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다
저자 :피에르 아슐린 : 발췌
종군기자로 입대 후 동료들과 함께 폭격으로 파괴된 도시를 촬영기와 사진기에 담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제3군은 후퇴하라는 치욕적 명령으로 후퇴를 시작했으나, 이내 독일군에게 포위당했다.
카르티에 브레송은 보주의 생디에에서 다른 동료들과 함께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독일군 장교들은 휴전 협정 중인 사실을 알리며 ‘명예 포로’로서 대접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르티에 브레송과 동료들은 적에게 붙잡히더라도 조금만 참으면 바로 석방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면 적어도 프랑스 국내를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허가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이들은 휴전 협정이 25일부터 발효된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굴욕적인 패배 후에 이루어진 투항이라 모멸감은 더욱더 강했다. 하물며 나라 전체가 패주의 책임을 군인들에게도 일부 떠넘기지 않았던가. 이미 1940년의 패배로 움츠러든 프랑스 군인들에게는 더욱 심한 모멸감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 포로로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포로 3년 동안 그는 무려 30여 가지 일을 해야만 했다. 사람이 바뀌지 않았다. 그의 상황은 전쟁 포로 신분으로서. 생산성을 중시하는 독일 측은 전쟁 포로들을 하루도 놀리지 않고 모질게 부려먹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부르주아 청년이자 그리 운동을 즐기는 편이 아니던 카르티에 브레송에게는 그야말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견디기 힘든 모진 세월이었다.
카르티에 브레송은 포로수용소에 도착하자마자 오로지 한 가지 생각, 즉 도망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첫 탈주는 날씨가 나빠서 성공하지 못했다. 탈출한 벌로 대나 무로 엮은 허름한 감옥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카르티에 브레 송은 다른 탈주자들과 더불어 이처럼 21일을 독방에서 보낸 다음, 또다시 감시의 눈길이 번뜩이는 가운데 두 달간 수감 생활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예전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다.
2번째 탈주는 포탄 상자 제조 공장에서 일하던 때 간수들의 눈을 속이고 탈출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친구과 함께였다. 이 친구는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는 카르티에 브레송의 약을 올리며 좋아했다. 서로 다투는 사태가 벌어지기까지 했다. 두 사람은 탈출한 지 24시간 만에 방위경찰에 붙들렸다. 한밤중에 라인강 다리를 건너기 직전이었다. 이리하여 또다시 대나무 움막에 갇혔다가 독방으로 옮겨지고, 그런 다음 강제 노동에 처해졌다.
카르티에 브레송은 그러고 나서도 터무니없는 탈출 계획을 궁리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마침내 세 번째 탈출 시도에서 성공했다. 1943년 2월 10일 두 사람은 모젤운하를 따라 걸으며 강제 노동국에서 민간인 옷을 훔쳐 입고, 또 알자스 출신 SS대원의 도움으로 가짜 신분증과 기차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기차 검표원이 독일군 장교 전용 차량에 나중에 가서도 카르티에 브레송은 3년간의 포로수용소 생활을 마감하는 이 시절을 회고할 때마다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매그넘 탄생
매그넘에 관한 구상은 이미 전쟁 전에 진행되고 있었다.
스페인에 체류하던 당시, 로버트 카파는 편지에서 또는 가까운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 매그넘에 관한 생각을 밝히곤 했다. 물론 생각일 뿐이었었다
창립 멤버는 모두 다섯 명이었다.
로버트 카파와 일명 침이라 불리는 데이비드 시모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조지 로저, 그리고 미국인 윌리엄 밴디버트였다.
미국인 밴디버트가 순 탈퇴함으로써 인원은 넷으로 줄어들었지만 모임을 유지하는데 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카르티에 브레송은 매그넘을 공동 설립으로 전문 사진작가가 되었다
카르티에 브레송은 매그넘이 재정적으로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공동 설립자 자격으로 4백 달러를 내놓았다
1947년, 앞으로 큰일을 하게 될 인물들이 이익 창출에 목표를 두지 않은 회사를 설립하려고 맨해튼 한중심에 모였다. 이들은 미국물에 물든 사람들은 아니었다.
‘매그넘……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라틴어다운 품격이 있고, 샴페인이 주는 여행의 느낌을 풍기며, 마침 스미스 앤드 웨슨사 고급 브랜드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어원적으로 ‘우월함’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던가? ‘
매그넘 에이전시는 영국풍 엘리트 클럽과도 같은 격조와, 출범 즉시 멤버들의 친구들을 적극 끌어들이는 세계주의 적 소가족 체제 아래 운영되었다
세계 전체가 이들의 스튜디오였다.
매그넘의 출범과 더불어 ‘5W의 신화’가 시작되었다. 다시 말해, 사진작가라면 의당 5하원칙에 따라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원칙이 보편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다섯 가지 원칙이란
‘어디서 where? 언제 when? 왜 why? 누가 who? 무엇을 whar?”이다.
이 원칙은 모두에게 적용되었다. 모두의 머리에 깊이 각인 돼서 제2의 천성처럼 발동되어야 하는 원칙이었다. 특허 카르티에 브레송에게 이 원칙은 카파가 해줬던 충고와 한 몸으로 이루어졌다.
그들 방식식대로 세계를 분할했다. 카파와 침은 유럽을 맡고, 조지 로저는 아프리카와 중동, 카르티에 브레송은 아시아를 맡기로 했다. 물론 영토를 엄격하게 분할해서 맡은 것은 아니고, 각자의 기호에 따라서 그렇게 갈랐다
그 후 그들은 각자 정해진 잠소에서 역사적인 한 장면을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