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의 책임

by 문경화

유리창 너머 풍경을 자주 내다본다. 유리창... 쉽게 깨질 수 있는 저 얇은 물건 하나로 시공간이 나뉜다는 게 늘 신기할 따름이다. 바깥에 섞여있지 않으니 저곳은 언제나 내게 풍경이다.


처음에 누군가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면 '어머 아기가 오시네. 얼마나 예쁠까?' 혼잣말을 하다, 그 안에 하얀 털을 가진 개가 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아기띠를 메고 언덕을 숨 가쁘게 올라오는 사람을 보고 '요새도 아기띠를 하는 분들이 있구나.' 웃으며 친근하게 바라보다가 뒷모습을 보고 놀랬던 적이 있다. 그 아기띠 안에 갈색 개가 업혀 있어서.


내게는 이질적인 풍경이라 처음엔 당황하다 이제는 유모차, 아기띠뿐 아니라 가방, 포근한 잠바 안에도 개가 있는 모습에 익숙해졌다. 취향이나 세계관의 일이니 할 말은 없지만, 사람이 더 이상 사람을 낳지 않고 개와 고양이의 집사로 사는 삶에 만족하는 것에 대해 정체성의 혼란 같은 서글픔을 느낀다. 대단히 예민할 수 있는 문제라 어디 가서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주제지만, 말이나 소들이 유모차에 '인간아기'를 싣고 산책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인간도 동물종의 일부라는 걸 알며, 인간이 우월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또 동물학대나 유기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행동으로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는 분들을 보며 '대단해. 대단해. 내게는 저런 보살심이 안 나오네. 나는 인간편애자일까?' 중얼거려 볼 뿐, 동물의 기본 권리에 대해 무관심한 것도 사실이다.


가끔 가게에 들르는 이웃 마을 분이 있다. 사생활에 대해 묻지는 않았지만 서울과 시골을 오가며 생활하시는 듯하다. 그녀는 서울에서 방금 내려왔다며, 식사를 하고 집에 들어가겠다고 하실 때가 있다. 또 차에 개가 있어서 오래 있지는 못 한다며 식사를 포장해 가실 때도 있다.


몇 번의 긴 대화로 종교, 연애, 여행... 등에 대해 얘기 나누고 손님과 나 사이에 공간이 생겼다고 기뻐하던 어느 날... 반려견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너무 힘들다며, 개가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따라가지 않으려 해 아무 데도 맡길 수 없고 몇 년 동안 혼자 지내본 적도 없다고 했다. 대소변을 바깥에서만 해결하는 습성이 있어서 자신이 감기에 걸려 아파도 산책을 나가줘야 한다고 했다. '열이 펄펄 끓어 덜덜 떨면서도 개 산책시켜요. 오줌은 싸야 하니까. 걷고 달려야 하니까. 그리고 저 여행 대게 좋아해요. 미치도록 혼자 여행 다니며 낯선 곳에 가고 싶어요. 하지만... 이 녀석이 아무도 따라가지 않으니 맡길 데가 없어요. 심지어 가족여행도 못 가요. 똥오줌은 싸게 해 줘야 하니까요. 데리고 여행 다니는 건 한계가 있고... 유기견 봉사활동 갔다가 괜히 데려와서... 물론 저 걔를 진짜 사랑해요. 진짜 내 새끼 같아요. 사랑하기 때문에 버티는 거예요. 하지만 인간 새끼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내가 없어도 되잖아요. 알아서 하잖아요. 하지만 얘가 죽기 전까지 나한테 자유가 없어요. 그렇다고 얘가 죽기를 바랄 수도 없는 거잖아요?'


그녀는 식탁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 들썩이는 어깨에 잔물결이 일었다. 토닥여주고 싶었지만 침묵으로 그녀 옆을 지킬 뿐이었다. 몰랐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도 그런 고민을 하는 줄...


사실 나는 그래서 동물도 식물도 함께 살지 못한다. 내가 어디든 훌쩍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가 없으므로... 그냥 내가 산에 가서 나무나 꽃도 보고 딱따구리나 다람쥐도 보고 오는 게 편하다. 나 혼자 보러 갔다가 돌아오는 게 아무것도 남지 않아서 좋다. 아마 그래서 주변에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많은 인연을 관리할 에너지가 없어서...


울고 있는 그녀의 들썩이는 등을 보며...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의무와 책임이 뒤따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뻐서, 좋아서, 안고 있으면 포근해서, 마음이 편해서... 시작된 인연이라도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의무를 헌신해야만 '사랑'으로 승격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시작은 멜랑꼴리하고 달콤하다. 솜사탕보다 부드럽다. 하지만 인연에는 도리와 책임이 뒤따르고 그 의무를 묵묵히 실행할 때 '진짜 사랑'이 시작되는 것 아닐까?


그녀는 '개가 차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오래 혼자 둘 수는 없어요.'라고 멋쩍게 웃었다. 유리문을 열며 '또 올게요' 하고 풍경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생명이 죽기를 기다릴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책임. 애잔한 사랑! 그녀가 이 터널을 우울해하지 않고 잘 지나가기를 기도해 본다. 터널 끝에 그녀 내면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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