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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마 Feb 28. 2024

7. 한 번도 못 안아줬는데, 이제서야.

중환자를 만나면 정말 전투력이 풀로 차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와라, 싸워주마. 나는 이 생명줄을 붙들고 놓지 않을 것이니. 그 마음으로 옆에 붙어 있노라면 다행히 알아서 잘 살아주는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중환자를 받다 보면 필연적으로 죽음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싸움에 진 장수가 되는 날이 얼마나 많았겠냐만은, 특히 잊지 못할 아이가 있었다.

유난히 환자가 많던 어느 새벽이었다. 추운 겨울 새벽, 죄다 감기에 걸려서 훌쩍거리는 꼬맹이들을 보다 밥때를 놓쳤다. 겨우 환자가 좀 정리되고 이제야 저녁을 좀 먹어볼까 당직실에서 컵라면을 하나 꺼내 물 부어 놓고 기다리던 중이었다. 알맞게 익었을 시간이 지나고 자, 이제 한 젓가락 먹어볼까. 하는 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가을턴으로 입사한 신입 전공의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교수님, 환자가 이상합니다.


응?


아무리 신입 전공의라도, 뭐래는 거니 지금. 환자에 대해서 상급자나 타과의사와 대화를 할 거라면 적어도 몇 살 누가 어떤 병이 있었는데 어떤 증상으로 왔고 보아하니 무엇이 의심되는데 그다음엔 뭘 해야 할까요, 이것이 보고의 정석 아닌가. 겁에 잔뜩 질린 목소리로 다짜고짜 '환자가 이상하다'라니? 심지어 내가 지금 저녁을 먹어보려고 막 컵라면에 물까지 부어놓고 먹으려는 찰나인데 하필 이때? 조금은 짜증이 난 채로, 어떻게 이상하냐고 물어보려는데 전화기 뒤쪽에서 "빨리 교수님 불러!" 하고 들리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 밥은 글렀다. 긴 얘기 나눌 것 없이 "갈게요" 한 마디로 일축하고 소생실로 뛰어갔다. 어차피 빨리 내가 개입해야 하는 판에 이건 어떠니 저건 어떠니 긴 얘기가 뭐가 필요하겠는가. 가서 봐야지.


환자가 이상하다. 가 보니 과연 그랬다. 정말 경험이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었다. 소생실에 PEG(percutaneous endoscopic gastrostomy 경피 위루관: 경구영양이 어렵거나 충분하지 못한 경우 바로 공급하도록 만들어둔 관)을 꽂은 아이가 누워 모니터를 붙이고 있었다. 온몸이 새파랗다 못해 보라색을 띤 아이였다. 쉽고 간단하지만 혈액 순환을 검진하는 방법 중 손발톱을 눌러보고 색깔이 돌아오는 시간을 보는 것이 있다. 정상적으로는 2초 이내에 돌아오는데, 그 이상 시간이 걸릴 경우 심한 출혈이나 패혈증 등 쇼크 상태를 시사한다. 아이는 손톱을 눌러보니 색이 돌아오기까지 4초 가까이 걸렸다. 호흡이 얕고 가빴지만 청진음 자체는 특별한 것이 없었고, 복부가 빵빵하게 부풀고 만져보니 딱딱해져 있었다. 혈압이 측정이 되지 않아 동맥을 촉지 해보니 약하지만 촉지는 되고 있었다. 병력을 확인하니 내가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유전병으로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다니던 아이였고 전날부터 구토를 하고 처지기 시작해서 데려오셨다고 했다. 복부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것은 오늘 새벽부터, 내원하는 동안에 구토를 1차례 더 하면서 아이가 피부색이 확 파랗게 변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토사물이 기도로 넘어가서 흡인성 폐렴과 질식, 그리고 복강 내 감염으로 인한 패혈성 쇼크. 두 가지를 염두에 두었다. 간호부에서 정맥혈관을 확보하여 즉시 생리식염수를 몸무게당 20cc 투여를 시작했고, 승압제도 사용해야 했기에 중심정맥관 삽입을 준비했다. 기도 확보도 필요한 상황으로 삽관도 함께 준비하며 광범위 항균제를 처방했다. 삽관을 하며 보니 토사물이 목에 걸려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환아의 쇼크상태는 토사물로 인한 질식 가능성보다는, 패혈증으로 인한 것이라는 가능성에 더 무게를 실었다. 소아과 측에도 패혈성 쇼크로 협진을 바로 의뢰했다.


