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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마 Feb 28. 2024

16. 밥은 먹고 합시다.

하루 이틀만 아이 볼 게 아니니까요. 

나는 먹는 것에 정말 진심이다. 먹는 게 귀찮아서 캡슐로 된 알약같은 거 나왔으면 좋겠다는 사람들 이해 불가. 한 계절이 가고 떠날 때마다 주는 그 계절의 선물을 왜 마다한단 말인가. 혼자서 이것저것 레시피 찾아보고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고, 하나 꽂히면 징하게 먹기도 한다. 그만큼 남 먹이는 것도 좋아하는 성미다. 


그 날은 정말, 출근해보니 공기부터 어수선했다. 차트를 열어보니 내가 출근하기 거의 직전에 온 코로나 확진 환아가 열성경련을 했는데, 30분 넘게 경련을 오래 해서 약도 2차 약제인 fosphenytoin 까지 써서 겨우 멎고, 현재는 삽관 후 인공호흡기 달고 격리실에 있다는 것. 중환자실은 없고, 코로나 환아 병상 어레인지도 어려워 이 밤 사이는 격리실에서 보내야 될 상황이라는 것이다. 경련은 멎었지만 아직 의식이 깨지는 않았다고 한다. 


밤 사이 내가 뭘 할 지가 윤곽이 나왔네. 


말은 쉽다. 경련한 아이가 깨는지 확인할 것, 깨지 않으면 뇌염 등 중추신경계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뇌척수액 검사를 고려할 것. 두 번째, 인공호흡기 세팅을 환아 상태에 맞춰서 변경할 것. 다시 경련을 한다면 약제를 추가하고 아예 진정제 써서 깊게 재우고 뇌척수액 검사 후에 항균제를 올려 써야겠구나. 하지만 뭘 할 지 알기만 한다면, 그리 겁날 것은 없다.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동안 나는 아이를 자주 들여다보고, 모르겠으면 옆에 있어야 한다. 그것 뿐이다. 품이 많이 들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대해서 놓친 게 없나 고민해야 해서 힘들 뿐, 길은 정해져 있어서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인계받고 바로 아이를 보러 갔다. 경련 직후에는 의식이 돌아오기까지 30분 이상 걸리기도 하고, 특히 경련을 오래할수록 더 오래 걸리고, 환아의 경우에는 항경련제도 여러 단계를 썼기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 동공반사는 정상. 통증자극에는 반응을 하고 있다. 인공호흡기 세팅은 환아의 자발호흡이 아직 완벽하지는 않아, 보조를 해 줘야 했고, 산소요구량이 높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케이. 이대로 보자. 


그 밤 사이 다른 환아들도 여느 때처럼 많이 왔기에 또 허덕이면서 아이들을 보던 중에, 틈틈이 격리실의 환아 상태가 변하지 않는지를 보러 갔다. 두세 시간이 지나도 아이의 의식상태가 비슷해서 조금씩 걱정되기 시작, 소아 신경분과와 상의하고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뇌척수액검사를 하면 사실 답은 간단하게 나올 일인데, 하는 것 자체가 아이도 괴롭고, 진정제를 추가로 더 투여해서 진행해야 하니 아이가 깰 때까지 시간은 더 걸린다. 그렇다고 더 시간이 지체되어 버리면 뇌신경계 감염질환에 대한 적절한 처치가 늦어지게 되니, 이런 결정을 하는 것이 정말 정답은 없지만 임상의사에게 수많은 고민을 던져주는 일이다. 더구나 아이니까, 더 부담이 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뭘 해야 할까. 더 자주 들여다보고 환자 옆에 있는 것. 그것뿐이다. 바뀌는 상황을 캐치하고,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하고, 다음에 뭘 할지를 생각하는 일. 길이 바뀌지는 않았다. 목적지까지 풀숲이 하나 생겨서 문제지.


다행히 아이는 나의 걱정을 알아들었는지, 자발호흡도 점점 좋아지면서 조금씩 눈도 뜨기 시작했다. 인공호흡기 세팅을 낮추고, 발관도 오늘 가능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답답한지 조금 지나서는 마구 팔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하고, 간단한 명령도 수행할 수 있게 되어서(이 손 잡아봐! 눈 깜빡 한번! 두 번!) 발관을 했다. 발관 후에도 안심할 수는 없어, 숨 쉬는 것을 좀 지켜보고 폐음도 청진해보고, 스테로이드도 쓰고, 네뷸라이저를 해 주었다. 산소는 밤 사이 2L정도만 비관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알아서 잘 나아주었군, 기특하다 베이비. 네 덕에 나는 이제 저녁을 먹어볼 수 있게 되었구나.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노라니, 갑자기 창백하게 질려있던 어머니의 얼굴이 생각이 났다. 생각해보니 이 엄마, 뭘 먹긴 했나? 격리실에 먹을 것이라곤 보이지도 않던데. 대충 네시쯤 왔는데 지금까지 공복인가. 목도 마를텐데. 내가 먹는 것에 진심이라, 남이 굶는 것도 못 보는 성미다 보니 갑자기 미안해졌다. 


당직실에 먹을 것들이 있으니 챙겨가자. 목마를테니 생수, 한입에 먹을 만한 게... 견과류, 과자, 두유... 이런 거라도 일단 드시는 게 낫겠으니, 뭐라도 좀 갖다드려야겠다. 저녁인지 야식인지 모를 것을 먹고 네뷸라이저가 끝난 격리실에 환아를 다시 보러 갔다. 많이 안정되었으니, 이따 아침에 소아과랑 상의해서 코로나일반병상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상의드려보겠다고 말씀드렸다. 덧붙였다. 엄마, 뭐 좀 드셨어요? 역시나, 그럴리가. 주섬주섬 가져온 걸 꺼냈다. 요기라도 하시라고, 우리 하루 이틀 아이 볼 것 아니니까 엄마 지금부터 이렇게 진 빼면 안 된다고, 안 넘어가도 뭐라도 좀 드시라고 쥐어드렸다. 


아침 교대 전에 환아를 다시 보러 갔다. 잘 자고 편안한 얼굴이었다. 산소를 떼도 호흡도 산소포화도도 정상이었다. 어머니께 드렸던 요깃거리는 물 외에는 하나도 손도 안 댄 채 남아 있었다. 뭐 좀 드시지 그랬냐는 말은 삼키고 퇴근하며 엄마 생각이 나서 전화했더니 그러시더라. 나도 니 아빠 아플 때 뭐가 넘어가지가 않았다고. 그래도 잘했어. 복 많이 지었네. 원래 그런거야, 가족이 아프면. 그랬구나. 그래도 잘했단 말만 알아듣고 두 발 뻗고 편안히 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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