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소문을 그림자처럼 끌고 다닌다. 그녀의 치맛자락이 지나간 자리마다 소문이 무성하게 자라난다.
그녀가 공무원이었다는 이야기, 바람이 나서 가정을 버렸다는 이야기, 바람났던 남자랑 채 일 년도 못 살고 남자가 도망갔다는 이야기, 도망간 그 남자도 공무원이었는데 여자 하나로 모든 걸 잃고 폐인이 되어 물고기를 잡으며 산다는 이야기, 그가 떠날 때 한 마지막 말이 '여자라면 신물이 난다'였다는 이야기, 그녀는 곧 가정이 있던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렸다는 이야기, 그녀가 새로 만난 남자의 여성 편력을 싹 정리했다는 이야기... 파도 파도 소문이 차오른다. 아무리 퍼 내도 다시 차오르는 우물처럼...
나는 앞, 뒤, 옆 어디서 봐도 소문이라곤 없는 평범한 인간이기에, 그녀의 휘날리는 치맛자락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가 못 가져볼 저 소문... 대하소설도 뽑아낼 수 있는 저 소문... 살아 낼 자신은 없지만 남 뒷담화로는 최고인 저, 소문.
가끔 와서 맥주 한 병을 시원하게 마실 뿐 음식에는 별 흥미를 못 느끼는 그녀. 가게를 시작하고 2년쯤 됐을 때... 어느 날부턴가 그녀가 내 앞에 앉아 자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보이는 이미지와 다르게 자기는 약하다고 했다. 겁이 많아, 어두워지면 블라인드를 치고 해가 뜰 때까지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여러 일을 겪은 후, 지금 죽어도 아쉬울 게 없을 만큼 사는 것에 집착이 없다고 했다. 살아 있으니까 먹고 마시고 그냥 하루하루 살뿐, 미래나 노후 따위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으면 먹여주고, 씻겨주고 국가가 다 해 줄 거라며, 우리나라 복지가 얼마나 좋은지 아느냐고 했다. 사람이 죽고도 사는데, 뭣이 중헌디...
나는 그녀의 말에 늘 맞장구치다가 그날 그 '뭣이 중헌디'에는 얼굴색을 바꾸고 말을 시작했다. "물론 자식이 죽고도 살죠. 산 사람은 살아야 하고 죽음을 생각하면 별로 중요한 것도 없는데 우리 너무 아등바등 살죠. 그래도... 중요한 거 있지 않아요? 대충 하루 때우려고 우리 태어나지 않았을 거 같은데... 뭣이 중헌디... 그 말로 얼버무리고 매몰되서 진짜 중요한 거 놓치고 사는 거 아니에요?"
잠시 정적이 흐르고... 그녀가 토끼 눈을 하고 몇 초간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금세 눈동자가 빨개져 "그래. 맞아. 나 '뭣이 중헌디...' 그 말 뒤에 숨어 살았어. 그 말 뒤에 숨어서 한 3년 아무것도 안 했어. 그냥 앞에 닥친 하루만 처리하고 내 인생에 대해서조차 생각하지 않았어. 살아있으니까, 죽을 자신은 없으니까. 근데 자기 말 들으니까 뭔가 중요한 게 있을 거 같아. 중요한 게 뭘까? 나...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도 모른다. 그건 그녀가 찾아야 할 문제다. 하지만 죽음에 방점을 두고 죽음보다 큰 일은 없으니 다른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태도는 삶을 너무 허무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이 '허무'라는 감정은 일시적으로 빠져 삶을 다른 각도로 살아보려 할 때는 도움이 되지만, 대부분의 '허무'는 길어질수록 삶에 의미를 빼앗고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죽음 밖에 할 게 없는 상태로 우리를 몰아넣는다.
뭣이 중허길래 우린 태어났을까? 중요한 것도 없는데 꽃은 왜 필까? 중요하지도 않은데 사과는 왜 붉어질까? 그 사과는 왜 달고 맛있을까? 중요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왜 항상 자기 앞의 생을 생각할까? 중요하다는 건 도대체 뭘까?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책에 보면 '자아의 신화' 얘기가 많이 나온다. 굴러가는 돌멩이에게도, 사막의 모래에게도 이뤄야 할 '자아의 신화'가 있고, 우리 또한 자신만의 이뤄야 할 '자아의 신화'가 있다고, 그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라고...
나는 '작가'로 '시인'으로 사는 게 꿈이었다. 어쩌다 글을 쓰기 시작한 중학교 때 이후로 그것은 나의 북극성이었다. 언제나 변하지 않고 길잡이가 되어주는... 하지만 천재적으로 재주가 비상하지도 않으면서 목숨을 걸 만큼 열심히 쓰지도 않았다. 그래서 여전히 책 한 권도 없고, 글로 밥벌이를 못하고 꿈 주변을 하염없이 회전하는 무명 씨다. 그럼에도 무명 씨는 욕망한다. 책을 내고 유명해지고 싶고, 잘 나가고 싶으며, 인세로 밥을 먹고 살고 싶고, 글을 퍼올리기 위해 고독해지고 싶다. 또 한편으론 열망한다. 누군가에게 울림이 있는 글을 쓰고 싶고, 위로나 지지가 되고 싶으며, 나의 외로움으로 말 걸고 싶다. '나 여기 있어. 당신도 거기 있지?'
하지만... 그저 욕망해 볼 뿐, 알고 있다. 그것들은 다 곁가지라는 것을. 나는 다른 어떤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내 '자아의 신화'이기 때문에 읽고 쓰는 것이라는 것을... 쓸 때 행복하고, 쓸 때 외로움이 덜어지며, 쓸 때 고요해지기 때문에 쓰는 것이라는 것을... 이 생에서 끝없이 읽고 쓰겠다고 우주에 공표한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어쩌면... 무명으로 살다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에게도 위로나 위안이 되지 못하고 넋두리만 하다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 너무 슬프지만 어쩌겠는가? 쓰는 것이 내 소명인 것을.
우리 모두 다 잘 나고, 잘 나가고, 멋질 수는 없다. 우리 모두 붉은색은 아니다. 모두의 찬탄을 받는 꽃의 여왕 '장미'도 아니다. 구석에 핀 민들레, 봄 여름 내 잎만 무성한 국화, 향기도 없는 봄까치꽃, 피자마자 늙어버리는 할미꽃... 화려하지도 유명하지도 향기롭지도 않지만 핀 대로... 생긴 대로 자신의 '자아의 완성'을 위해 끝없이 찾고 노력하고 단련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태어난 존재.
그녀의 소문이 전부 사실이라 하더라도 소문 자체가 그녀 자신은 아닐 것이다. 소문난 인생을 살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녀가 진짜 살고 싶었던 삶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그녀의 외로움이, 애정에 대한 결핍이 그녀를 소문 쪽으로 몰아넣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쯤 그녀는 물었어야 했다.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존재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이라도 그녀는 묻고 찾아야 한다. 소문을 먹고 자란 풀들이 그녀의 치맛자락을 다 벗겨내기 전에, 죽음을 내놓으시라 온몸으로 뻗어 오르기 전에!
모든 사람들이 다 소명과 자아의 신화를 찾지는 않겠지만 당신이 '뭣이 중헌디'라는 말로 인생 별 거 없다고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 소명이 설령 밥벌이와 아무 상관이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의문을 가지고 우리 존재를 탐구하고 그 탐구한 것들을 나누기 위한 존재이다. 당신이... 그리고 내가... 탐구한 것들을 서로 나누고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