혈액검사 결과 중 VBGA(정맥혈 가스 검사 : 성인의 경우 동맥혈 가스 검사를 선호하나, 소아는 가급정 동맥혈 채취를 지양한다. 산-염기 불균형을 보기에는 정맥혈 가스 검사도 충분히 가능하다)가 나왔다. 패혈성 쇼크로 인한 심각한 대사성 산증이 동반되어 있었다. 정상 pH가 7.4였는데, 환아는 7.0이었다. 폴리 카테터를 통해 소변량을 확인했을 때 소변량도 0. 초음파로 봐도 방광 자체가 쪼그라들어 있었다. 간이검사에서 확인한 혈중 칼륨 농도도 정상범위를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소변량도 0. 칼슘 및 중탄산염 정맥주사를 함께 투여하고, 수액치료와 함께 바로 승압제를 시작했다. 수액치료를 2차례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변은 전혀 나오지 않았고, 여전히 손톱은 눌러봐도 돌아오는 시간이 2초 이내로 줄지 않았다. 기도 삽관이 되어 있으니 일단 중환자실을 가야 했다. 기계환기만 필요하다면 어떻게든 버텼을 텐데, 환아는 혈압이 떨어져 승압제 요구량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고 소변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고, 교정되지 않는 산-염기 불균형에 전해질 불균형까지 동반된 상태라 지속적 신대체요법(CRRT)이 당장 필요했다. 가능한 한 빨리 이 치료를 시행해야 하는데, 내가 일하던 곳에는 중환자실은 이미 환자가 모두 차 있었고, 결정적으로 CRRT가 없었다. 빨리 전원 해서 바로 CRRT를 시작해도 환아를 살릴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소아과 당직 전공의와 함께 환아가 다니던 병원부터, 주변의 큰 병원들에 전원 문의를 시작했다. 성인도 중환자실이나 중환자실에서만 쓸 수 있는 장비-대표적으로 CRRT-가 항상 모자란 판인데, 소아는 혈액 투석을 하는 병원 자체가 정말 드물다. 서울 경기권이라도 소위 빅 5가 아니면 하는 곳이 정말 많지 않은데, 그날은 정말 의뢰한 모든 병원들이 다 중환자실이 차 있거나 CRRT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사이 환아의 맥박이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수액으로 약으로 교정해도 대사성 산증도 고칼륨혈증도 교정이 되지 않았으니, 결정적인 치료를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환아가 버티다 버티다 넘어간 것이다.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데, 점점 주기가 짧아지기 시작했다.


손안에 쥐려던 생명의 끈이 스르륵 빠져나가는 것 같은 감각이 있다. 아무리 쥐려고 노력해도 생명줄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내 손 밖으로 떠나는 느낌이 있다. 이제 정말 늦었구나. 처치 중으로 나가 계시게 했던 보호자들을 불렀다. 어떤 상황이었고, 어떤 치료를 했으며, 전원을 문의했지만 여의치 않았음을. 그 사이 온 심정지와 심폐소생술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심정지에 대해서도. 이번 심폐소생술 사이클을 마치고도 돌아오지 않으면 중단하기로 했다. 한 번만 다시 돌아와 주기를 바랐던 마지막 심폐소생술 사이클 후에도 아이의 심장은 다시 뛰지 않았다. 사망 선언을 했다. 각종 관을 정리하고 어머니께서 마지막에 말씀하셨다. 이제 안아줘도 되겠냐고. 위루관 빠질까 봐 위루관 수술 후에는 한 번도 안아주지 못했는데, 이제는 안아줘도 되겠냐고 말씀하셔서 말없이 끄덕이고 패잔병처럼 소생실을 나왔다.


소생실을 나오고 나니, 그 사이 응급실을 방문한 다른 환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아줘도 되겠냐는 엄마 말에 나도 눈물이 나와서 애써 참았는데, 기다리는 환자의 대기 리스트를 보니 그런 낭만조차 사치인 상황이었다. 찬물 한 잔 마시고 대기하던 환아를 불렀다. 심폐소생술을 하던 아이가 있었다고, 많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선수를 치며, 애써 웃어 보이고 다음 진료를 이어갔다. 컵라면은 다음날 아침 싸늘하고 퉁퉁 분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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