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꼬마 Feb 28. 2024

11. 그러니 우린 손을 잡아야 해.

우린 모두 한 팀이니까요.

어느 순간부터 '갑질'이라는 단어를 많이 접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의사에게 갑질을 당했다, 보호자에게 갑질을 당했다는 각자 입장의 이야기들도 많이 듣곤 한다. 나 역시 보호자의 '갑질'에 마음이 상한 적이 많다. 사회 전체에 만연한 풍조라고 해야 하나, 나는 돈 냈으니 그에 합당한 서비스를 받겠다. 손님은 왕이다. 이런 마인드가 병원이라고 다를쏘냐. 나는 이 비싼 응급관리료까지 냈으니, 너는 내가 원하는 것을 내놓으라는 식의 보호자들을 만나고 나면 속된 말로 현타가 온다.


가장 흔한 건 그놈의 '수액'과 '해열주사', 그리고 'ㅇㅇ과 전문의 데려오세요'


뭐든 수액을 맞는다고 능사는 아니요, 해열제 역시 경구섭취가 가능하다면 경구섭취를 하는 것이 원칙이고 해열제에 대한 반응이 없다고 해서 중증 세균감염의 증거는 전혀 아닌데 다들 요구하는 것이 비슷하다. 발열 한두 시간 겨우 지난 아이의 먹는 해열제 효과가 없으니, 수액과 해열주사를 요구한다. 그리고 소중한 내 아이는 응급실 의료진에게만 맡길 수 없으니, 당장 원하는 분과의 전문의 교수님께서 바로 내려와서 봐주기를 요구한다.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가정의 모든 아이들은 그 집에서 최고로 소중한 존재가 맞다. 응급실에 나름의 고민을 갖고 내원한 아이 보호자 입장에서, 열이 나서 끙끙대고 힘들어하는 내 자식의 모습이 가장 눈에 밟히고, 뭐든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무엇인지도 이해한다. 


하지만 응급실에서는 모든 아이가 다 1순위일 수는 없다. 여기서 가장 귀한 아이는 가장 아프고 위중한 아이다. 응급실의 모든 자원, 병상과 인력과 검사장비들의 총량은 제한되어 있고 할 수 있는 처치와 검사들에는 당연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제한된 자원을 적재적소에 분배하는 일은 정말로 중요하다. 당연히 그 제한된 인력과 시간과 공간 내에서 최선의 대처는 가장 중증의 환자에게 자원을 최우선으로 쓰는 것이다.


응급실의 병상은 한정되어 있기에 정말로 수액처치가 필요한 저혈당이나 심한 탈수, 혹은 패혈성 쇼크 같은 중증 질환으로 온 환아들에게 우선적으로 주는 것이 맞다. 또한, 소아의 경우 정맥주사를 잡는 것 자체가 성인에 비해서 훨씬 어렵다. 숙련된 간호사 하나, 도움을 줄 보조인력 하나 이상은 무조건 필요하다. 협조가 어려운 아이들은 서너 명 이상 달라붙어야 겨우 가능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 우선 처치가 필요한 아나필락시스 환아가 왔던 때, 손이 모자라서 내가 정맥주사를 잡으면서 환아를 진료한 적도 있었다. 응급실은 원하는 상품을 언제든지 조금 비싼 값에 살 수 있는 편의점 같은 공간이 아니다. 정말 당장 처치하지 않으면 생명의 위협이나 그에 준하는 장애가 남을 수 있는 상황일 때 가야 하는 곳이다. 보호자 원하는 거 하나도 안 해주면서 돈 받냐 소리도 많이 들었는데, 입장을 한 번 바꿔서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내 아이에게도 언제든지 올 수 있는 열성경련이나 아나필락시스 등으로 응급실에 갔는데, 하루 열 난 애들이 원한다고 수액 맞으면서 침대를 다 차지하고 있어서 내 아이를 눕히고 처치할 공간이 없다면 어떨 것 같으신가.


