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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마 Feb 28. 2024

15. 하필 그 추운 날 갔어.

잊을 수 없는 아이.


하필 그 추운 날.
날이 추워지면 생각나는 아이가 있다. 내가 뭘 더 잘했으면 되돌릴 수 있는 일이었을까.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가고 싶은 순간 중 한 순간이기도 한 유난히 추웠던 겨울날. 


여느 날처럼 근무하던 중, 심장분과 외래에서 입원할 환아를 보낸다고 말씀하셨다. 확장성 심근병증으로 다니던 환아인데 최근 심기능이 많이 떨어지고 심부전 증세를 보여 응급실로 보낸다고. 다행히 혈압이나 맥박은 정상,호흡수가 약간 빨랐지만 산소포화도는 정상이었다. 마지막 심초음파 소견을 확인해보니 박출계수가 20%가 되지 않는다고 기록이 있었다. 보통 50%는 넘어야 하고, 30% 이하는 심장이 수축해서 짜 주는 힘이 심각하게 떨어졌다고 보는 상황인데, 20% 미만이라. 응급실 내 간이 초음파 기계를 들고 바로 환아를 문진하면서 초음파를 봤다. 정말 심장이 곧 퍼질듯이 힘들게 뛰는 모습인데, 그에 비해서는 아이가 어찌저찌 버텼다 싶기도 하고. 빨리 주사 잡고 약 쓰고, 입원시켜야겠다 생각하는 순간에 어머니가 물었다. 

제가 너무 늦었나요?

아이가 그래도 좀 버티는 것 같아서, 심장분과와 의논한대로 이뇨제와 강심제를 쓰면서 입원을 하기로 계획도 나왔던 상황이었기에, 어머니에게 더 죄책감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에요, 오셨으니까 괜찮습니다. 병원이잖아요. 이제 필요한 조치들을 하나씩 할게요.

그렇게 환아를 보고 온 지 얼마 안 되어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진다는 노티가 왔다. 바로 뛰어가니 환아가 새파랗게 질려 있고, 산소 포화도가 70대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봤던 것보다 숨도 얕게 쉬고 있고, 의식도 처져가는 모습이었다. 앰부를 짜면서 소생실로 옮기고, 심장분과에 상황을 알렸다. 삽관을 하고 중환자실로 입원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삽관하려 하는데 기도에 거품같은 가래가 가득 고여 있어서 석션으로도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심부전에 이은 폐부종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소견의 분홍색 거품같은 가래들. 급한대로 i-gel이라고 부르는 대체 장비를 삽입하고 앰부를 짜는데 뻑뻑하고 잘 짜지지 않는 상황이었고, 맥박수가 점차 느려지면서....... 심정지. 심폐소생술을 즉시 시작했다. 하지만 30분 넘게 심폐소생술을 하는데 아이 심장은 돌아올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비유하자면 엔진이 고장난 채 버티다 버티가 확 퍼져버린 상황. 

이제는 결정을 해야 했다. 통상적으로 30분 이상의 소생술 이후에도 돌아오지 않으면 소생의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기에 어머니께 설명을 해야 했다. 외래에서 올 때는 그래도 나와 대화도 했던 아이가 갑작스럽게 나빠졌으니 입이 잘 떼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해야 했다.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도록 하면서 어머니를 들어오시게 했다.

아이가 잘 버텼다고 생각했는데, 심기능 자체가 너무 떨어져 있던 상황이라 아이가 더 버티지 못했습니다. 심정지 이후 30분 간 소생술을 했는데, 도저히 환아의 심장이 돌아오지를 못하는 상황이라 심폐소생술이 더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이제 그만 힘들게 해 주세요. 갈비뼈 다 부러지고 아프게 하지 말고 그만.

소생술을 중단하고, 사망선언을 하고 각종 관을 다 정리하고 난 뒤 어머니를 다시 불렀다. 차분하던 어머니가 조금씩 울먹이다가 오열하시기 시작했다. 단장이라고 했던가, 자녀를 잃은 슬픔은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이라고. 그렇게 울며 말씀하셨다.

갈 거면 좀 엄마한테 말 좀 해 주고 가지, 갑자기 이러는 게 어딨어. 가도 하필 이 추운 날 신발도 못 신고 가면 어떡하려고 그래. 왜 하필 이렇게 추운 날이야. 오늘은 너무 춥단 말이야. 

왜 이런 추운 날이냐고 하는 말씀에 나도 눈물이 나서 고생하셨습니다 한 마디를 겨우 건네고 자리를 피했다. 어떤 말을 얹어서도 안 될 것 같고, 그럴 수도 없었다. 그 날 근무 내내, 근무를 마친 밤, 그 이후 며칠간 생각이 떠나지 않더라. 왜 나는 어쭙잖게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린답시고 병원에 왔으니 괜찮다는 말 따위를 했을까. 더 빨리 아이가 나빠질 걸 예측할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알았다면 어떤 걸 해야 했을까. 몇 년이 지났지만 추운 날이면 가끔 생각난다. 춥지 않게, 숨 차지도 않게 지냈으면 좋겠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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