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6.18~07.15
[액션 페인팅 하는 에드 시런]
2019년부터 영국의 버려진 주차장에서 틈틈이
그림을 그려왔다고 한다.
2025년 런던 한복판, HENI 갤러리에서 에드 시런이 직접 그린 'Cosmic Carpark Paintings
시리즈를 전시했다.
작품 한 점당 1200달러(약 165만 원)에
판매하고, 수익금 일부는 Ed Sheeran Foundation을 통해 음악 교육 지원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b. framemag
[데이비드 살레. 회화의 북화술사]
데이비드 살레는 대학교에서 매체와 장르를 구분 없이
사용하는 개념미술가 존 발데사리를 사사했다.
발데사리는 사진을 포함하여 발견된 이미지들(이미지 레디메이드)과 텍스트를 결합하고 일상성을 소재로, 언어를 통한 풍자나 삶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제작했다.
살레는 발데사리가 강조한 기술과 예술의 밀접함, 세상에 대한 여유와 유머,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작은 이미지들의 발견 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승이자 친구라는 관계에 방점을 찍으며 살레는 발데사리와 단순한 영향이라는 수준을 넘어 작업 태도와 사회를 보는 눈에서 더 깊이 연결되었다고 설명했다.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하는 발데사리의 풍부한 대중문화 이미지의 소비, 특히 영화 이미지 차용은 살레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데이비드 살레의 회화는 광고와 영화의 장면들이 회화로 변형된 듯 보이며 소실점과 각도가 다른 공간들이 화면을 나누며 중첩된다. 형체 파악이 분명한 구상으로.
인물과 정물의 융합이기도 하지만 동시대 대중문화의
여러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으며 미술사의 유명 회화를
전유하기도 한다.
색채는 원색부터 흑백 영화 같은 단색조의 구성까지 다양한데, 원근법을 해체해 이질적 공간을 융합해 낸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원근법이 작동하지 않는다기보다는 공간의 환영적 조작을 분쇄하는 방식으로, 소실점을 갖는 공간과 완전한 평면을 병치하거나 이들을 여러 접으로 표현해 새로운 공간을 형성한다.
한 화면에 여러 이미지가 파편처럼 등장하는 것은 1980년대 이미지 과잉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대중문화와 순수미술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일상적 이미지가 침범하는 상황에서, 그의 회화는 동영상의 여러 장면을 압축한, 마치 여러 개의 창이 열린 이미지로 가득 찬 컴퓨터 스크린처럼 작동하고 있다
@thiscomesfrom NEWS
팝아트의 아이콘, 이민자 소년이었다
가난한 이민자 가정의 막내로 태어나다
1928년, 앤디 워홀은 미국 피츠버그의 슬로바키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노동자 계층의 부모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지만, 비잔틴 가톨릭 신앙을 중심으로 가족은 끈끈하게 뭉쳐 있었다. 막내였던 앤디는 어머니 줄리아의 따뜻한 손길과 창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라며 자연스럽게 예술적 감각을 키워갔다.
3살 무렵, 워홀은 신경계 질환인 *무도병에 걸려 오랜 시간을 침대에서 보내야 했다. 학교에 갈 수 없던 그는 어머니가 가져 다 준 잡지와 만화, 그림 도구에 몰두하며 시각적인 세계에 빠져 든다. 병상에서 길러진 이 이미지 감각은 이후 대중문화에 몰입 한 예술 세계의 기반이 되었다.
워홀이 14세가 되던 해,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가족의 생계를 어머니 줄리아가 홀로 떠맡게 되었고, 앤디는 막내로서 조용히 아버지의 빈자리를 견뎌야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생전에 아들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유산처럼 남긴 저축을 대학 등록금으로 남겼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지만, 동시에 예
술을 향한 진지한 첫걸음을 내딛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워홀은 조용하고 관찰에 집착하는 성향으로 친구들 사이에선 '괴짜'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늘 그림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특히 연예 잡지에 몰입하며 대중문화에 대한 직관을 키워갔다.
교사들은 그를 '기이하지만 영리한 아이'로 기억했다.
1945년,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한 워홀은 카네기 공과대학 상 업 디자인학과에 입학한다. 실크스크린, 타이포그래피, 제품 디자인을 배우며 예술과 상업 사이의 경계를 경험합니다. 잉크를 흘리고 색을 파격적으로 조합하는 그의 작업은 처음엔 낯설었지만, 점차 개성으로 주목받았다.
졸업 무렵, 워홀은 학내 연감에 신발 일러스트를 기고하고, 상업 예술에 대한 감각을 다져가며 뉴욕 진출을 준비한다. 이 소박한 시작은 곧 팝아트라는 거대한 예술 흐름의 서막이 되었고, 앤디 워홀은 자신만의 감각과 언어로
만들어 갔다.
@artwalk.kr
화가들은 자신을 어떻게 그렸을까?
화가들의 자화상과 사진을 비교해 보면 자화상 속에서 그들의 시선과 감정이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단순한 얼굴 이상의 이야기와 개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화가들은 자신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사진은 현실을, 그림은 감정을 담아낸다.
파블로 피카소 <소묘 자화상>
1900년, 피카소가 18세 때 그린 연필 소묘 자화상
젊은 시절의 날카로운 시선과 예술적 감성을 담았다.
폴 세잔 <폴 세잔의 자화상>
1880년, 인상파의 거장이 그린 자화상
강렬한 붓터치와 색채, 내면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디에고 리베라 <디에고 리베라의 자화상>
1941년, 멕시코 벽화 운동의 대표주자
리베라가 그린 자화상
강인한 인상과 민중적 열정이 느껴진다.
폴 고갱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1890년, 타히티 이전 고갱이 그린 자화상
종교적 상징과 함께 자신만의 내면을 담았다.
에드바르트 뭉크 <담배를 든 자화상>
1895년, 표현주의 거장 뭉크가 그린 자화상
내면의 불안과 감정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프리다 칼로 <가시목걸이와 벌새가 그려진 자화상>
1940년, 시코의 여성 화가 칼로가 그린 자화상
고통과 생명력, 그리고 자신만의 세계가 담겨 있다
@artwalk.kr
루벤스 '삼손과 델릴라'위작 의혹
1609년이나 1610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루벤스의 삼손과 델릴라'는 1690년대 종적을 감췄다 1929년에 세상에 다시 등장한 공백기가 생기면서 꾸준히 위작 의심을 받고 있다.
가디언과 더타임스를 통해 다시 위작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내셔널 갤러리가 1980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250만 파운드에 낙찰받은 후 2년 뒤 작품에 오래전에는 있을 수 없는 합판이 덧대어져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합판의 출처가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기 전부터 있었던 것인지 후에 생긴 것인지 전 큐레이터는 계속 번복하고 있는 입장이다.
내셔널 갤러리는 진품이 아닐 리 없다며 의혹을
일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미술계도 그렇고 세계 미술계에서도 이런 의혹은 끊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artwal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