한편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모르시는 부분을 말씀드리자면, 응급실은 원하는 과 전문의를 원한다고 다 불러다 드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경련을 했다고 소아신경 전문의가 보고, 설사를 했다고 소아 소화기 전문의를 불러다가 보는 곳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응급실에서 진료를 보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응급의학과다. 소아의 경우에는 병원에 따라 소아과에서 바로 보기도 하지만, 대개는 전공의가 보고 전문의와 상의하는 형태였고 최근 소아과 전공의들이 없어지면서 응급실 전담전문의가 보는 곳도 간혹 있기는 하지만. 응급의학과 의사는 전 연령대의 환자를 응급실에서 1차로 진료를 담당하고, 환자를 파악하고 진단하며 필요한 처치를 동시에 해나가는 훈련을 전공의 4년 동안 받는다. 각 과와 상의할 것이 있는 경우에 호출하는 식인데, 어느 과의 입원이 필요하거나, 아니면 그 과만할 수 있는 술기(예를 들어 안과 검진 같은)가 필요하거나, 아니면 그 과의 전문의견이 필요한 경우에 하는 것이지 보호자가 불러달라고 불러주는 콜센터가 아니다. 거기다 특정 분과의 교수가 응급실에 바로 내려오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일반 회사만 생각해도 대리가 하는 일을 부장이 하지는 않지 않나. 각자의 일과 역할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보호자들이 원하는 그 '특진 교수님'들은 야간이나 주말, 공휴일에 근무를 하시는 일은 많지 않다.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어느 교수님의 진료를 요구하는 말을 들을 때 간혹 말해드리곤 했다. 나 여기서 몇 년째 일하지만, 그분 어떻게 생긴 분인지도 모른다고. 정말 그 교수님까지 불러야 될 상황이라면, 정말 초 초 응급, 위독한 상황이라는 의미다.


응급실에서 대부분은 순서대로 보지만, 중환자가 있으면 그 환자가 당연히 우선이 될 수밖에 없다. 4시 50분에 온 두드러기 환아가 5시에 접수한 심정지 아이보다 당연히 후순위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두드러기 본다고 심정지를 기다리게 한다고?  말도 안 될 일이다. 진료를 보던 중에 환자분류소에서 중환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하던 진료를 중단하고 양해를 구한 뒤  뛰어가는 일은 흔하다. 사실 대부분은,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가장 안 좋은 아이들을 먼저 본다는 것을 이해하신다. 그게 내 아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기도 하고, 보호자의 입장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심정지나 간질중첩증 같은 환아들을 보고 나서 밀린 아이들을 부르면서, 나도 먼저 말한다. 기다리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죄송해요 로 시작하면 대개는 이해하신다. 기다리다가 상대적으로 대기가 적은 곳으로 가시는 분들도 더러 있고. 하지만, 아닌 사람들이 있다. 특히나 사람이 많이 오는 곳은, 그만큼 불만을 품은 분들도 확률적으로 많아질 수밖에 없다. 기다리면서 애타는 마음을 알기에, 먼저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운을 띄우지만 화가 난 상태의 보호자에게 그런 말은 오히려 기름을 붓는 꼴이 되는 것 같았다. 아니,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화를 낼 준비를 하고 오는 상태라서 뭐라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미안한 줄은 아세요? 응급실인데 뭐가 이렇게 늦어요?


그날 화가 났던 보호자는 나의 첫마디에 바로 이렇게 응수했다. 이상하게 경련을 지속하면서 응급실에 온 환아가 한 시간 동안 네 명이었던 날이었다. 특히 마지막 아이는 경련 이후에 한쪽 사지 위약감이 있어 확인해 보니 몰랐던 뇌혈관기형이 있었고, 이게 터지면서 뇌출혈이 생긴 상황이라 신경외과와 긴급히 상의해야 했던 상황이었다. 다행히 응급실 의료진들이 모두 숙련된 사람들이고 손발이 척척 맞았고, 아이들의 경련도 다행히 2차 약제까지 쓰지 않고도 멎었기에 망정이었지만, 1시간 동안 4명의 경련환자가 내원하게 되면 다른 환아들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빨리 수습했다고 생각하고 진료실에 환자를 불렀더니 그렇게 화가 나 있는 것이다. 


