜻은 'keep searching spiritual things' 같은 뜻이라며 영적인 길, 자신만의 길을 계속 가라고 축원할 때 쓰는 말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노래도 있다며 맑은 음색으로 노래를 불러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파울로는 산티아고에 최소 일 년에 한 번씩은 온다고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꿈을 꾸기 시작하고 순례길을 걷게 된 나로서는 그 모든 게 마법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마법처럼 파울로 코엘료 축원을 듣고, 그 길을 세 번이나 걷고, 마지막 걸었을 때로부터 15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는 작가로 살지 못하고 있다. 몇 년 시만 생각하며 시를 썼고 등단도 했지만 여전히 시를 발표할 지면도 없다. 내게는 연금술이 일어나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납을 고온으로 녹여 불순물을 다 걷어내고 납이 가지고 있던 순수한 금 성분만 남기는 것이 연금술이라던데... 무엇이 납이 금이 되는 걸 가로막고 있는 걸까?


요즘 자주, 곰곰 생각해 본다. 작가로 살길 원했냐고 물으면 간절히 원했다고 답하겠다. 달을 볼 때마다, 태양을 볼 때마다 원했다고... 그런데 내게 믿었냐고 물으면... 나는 납이 금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꿈이 없는 게 나은지, 꿈이 있지만 이루지 못하는 게 나은지, 꿈이 이뤄지는 게 나은지... 솔직히 정말 모르겠다.


나는 파국으로 치닫는 제 나라를 보는 여왕처럼 안을 들여다본다. 쓰러져가는 건물 기둥 밑 구석에 아이가 숨어 울고 있다. 망토를 펄럭이며 손수 걸어가 아이에게 묻는다. '너는 두렵니?' 아이가 온몸을 떨며 답한다. '여왕이시여, 꿈이 한낱 헛된 욕망이라 해도 저도 여왕이 되고 싶었어요... 아무것도 아닌 채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사라질까 두려워요...' 나는 지금 이 아이에게 해 줄 말이 없다. 그 욕망이 나쁘다고 비난하고 싶지 않다. 욕망을 버리고 순수해지라고 조언하고 싶지도 않다. 꿈꾸는 아이에게 파국의 현실을 보라고 여왕이 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조용히 문을 닫고 현실로 돌아와 일상을 준비한다. 나눠먹을 밥을 짓고, 바닥을 쓸고, 얼굴 근육을 풀어 미소 짓는다. 불순물이 다 태워질지, 끝내 납으로 남을지 알 수 없지만... 오늘 하루, 평범한 일상에서 해야 할 일은 남아있다. 남들의 꿈을 들어주는 일도 포함해서.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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