건강하던 세 살짜리의 당일 발열, 아이는 컨디션도 아주 좋았고 호흡음이나 고막이나 목이나 깨끗하고. 굳이 3차 병원이 아니라 평일 낮인데 동네 소아과에 가서 진료받아도 될 상황이었고, 사실 발열 당일이면 해열제 먹이면서 좀 봤어도 될 상황이었다. 진료대기가 한 시간 넘게 있었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비난받을 일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안 좋은 환아가 4명이나 동시에 와서, 환아들 진료하고 처치하느라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지만 응급실은 아픈 환자들이 가장 우선이며 아이는 현재 발열 얼마 안 된 시점에서 검진 소견도 특별한 것이 없으니 집에 해열제가 있다면 먹이며 지켜보시라고 했다. 


실컷 기다리게 해 놓고, 아무것도 모르겠으니 해열제나 먹이라고요? 아무것도 안 해줘요? 수액도 안 놔요 여긴?


아, '항생제'와 '수액'을 쥐어주지 않으면 만족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로구나. 평소 같으면 좀 더 인내심을 발휘할 노력이라도 해볼 텐데, 아침부터 중환자 넷을 맞닥뜨린 다음의 나는 그럴 여력이 없었다. 어떤 의사가 보더라도 크게 다른 말씀을 드리지는 않을 것 같은데, 제 진료에 불만이 있으시면 정식으로 민원을 넣으셔도 좋고, 다른 병원에서 진찰받으셔도 좋으니 그렇게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내보냈다. 진료는 끝났으니, 가보셔도 된다고. 화를 잔뜩 내며 나간 뒤 내 이름을 적어가고 민원이 들어오고, 나는 당시 상황을 차분히 답변하고 지나갔다. 다행히 좋은 상급자들을 만났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나를 최대한 보호하고 이해해주려 하셨던 분들이셨으니까. 


이 날의 기억이 강렬해서 그렇지, 중환자를 보고 난 다음 상황에서 대기하던 다른 환아들의 보호자들이 불만을 표시하는 일들은 적지 않다. 왜 이렇게 늦었냐, 너무 늦다, 응급실인데 뭐 이러냐. 하긴 다른 응급의학과 의사들도 심정지 환자 보고 있는데 어차피 죽을 사람 보지 말고 나부터 봐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들은 괴담 같지만 하나씩 경험이 다 있기는 하니까. 하지만 한 번쯤은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다. 언제든 그 중환자가 내가 될 수 있고, 내가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똑같은 일을 겪는다면 어떨 것 같으신지. 내 손톱 밑의 가시가 항상 가장 아프기는 하겠지만, 그걸로 죽지는 않는다. 부디 조금만 마음을 너그러이 써주시면 좋겠다. 응급실은 그런 곳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사람이 가장 먼저일 수밖에 없는 곳.


어떻게든 강하게 요구하면 해 준다는 이야기를 일하던 병원 근처 지역 맘카페에서 본 적이 있다. 강하게 요구하는 엄마가 되세요, 그래야 겨우 들어줄까 말까 해요.  안 그러면 해주기 싫은지 수액 필요 없다고 집 가라고만 하고 아무것도 안 해줘요. 글쎄. 의사와의 싸움에서 내 아이를 위한 수액처치를 쟁취해 낸 똑똑하고 강한 엄마가 되라는 논조의 글을 보니 한숨이 나오더라. 그게 아니라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고 아이가 나빠지면 다 네 책임이라는 식의 막무가내 상황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른 아이들의 진료가 늦어지고, 피해를 주게 되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져 준 게 아니었을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소모적인 입씨름 하는 사이에 지금 몇 명을 더 봐줄 수 있는데, 마음이 급한 건 나였으니까 해 드린 것뿐이었다.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이다를 말하고 싶은 얘기가 아니다. 어차피 우리의 목적은 똑같지 않나. 환아가 순조롭게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처치를 받고 잘 낫는 것. 처음 올 때는 처지고 늘어져 있다가 집에 갈 때는 방긋 웃고 있는 아이를 보면 그래도 힘이 나고 기분도 좋아지는 게 이 일 하는 사람들이다. 같은 목적 아래, 의료진은 최선을 다해서 아이를 진료하고 보호자도 협조를 해 주면 서로 얼굴 붉히고 싸울 일이 뭐가 있나. 우린 어디까지나 한 편인걸. 적이 아니다. 한 편이다.

작가의 이전글 10. 본디 심성은 선하나, 화가 많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